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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Apr 04. 2021

나를 부르는 말

씨, 님, 무, 야, 언니, 누나, 큰딸,

한 살 어린 후배와 친구 하기로 했다. 말 놓으라고 한지는 만났을 초창기, 지금으로 부터 5년 전 쯤이었이었다. 만났을 때부터 좀 친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같이 수업도 듣고, 같은 NGO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했다. 뭐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을 수도 있고. 걔는 어색했는지 꼬박꼬박 누나와 존댓말을 해서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 작년에 갑자기 말을 놓겠다고 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누나'라는 호칭도 바꿨다. 이름만 덜렁 무르거나 네가, 네가 라고 말해서 당황했고, 당황하지 않은 척 넘어갔다. 내가 생각했던 반말은 이게 아니었지만 이제 와서 무르기도 쿨하지 못해서 진짜 맞먹게 됐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어색해서 '누나라고 불러줄래?'라고 말하려고 했다가 말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1살 차이밖에 안 나서 굳이 누나 소리를 들어야 하는 내가 진정한 꼰대가 아닐까. 아직도 자연스럽게 들리진 않는다. 5년 가까이 누나였으니 앞으로 1년을 듣다 보면 좀 나아지겠지 하고 내버려 두려고 한다.


비슷하게 내가 오빠라고 불러야 할 상황도 있었다. 사촌 중에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남자애가 있다. 그 사촌은 굳이 따지자면 빠른 년생이었다. 고모는 나와 그 애가 같이 있는 자리에서 오빠라고 부르라고 말했다. 가족끼리는 그런 걸 따져야 한다고 근거를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부르기 싫었다. 빠른 년생으로 나보다 학년이 높은 학교에 오빠들이 있긴 했지만 그 애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니지 않나. 나도 애매했던 그 애와의 호칭을 친구라고 해줬으면 편했겠지만, 오빠라는 말에 더 이상 그 애를 어떤 식으로도 부르지 않았다. 서로를 부르지 않았다. 자연히 친해지지도 않았다.


반말하는 사이에서 호칭 세 가지
1. 김 아울
2. 아울아
3. 아울


성과 이름을 동시에 부르는  보통 20 지기 친구들이다. 매우  없게 불러도 오해 없이 받아들일  있는 사이라 그렇다. 성과 함께 불러도 서로 기분이 나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아울아라고만 부른 친구가  친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학 이후로 만난 친구들은 어느 정도 배려있고 친근하게 상대를 대해야 하기에 다짜고짜 성을 붙이진 않고 그러다 보니 이름만 부르는  자연스러워졌다. 마지막으로 이름만 부르는 사람들.  사람들은 이름을 불러줬다는  만으로 감사하다. 가장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상대를 존중하는 느낌이 든다.


다니는 교회에서는 직함 없이 서로를 '누구누구 '라고 부른다. 유일한 호칭은 목사님과 사모님만 가지고 있으며 우리끼리는 나이에 상관없이 존댓말로만 대화한다. 이런 대화방식이 굉장히 맘에 든다. 교회에 가면 특히 직분에 따라 서열이 정해져서 당연히 나이 어린 사람들은 반말을 듣기 일쑤인데, 20대라도 어려 보이거나, 나이 들어 보이거나  따라 어떠한 기준 없이 반말과 존댓말을 오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나이가 무슨 의미일까.


대화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만으로 행복해진다. 내 존재가 특별해진다. 나라는 사람이 상대를 통해 인식되고, 유일해지기 때문이다. 역할을 지칭하는 '딸, 선배, 언니'라고 불러도 그 앞에 이름이라도 붙이면 한결 다정해진다. 동생 핸드폰에 저장된 내 이름이 '아울 언니'처럼. 아, 애인이 어떤 애칭 없이 '아울'이라고 적혀 있는 것도 흐뭇했다.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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