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분카레 Apr 28. 2023

호의가 불편이 되기도

공공장소에서 옆에 있는 아이가 아무리 예뻐도 맘 놓고 쳐다볼 수 없다. 아무리 귀엽고 기특해도 맘대로 관심을 보여서도 안 된다. 과한 관심은 받는 쪽에서 경계하게 되고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어르신이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상대의 의사를 먼저 물어보고 행하는 것은 기본 에티켓이 되었다. 


갑자기 비가 올 때 우산을 씌워 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해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거부당할까 하는 두려움에 멈칫하다 그마저도 단념해 버린다.


나는 아이들이나 노인을 보면 나도 모르게 나의 온 신경이 그 쪽으로 쏠린다. 그들의 행동거지, 말투 하나 까지도 놓치고 싶지 않다. 대놓고 쳐다볼 수 없으니 안보는 척 힐끔거린다.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틀림없이 드는 생각이 있다. ‘저 섬섬옥수 같은 손은 점점 자라 솥뚜껑만한 큰손이 될 테고, 복슬복슬 배냇솜털이 거뭇한 수염이 되겠지.’ 상상하기 힘들지만 아이라는 새싹을 보면서 아름드리나무를 그려보게 된다. 콩알만 한 씨앗 안에 눈꼽만 한 나무모양의 배아가 아름드리의 청사진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의 행동은 느리고 신중해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자꾸만 주섬주섬 가방을 뒤적거리고 주머니를 살핀다. 깜빡거리는 기억력을 믿지 못해서다. 이러한 광경들은 언제나 나의 자제력을 시험하려는 듯 강한 끌림으로 다가온다. 가끔 누군가가 도움을 필요로 한다싶으면 번개 같은 행동을 취한다. 


가족들은 이런 나를 염려한다. 상대의 의향도 모른 체 함부로 다가가는 것과 누구도 경계하지 않고 쉽게 오픈하는 것 때문이다. 이는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어도 매번 묵살 당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어머니와 이모님들을 모시고 온천여행을 다녀왔다. 옆 테이블에 앉은 연세가 많이 들어 보이는 어르신에게 모두의 시선이 꽂혔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이모님들은 일행에게 그 어르신의 나이를 물었다. 100세라고 하셨다. 모두 혀를 내두르며 정정하신 그 어르신께 거침없는 경의를 남발하셨다. 어른들에게는 낯섬이라는 경계 따위는 없는 것 같다. 이미 오랜 친구인양 대화는 오간다. 제일 큰 이모님은 그 할머니께 다가가 와락 끌어안기까지 했다. 영문도 모른 채 낯선 사람한테 안김을 당한 어르신은 얼떨떨해 하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100세 어르신은 자신에게 쏠리는 타인의 시선들을 무척 싫어한다고 했다. 


이 뿐 아니다. 이모님들은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이에게 질부가 우리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다며 자랑도 서슴치 않으셨다. 부끄러움은 전부 내 몫이었다. 


우리식구들도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아이들 입장에서는 때론 부끄럽기도 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도 차이가 있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맥락은 비슷하다. 


친구가 지하철에서의 목격담을 들려주었다. 한 어르신이 청년의 옆자리에 앉으려다 그만 청년 몸에 부딪히고 말았다. 어르신은 청년의 무릎에 손을 갖다 대며 미안하다고 했다. 청년은 말로 하면 되지 왜 자신의 신체를 만지냐며 오히려 더한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청년의 반응을 어르신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청년의 입장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어르신이 이 일을 계기로 버르장머리 없는 청년이라며 손가락질 하기 보다 달라지는 세상을 너그럽게 받아들였으면 한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앞을 못 보는 알 파치노는 자신을 캐어하러 온 파트타임 학생에게 극도의 노여움을 표한다. 시각장애인의 안내를 도울 때의 절대 규칙은 부축이 아니라 팔을 내어 주는 것이란 걸 학생은 몰랐다. 몇 번의 실수를 거듭한 후에야 부축이 아닌 팔을 내밀 줄 알게 되었다.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알고 나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생각을 고집하는 것은 결코 융화될 수 있는 자세가 아닌 것 같다. 친절도 호의도 적재적소에 맞게 행할 때 제 역할을 하게 된다. 

부족해서 불편을 호소했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과한 것이 오히려 불편한 세상이 되었다. 받아들이기 힘들어도 세태는 따라가야 하는 것인가 보다.


작가의 이전글 집주인에게는 말 못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