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기 4 >
라스베이거스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그랜드 캐니언으로 향했다. 라스베이거스의 근원이 되었던 후버댐을 보고 가기로 했다. 한 시간 쯤 달리니 댐은 삭막한 바위산들 사이에서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90여년이라는 세월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고 여전히 건재한 모습이었다. 당시에는 이곳 건설현장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직통열차가 매일 운행되었다고 한다. 도박과 유흥은 노동자들의 노고와 힘든 삶을 잊게 하는 피난처가 되었던 것이다. Visitor Center에 입장료와 삼엄한 검열을 담보로 댐의 역사를 볼 수 있었다. 인류가 자연을 다룬 위력 앞에서 나는 고작 ‘세상에~’라는 말밖에 할 줄 몰랐다.
그랜드 캐니언으로 가는 4시간 동안 기온은 뚝뚝 떨어졌다. 그에 따라 달라지는 차장 밖의 풍경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도착하자마자 경비행기에 올랐다. 흔들리고 기울어지는 경비행기가 무섭다고 느껴진 건 이륙할 때뿐이었다. 내 눈에 캐니언의 풍경이 들어오면서부터는 자연이 빚어 낸 즐비한 조각품들을 감상하기에 바빴다. 고대의 콜로세움, 중세의 궁전, 깎일대로 깎인 능선은 만리장성을 연상케 했다. 수억 년의 긴 세월을 함구한 채 다양한 형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지각변동으로 생긴 지층들, 거대한 빙하가 쓸고 내려간 자국들, 그 사이를 흐르는 콜로라도 강이 만든 작품들이었다. 옥빛, 검푸른 빛 곳곳마다 다른 물빛을 띈 강물은 굽이굽이 협곡을 에워싸듯 흘렀다. 마치 발톱을 숨긴 채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맹수 같았다. 딸이 O쇼를 보면서 흘렸던 감격의 눈물은 오늘 내게로 전이되었다. 묵묵한 자연 앞에서 그저 숙연해질 뿐이었다.
View Point에서 좀 더 가까이 협곡을 보기로 했다. 전체 모습을 한 눈에 스캔 한 다음 부분을 확대해서 보는 디지털식 선택은 잘 한 일이다. 일몰은 꼭 봐야 한다는 남편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서 우리는 느긋한 저녁식사를 반납했다. 자연과 자연이 빚어낸 풍광을 하나라도 더 눈에 담고 싶었다. 자연의 위대함을 이해하는 감성은 나이와 비례할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에 불과했다. 오히려 아이들이 더 설레발이었다. 아들은 해가 지고 한 시간 후의 황혼이 가장 아름답다는 그럴싸한 궤변을 내놓았다. 정말 그랬다. 일몰을 감상하는데 보낸 두 시간은 시시각각 변화무쌍했다. 빛의 조도가 만들어내는 발아래 협곡들의 음영이 점점 짙어지면서 어둠속으로 묻혔다.
국립공원 안의 소박한 랏지에 숙소를 잡은 남편의 센스에 극찬을 보냈다. 사방이 카오밥 나무로 둘러쌓여 있고 공원 내에서 차로 5분만 들어가면 움푹 패여 천길낭떠러지 협곡이다. 협곡과 평지의 공존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 밤을 그냥 보낼 수 없다는 마음이 통했다. 이 순간 가수 적재의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노래가 떠올랐다. 잠옷차림으로 어둠을 뚫고 우리는 다시 일몰을 감상하던 장소로 갔다. 손이 시릴 만큼 쌀쌀한 밤공기를 어찌할 줄 몰라 숙소의 큰 타월을 하나씩 둘렀다. 특별한 별보기 호들갑에 밤하늘은 우리에게 특별한 별밤을 선사해 주었다. 총총히 박힌 별들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패인 협곡 속으로 우르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넷이 나란히 누워 북두칠성을 찾고 ‘저 별은 너의 별 저 별은 나의 별’하는 유치한 흉내를 내며 깔깔거렸다. 밤의 깊이를 잊은 채 별을 헤아린 그날 밤의 추억을 우리는 아마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다음 날 다시 시애틀로 돌아가야 해서 아쉽게도 트래킹은 하지 못했다.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어제의 장소 Mather Point로 다시 갔다. 일몰도 그랬는데 일출의 시작점도 협곡이었다. 이번 방문이 와이드샷으로 캐니언의 매력을 염탐하는 기회였다면 다음에는 두발로 즈려 밟고 두 손으로 영접하며 온몸으로 느끼는 여행이 되길 꿈꾼다. 아쉬움은 열망을 더 강하게 부축일 것이다. 그때까지 잘 있어라. 그랜드 캐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