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박경리
어릴 적에 뻐꾸기는
동서남북 원근도
모를 소리였다
가도 가도 따라오던 뻐꾸기울음
가도 가도 도망치던 뻐꾸기울음
어느 나무 어느 둥지인지
저승에서 우는가 이승에서 우는가
알 수 없었다
분명
산속에 있기는 있을 터인데
나는 아직 그 새를 본 적이 없다
내 인생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그 많은 것들과 같이
뻐꾸기를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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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때 우리 집은 누에를 쳤었다. 뽕잎을 딸 때면 어김없이 뻐꾸기 소리가 들려 오곤 했다. 여름 뙤약볕 아래 저 멀리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는 따도 따도 채워지지 않는 자루속의 아득함이었다.
그때의 뻐꾸기 소리는 살아오면서 자주 생각이 났고 몇 번이고 글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매번 ‘아득하게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라는 표현밖에 쓸 줄 몰랐다.
기다려보자 기다리다보면 좀 더 적절한 표현이 생각이 날거야.
근데 오늘 박경리 선생의 <뻐꾸기> 시에서 내 오랜 고민의 열쇠를 찾았다.
그랬다.
뻐꾸기 소리는 동서남북 어디서 들려오는 것인지 원근도 모를 소리였다. 분명 들리는데 얼마만큼 멀리서 울어대는지 알 수 없는 소리였다.
그 분의 귀에도 뻐꾸기 소리는 저승에서 우는지 이승에서 우는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그렇게 아득하게 들렸었다니 동감의 기쁨을 형언할 수 없다.
소리만 있을 뿐 한 번도 본 적 없는 뻐꾸기를 인생에서 보이지 않던 수많은 것들과 동일시하면서 깊이 있게 살다간 선생은 한없이 괴롭고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내게도 인생에서 여전히 볼 수 없고 알지 못하는 것 투성이지만 때로는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