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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Aug 21. 2023

타지생활 15년, 이제야 도시에 적응 중

넷플릭스 아이엠마리스후기

거식증을 이겨내고 요가를 가르치는 10대 소녀의 이야기. 그녀가 한 말이다.


내가 있는 곳이 고향이 될 수 있게 해요


이곳에 정착한 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서울도 수도권도 아닌 지방 소도시. 처음 보는 사람들과 흔하게 주고받는 첫 대화의 물꼬는 '어디에서 왔냐,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이다. 그럴 때면 출생지를 말했고, 상대방의 고향은 궁금하지 않은데 되묻곤 했다. 


고향이 뭘까? 언제 가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생각만으로도 안전해지는 느낌이 든다. 중요한 건 타지 생활이 10년이 훌쩍 넘었는데 어디서도 쉬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원룸에 살 때에는 작은 감옥에 갇힌 것 같았고, 친척 집을 전전할 때에는 좋은 집에서도 마음이 불편했다. 시간이 남으면 줄곳 집 근처, 회사 근처 스타벅스로 돌아가면서 머물렀다. 주말이면 창가에 앉아 지정 좌석처럼 오랫동안 글을 썼다. 스타벅스는 집이 아닌 걸 알기에 마음이 편했다.


머무는 곳에서 언젠가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피 말리게 하는지를 매일매일 깨달았다. 당장 집을 살 수가 없으니 마음가짐이라도 바꿔보려고 다양한 시도를 했던 것 같다. 답답한 마음에 종교를 바꾸기도 하고, 괜히 다이어트하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기도 했다. 명상에 심취했다가, 상담을 받기도 했다. 이리저리 피해봐도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그 순간에 숨이 턱턱 막혔다.


고향에서는 친구들 대부분이 '자가'에 살았다. 내가 아는 친구들 전부 아직도 고향집은 여전히 예전 그대로였다. 새로 집을 지어도 그 근처에 마련했다. 어렸을 적부터 이런 문화가 익숙해서였는지 당장 대학에 와서 전세니, 월세니, 2년마다 이사하는 문화가 낯설었다. 취직을 하고 나서 그걸 내가 감당해야 했을 때에부터는 집만 생각하면 모든 문제가 아무렇지 않아 졌다. 내 집 마련도 못하고 있는데 뭘..이라는 생각에 참 많이 좌절감에 시달렸던 것 같다.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돌아온 탕자 이야기가 있었다. 집 나간 아들이 유토피아를 바라고 나갔지만 어디에도 그런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선 환영받지 못할 고향에 다시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품어줬고, 아들은 고향에서 상속자로서의 역할을 책임지는 이야기였다. 


집 없는 불안감이 수년간 계속된 끝에 결국 운 좋게 적당한 집을 골랐다. 그놈의 '자가'가 뭐길래. 그래도 집착적인 내 집마련에 대간 욕구 때문에 이제라도 쉴 수 있었다. 이제는 집에 가기 싫어서 애먼 약속을 잡거나, 카페로 향하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집이 유토피아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탕자처럼 돌아가지 않았고 이곳에서 작은 유토피아를 만났다. 오히려 넷플릭스에서 알게 된 마리스에게 더 동질감이 느껴진다. 내가 있는 곳이 고향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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