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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분카레 Jul 13. 2023

부담도 더 많이

지난주에는 집 앞에 택배상자가 줄줄이 놓였습니다. 시골 어머니가 보내온 것과 온라인 업체에서 배달된 상자들이었지요.


시골에서 온 상자에는 각종 양념류와 채소들이 빽빽하게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된장, 고추장, 들깨가루, 고춧가루, 직접 기르고 담근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먹거리이들 입니다. 신문지에 돌돌 쌓인 부추, 방아 잎, 땡초, 말린 고사리, 마늘 등 제철 채소들도 사이사이 자리하고 있었지요. 어머니의 택배상자에는 언제나 단촐한 식구가 감당하기에는 많은 양이 들어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택배는 큰 기쁨과 함께 부담까지 실어 제게 배달됩니다. 한 가닥도 버려서는 안 된다는 부담감 말입니다. 요리에 대해 휘황찬란한 재주를 부릴 줄 모르는 제게는 아무렴 부담이구 말구요.

챙겨서 보내는 과정이 키우는 과정만큼이나 힘들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부추를 밭에서 베어오면 가닥가닥 붙어있던 전잎들을 제거하고 흙을 털어내어 가지런하게 신문지에 돌돌 말아 비닐봉지로 한 번 더 싸야합니다. 상자에 담기기 위해서는 어느 것 하나 세심한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택배를 붙이는 과정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도시에서처럼 부르면 가져가는 서비스는 없거든요. 전동차에 짐을 싣고 몇 킬로를 달려가서 접수를 해야 합니다. 20키로 상자가 버거운 노인은 상자안의 짐들을 해체해서 가져간 다음 그곳에서 택배 포장을 해야 합니다. 한 번의 택배를 보내는데 족히 수일이 걸렸을 겁니다. 

그런 수고로움을 알기에 택배 속 채소들을 영접하는 순간 마음은 바빠집니다. 그럴 때는 또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요. 나흘이 지나고 닷새가 되면 마음의 돌덩이는 점점 더 무거워집니다. 어떻게든 소진시켜야 한다는 마음에 조급해집니다.

아이들 키울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몹쓸 짓을 많이 했습니다. 시들고 뭉개진 채소를 차마 버리지 못했지요. 시간이 지나면 죄책감도 희미해질까 해서 냉장고 한쪽 구석에 오래 방치해 두기도 했습니다. 세상 제일가는 기쁨이 마른 논에 물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숟가락 들어가는 것이라며 힘들지 않다고 하십니다. 점점 세월의 두께가 더할수록 어머니의 체력은 저하되고 동작은 느려집니다. 그럴수록 제 마음의 부담도 커집니다. 이제 어머니도 그런 수고로움을 내려놓길 바랍니다. 


또 다른 택배들은 가공식품류들인데 다음 주 출국 때 가져갈 것들입니다. 집에서 손가락 몇 번 까딱하는 것으로 집 앞까지 배달되는 시스템은 편리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택배가 배달되기까지의 수고로움과 환경에 끼칠 영향들을 생각하면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웬만해선 동네 마트에서 사서 쓰려고 하는 이유지요. 

온라인 마트에서 일정가격 이상을 결재하면 몇 번으로 나눠져 배달되든 상관없이 배달비가 무료입니다. 믿겨지지 않지만 내게 손해되는 일이 없으니 무심하게 넘어갑니다. 때로는 이런 시스템을 이대로 두어선 안 된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물건이 파손될까 하는 염려에 상자 속 물건은 뽁뽁이로 두세 겹 싸지고 겉 상자는 스카치테이프와 송장으로 도배됩니다. 작은 상자 하나가 안전하게 배달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는지 상상이 안 됩니다. 거기다 운송 중 발생되는 매연이며 상자들이 남기게 될 탄소발자국은 또 어찌할까요. 굳이 급하게 배달되지 않아도 되는 품목인데도 로켓처럼 빠르게 날아올 때는 꼭 바늘방석에 앉은 듯합니다. 하나의 택배가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거치게 될 과정들을 생각하면 나는 좀 더 신중해집니다.


택배는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무겁게 하는 존재입니다. 부담을 느끼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얼마간의 부담감은, 얼마간의 통제력도 생기게 해 주거든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일상의 낱말들』 이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동저자인 김원영씨의 글에서 ‘기후 우울’이라는 단어를 접했습니다. 최근 창작 활동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 사이에서 ‘기후 우울’ 증상이 번져가고 있다더군요. 한 번의 공연이나 전시를 통해 어마한 쓰레기를 배출하는데서 오는 일종의 죄책감 같은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죄책감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와 문 앞에 툭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언박싱의 두근거림을 즐기면서 동시에 부담감도 더 많이 가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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