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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분카레 Jun 08. 2023

너무 오래는 참지 말 것

정지아 작가가 칼럼에서 엄마의 치매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의 수강생의 엄마는 23세에 청상과부가 되었는데 치매에 걸린 후부터는 남자만 보면 마구 달려들어 만지려 한다고 한다. 그랬더니 작가의 선배가 이르길, 치매란 마지막 존재의 증명 같은 것이라고 했다. 결국 죽기 전에라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참아왔던 욕구를 분출한다는 것이다. 이런 어마한 명제와 같은 말 앞에서 나는 옹졸하게도 유독 ‘참아왔던‘ 에 밑줄 좍 긋고 최근 내내 참고 있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어머니께 해도 될까 말까 고민 중인 말이 있다. 남편, 언니, 친구 등 모두에게 물어봤지만 이구동성으로 말렸다. 나이 들면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이 말리는 주된 이유였다. 

     

어머니의 모든 신경세포가 우리가족으로 집중 된 지 6,7년 정도 되었다. 어머니의 걱정은 뚜렷한 이동 경로를 보인다. 제일 먼저 똬리를 튼 곳은 산후우울증을 앓던 동서 네였다. 아이 둘을 낳아 기를 때 까지 지속되었으니 꽤 오랜 기간이었다. 그 다음은 시아버지의 병환으로 옮겨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마지막으로 이동한 곳이 우리 집이다. 남편직장이며 아들의 학업문제로 가족이 여러 곳으로 흩어져 살게 되면서다.

     

발단은 얼마 전 대학생 아들이 배낭여행을 떠나고서였다. 어머니는 아들이 출발하는 날부터 이틀에 걸쳐 대여섯 번의 전화를 하셨다. 남편이 지방발령으로 혼자 살 때도 그랬고, 출장, 파견근무 때도 언제나 비슷했다. 매번 몇 시에 출발하냐, 몇 시 도착이냐, 도착했냐. 해외로 갈 때면, 비행기는 탔냐. 밥은 어쩐대냐, 떠나 보낸 네 마음은 어떠냐와 같은 질문들이 반복되었다. 걱정을 기본 값이고 한숨은 무한대다. 자식이 제 가정을 꾸리고 살면 믿고 맡겨 두어야 한다는 게 나의 상식이다. ‘자신의 삶은 곧 자식걱정이다’라는 등식이 참이라며 우기시는 것 같았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반감을 억누르기만 하는 것은 거짓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저는 어머니께서 당신의 인생을 살지 않고, 오로지 자식걱정들로 산다 하시는 게 이해가 잘 안 돼요" 모든 자식들이 도돌이표처럼 해 왔던 말이기도 했다. 

“그럼 이 늘거니가 자식걱정이나 하며 살지 무슨 낙이 있노?” 숨 막히게 하는 대답이다. 자식 외엔 살아갈 의미가 없다는 말씀. 왜 당신 인생이 오직 자식을 위해 존재한다고 표현하시는 걸까.

“어머니, 제가 돌려 말해서 못 알아들으시는 것 같은데 솔직히 말씀드릴께요. 어머니의 끝도 없는 걱정전화가 저는 너무 싫어요.”

“니는 그걸 세고 있었나?”

여러 말이 오갔다. 말다툼은 늘 그러하듯 본질은 온데간데없고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만 남긴다. 

"나는 니가 조선 하늘아래 최고의 며느리라고 생각혔다"

"아니, 아니, 아니요. 어머니, 저는 그런 인품도 못되고, 그런 며느리 될 수도 없고, 되고 싶지도 않아요." 

"허 참 내가 몇 마디 물었기로서니 니는 백마디도 더 하네."

양쪽 모두 더 이상 전화가 지속되어서는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우리는 급 마무리를 했다. 어머니도 조심 하겠다 하셨고, 나도 건성이지만 죄송하다고 말씀 드리고 끊었다. 

     

기분은 당연히 침울했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클릭한 내용이 나를 찌른다. 

‘들은 귀는 천 년이요, 말한 입은 사흘이다.’ 이 말은 어쩜 이 순간에 내 눈에 들어왔을까. 

나는 사흘도 못가 내가 한 말을 잊어버리고 말겠지만, 어머니는 천 년 동안 내가 한 말을 기억하시겠지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당장 전화기를 들 용기는 나지 않는다. 내 생각이 아직 양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손에 안 잡혔다. 산책 내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내가 더 참지 못하고 어머니께 말씀드린 본질이 무엇이었나 자문했다. 그건 아주 간단했다.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막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전거리 정도는 유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건네고 싶었던 것이다. 나의 의도가 나이 드신 어머니를 변하게 할 수 있을 것 인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았다. 밤잠을 설쳤다. 

     

다음 날 정말이지 문득 전화기를 들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오직 괴로움에서 벗어나고픈 생각뿐이었는지 나는 대뜸 말했다. 

“어머니”

“와”

“어머니, 죄송해요. 헤헤헤헤헤~”

“문디 지랄하고 안 있나” 무안한 상황에서 애정을 담아 하는 어머니 식 투박한 표현이다. 하나 더 있다. “용천한다” 

     

어젯밤 어머니도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살아온 연륜으로 아량을 베푸신 것인지, 노인이라 자식들이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약자로서의 수용이었는지는 모른다. 어제 일에 대해서는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단지 서로 간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무언의 약속을 한 듯하다.

     

비록 내 경우는 23세에 혼자되신 치매어르신의 인내와는 비교불가의 수치이다. 하지만 어머니를 향한 원망이 작은 눈덩이에서 시작해 어마한 바위덩어리만큼 커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 될 것 같지 않았다. 원인을 찾고, 누가 옳고 그른 지를 따지고, 그러지 말 것을 맹세하는 것이 옳은 해법 과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수학에서는 오직 하나의 답이 존재하지만 내가 사는 인생에서는 정답이 없다. 그저 내가 선택하고 만족하면 그것이 답이 된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어느 정도는 참되 너무 오래 참지는 말 것.
나에게는 내 기분을 말할 권리가 있고 상대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는 것.
그리고 나이 먹으면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말로 지레 단정 짓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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