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에 편승하기 위해 준비는 필요해

by 삼분카레

'자유' 참으로 피상적인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과연 자유로운가. 나는 어떨 때 자유를 느끼는가. 얼마든지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를 부여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저 나 개인에 국한된 자유에 대해 얘기해 보려한다.

자유롭지 못함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즉각 피부에 와 닿기 시작한 것은 결혼을 하면서부터였다. 육아를 시작하면서는 자유라는 거창한 말보다는 한 시간만이라도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해방감을 맛보고 싶었다. 단 한 순간이라도 나의 눈길과 손길이 없이는 집안이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거대한 착각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래 지내다보니 가끔 어렵게 자유가 주어진다해도 몸은 해방되나 정신은 여전히 소용돌이 속으로 더 깊게 빨려들었다. 육체는 떠나있는데 정신이 떠나 있지 못한 상황은 더 괴로웠다. 뭘해도 즐겁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이 되고 당장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들로 마음은 더 탈 뿐 그런 일을 두세 번 겪다보면 이후부터는 나 자체에서 먼저 해방되는 일을 차단하며 살았다.

언니들은 나더러 그렇게 살지 말라고 충고했다. 먼저 살아온 경험에서 나온 귀중한 조언이라지만 나에게는 잡히지 않는 뜬구름을 잡으라는 신호였을 뿐이었다. 내 성격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자유에 대한 갈증이 심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님 아직은 자유를 바랄 때가 아니라며 잘 참고 인내해야하는 숙명 정도로 받아들였는지도.


주위 친구들, 어머니, 엄마 언니들 모두 변변한 여행 한 번 못 다닌 나를 보고 측은해 하기도 했다. 살 날 보다 살아온 날이 많은 엄마는 나더러 좀 즐기면서 살라 하신다. 이모 집 두 딸은 맨날 먹고 놀면서 편하게 사는데 너는 왜 그렇게 사냐며 가끔 애들한테서도 해방하고, 공부 그만하고 좋은 것 많이 먹고 건강에만 신경 쓰라 하신다. 틀린 말이 아니기에 반박할 수도 없거니와 매번 반박해봤자 나와 생각이 다른 엄마를 고칠 수도 없어 그냥 알았다고만 한다. 말을 잠재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충분히 알고도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여행이 즐겁기 위해서는 마음이 편해야 하는 것이 우선 요건이란 사실은 나에겐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막내가 성인이 되면서 나는 이제 제대로 자유를 느껴볼 태세를 갖추었다. 코로나로 인해 그마저도 자유를 강제 반납 당했어도 그런 이유라면 나 개인의 선택에 의한 문제가 아니었기에 참을 수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여전히 바쁘고 개인들 스케줄 소화해 내기도 힘들기 때문에 가족여행은 기대할 수 없다. 무엇보다 친구들과의 여행이 제일 좋은 때인 듯하다. 연이어 여행일정을 잡고 밤늦도록 수다 삼매경에 빠지고 사 먹는 맛집 요리는 내 손을 거치지 않기에 더욱 맛있고 다양해 행복감의 극치를 더해준다. 어떻게 여행이 이토록 자유로울 수 있나를 감탄하며 그 해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누구의 밥을 걱정할 필요도, 시간에 맞추어 내 도움의 손길을 보태주어야 할 필요도 없다. 오로지 노는 일에만 열중하고 같이 동행한 친구들에게만 집중하고 나 자신만 생각하니 그 재미는 몇 배가 될 수밖에 없는 일은 당연지사였다.


‘자유‘ 하면 생각나는 인물은 단연코 그리스 인 조르바이다. 모르긴 몰라도 남성들에게 가장 닮고 싶은 인물 순위에 조르바가 손꼽힌다는 여담을 들은 적이 있다. 조르바는 누구에게도 구속받기를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매 순간 만나는 연인에게 절대로 소홀한 법이 없었다. 진정으로 사랑을 하고 진정으로 음식을 즐기며, 일에도 몰두한다. 이성으로 자신을 억누르기 보다는 본능에 충실하면서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고 사는 인물이다. 특히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기몰이를 한 사실을 보면 그만큼 억압되고 남의 이목에 내 삶을 저당 잡히며 사는 한국인들의 특징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자신에게 한계를 짓고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조르바는 닮고 싶은 인물이다. 매 순간 진심을 담아 행동하고 살아가는 삶의 결과가 프리덤 아니었을까.

죽음 앞에서 프리덤을 외치며 의연할 수 있었던 조르바가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하나하나 짚어보면 누구에게나 그렇게 살 수 있는 자유는 주어졌으나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스스로나 자유를 반납하며 사는 삶을 택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걸림돌들은 가족, 일, 게으름, 돈, 의욕 등 다양하게 산재되어 있다. 그 모든 것들을 외면하고 살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나를 온전히 무시하고 살다보면 잃어버린 나의 행복과 자유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버스 놓치고 손드는 일은 이미 늦었다는 뜻이다. 자유라는 버스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적절한 때가 언제인지를 살피고 준비를 해야지만이 허무하게 놓쳐버릴 확률을 줄일 수 있다. 버스가 떠나버린 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사전에 버스 시간도 계산해 보고 예약이 가능하다면 예약을 하고 다음 버스 시간을 알아두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이제야 나는 겨우 자유의 입문과정에 들어선 셈이다.

앞으로 수많은 귀로에 서서 내 자유를 속박하고 별것 아니라며 무시하기도 하겠지만 최대한 내 마음의 진심을 잘 들여다볼 참이다. 어떻게 살아야지 만이 죽는 날 조르바처럼 프리덤을 외치고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살아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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