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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분카레 May 06. 2023

옷 한 벌의 속성

오락가락하는 날씨 때문에 옷 입기가 곤란한 몇 주 간이었다. 야외로 몇 번 다니다보니 산뜻한 옷 몇 벌이 절실히 필요해졌다. 친구들과 놀러 가서 찍은 사진 속 내 모습은 여전히 겨울에 입던 티셔츠 차림이었다. 5월의 이팝 꽃과 아카시아 꽃에 어울리는 옷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옷을 사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어떤 옷을 살 것인지 정하지 않고 가면 결국 옷은 사지 못한다. 티셔츠를 살 것인지, 바람잠바를 살 것인지, 바지를 살 것인지 정해야 한다. 서서히 거닐며 먼저 디피된 옷을 기웃거린다. 조금씩 엔진이 예열되듯 요즘 트랜디한 옷들의 정보가 접수된다. 어느 점포를 들어가 옷을 한 번 입어 보기 전에는 건성건성이다. 여전히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입어 본 후에는 신기할 정도로 명확해진다. 최초로 입어본 옷은 마음에 들기가 어렵다. 설령 마음에 든다 해도 사는 일은 잘 없다. 왜? 다른 입어보지 않은 옷들이 아직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 속에 내 취향에 맞는 옷이 많을 것이라 기대 한다. 다음 가게를 간다. 더욱 과감해진다. 

"찾으시는 옷이 있으신가요?" 라고 물어온다. 

처음 점포에서는

 "그냥 한 번 볼께요" 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다. 

이제는 디자인과 색상 등 디테일한 요구 사항을 얘기할 수 있게 된다. 한 번, 두 번 입어볼 때마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은 명확해지고 마음에 안 드는 이유 또한 천태만상이다. 역시 이것은 깃 부분이 이랬으면 좋겠고, 이 옷은 라인이 너무 들어가서 불편할 것 같고, 저 옷은 소매부분에 프릴이 달린 것이 맘에 안 든다. 


그나마 약간 거슬리는 부분이 있어도 가격이 적정선이면 마음과 타협을 한 후 사게 된다. 그러나 턱도 없는 가격일 경우는 맘에 안 드는 이유가 더욱 분명해진다. 결국 점원에게 

"색상이 좀 더 엷었으면 좋겠는데... "라며 변명을 둘러대고 나온다. 

점원은 매순간 이 사람이 옷을 살까 안 살까를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듯하다. 결국 손님이 옷을 안사고 뒤돌아 설 때 점원은 자신의 직감이 적중한 것과 팔지 못한 씁쓸한 기분을 애써 뭉개려 했을 것이다.

그 많던 옷가게들을 한 바퀴 다 돌도록 맘에 드는 옷을 찾지 못할 때도 있다. 다시 찬찬히 둘러봐야 한다. 아까 왔던 손님이라며 흉을 봐도 어쩔 수 없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옷이 두 번째 볼 때는 눈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이는 옷을 사고야 말겠다는 적극성에서 나온 결과이다. 막연하게 생각하고 간 날에는 한 번 쓱 하고 훑어보고는 일찍이 포기하고 만다.


옷을 사는 일마저 마음먹기에 달렸다. 꼭 사야한다는 일념이 있다면 나의 기준 따위는 사야 하겠다에 종속되어질 수 있다. 시장에 출시된 옷들 중에는 내가 아무리 까다롭더라도 어느 정도의 합당한 옷은 있기 마련이다. 나의 고집은 용수철만큼 유연하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의 신축성은 발휘할 수 있다. 처음부터 내가 완벽하게 구상해둔 옷은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어 산 옷이지만 금방 마음 밖으로 밀쳐지는 옷도 있다. 착용하면서 새로이 알게 되는 불편함 때문이다. 물론 살 때는 신중했었다. 마음에 들어 헤질 때까지 입는 옷도 있지만 지극히 드물다. 그러고 보면 오랜 시간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그 옷 한 벌의 속성, 나는 그것을 위해 그렇게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던가. 내가 콕콕 꼬집으며 지적했던 그 옷이 사실 입다보면 훨씬 더 좋은 옷이었을 수도 있다. 미세한 색상과 디자인의 차이가 그저 나의 트집에 불과 했었는지도 모른다. 입다보면 아무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는데.


그 짧은 시간 나는 어찌해도 그 옷 한 벌의 속성을 완벽히는 알지 못한다. 요리보고 조리보고 따져본들 알 수 없는 그 옷 한 벌을 위해 나는 너무 까다롭게 굴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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