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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Mar 02. 2021

필명으로 글을 쓰는 기분

나의 가식적인 글쓰기에 대한 소회

브런치에 발행된 글은 지인들이 보라고 쓴 글이 아니다. 아는 사람도 나를 모른 체 그저 글만 읽었으면 좋겠다. '내 글을 주변 사람들이 볼까 봐 신경 쓰인다'는 생각은 지금도 남아있지만 글을 쓰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더 심했다. 생각해보면 단지 공개하고 평가받을 용기가 부족해서 내뱉던 핑계였다. 


초반에는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것 같았다. 요즘 드는 생각은 '필명 소용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언젠가부터 내 글이 가식적이어서 미칠 것 같다. 솔직하다고 평가받은 몇몇 글조차 허영 덩어리다. 나는 그저 쓰고 싶었는데, 쓰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요란을 떨고 있는 것 같다. 잘 쓰는 글, 좋은 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세상에 유익한 글을 의도적으로 써 내려간 적은 없었다. 그런데 내 글에서 교훈을 쥐어짜는 냄새가 풀풀 난다.


글쓰기에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 필명을 지었다. 온라인이라는 또 다른 세계에서는 충분한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그렇게 현실과 분리되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진 않다.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필명을 들킨 적이 있다. 그가 언제 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내 글의 소재에서 완벽히 배제됐다. 소재가 떨어져서 슬프기도 했지만 그 인물이 어떤 식으로 나를 상상할지 쪼잔하게 가늠한다. 김아울은 쪼잔하게 글을 쓰지 않기 위해 만들어낸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완벽한 부캐가 있을 수 있을까? 결국 전부 나다. 


특히 두려워하는 남의 시선은 기존에 나를 알던 사람이다. 적당한 거리감을 집착적으로 좋아하는 거 보면 결국 누군가와 끊어질 수 없을 정도로 가깝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면 점점 내가 드러나게 돼서, 이걸 읽는 누군가와는 끈끈하게 맺어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내가 타인의 글에서 그런 감정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싫어하는 남의 시선은 글에서 읽은 사실을 가지고 현실에서 나를 제법 잘 아는 척 구는 점이다. 글에 대한 관심은 고맙지만 사건 몇 개로 내 전체를 판단하는 일이 왕왕 있다. 아마 내 모난 모습을 자발적으로 드러내 놓고서도 아직 당당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나에게 좋은 모습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이상하게 글은 뾰족하게 적고 싶다. 둥글둥글한 글은 재미없다.


사실 교회에 성실히 출석하는 크리스천인데 지금 맥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다고 적기 찝찝하고, 사랑에 관해 글을 쓸 때면 전 남자 친구가 자기 이야기하는 줄 알고 망치 들고 찾아올까 봐 겁난다. 회사 이야기를 거나하게 해 놓은 글에는 누가 읽고 내 회사생활에 악영향이 미치지 않을까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그러면서 왜 쓰냐고 묻는다면 그냥 쓰고 싶어서 쓴다는 말밖에 답이 없다.


나보다 더한 사람들이 두수룩하다. 그래서 나는 글 쓰는 사람들이 정말로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자주 치켜세운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글 쓰는 한량이 아니라 꽤 지적인 사람 된 기분이다. 포장, 가식 이런 거 하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글쓰기에 대하여'라는 항목으로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만들었다. 글쓰기에 관한 작가들의 태도나 영감을 지속적으로 받고자 한 표면상의 명분과, '나는 이렇게나 멋진 사람에 가까워지고 있다'라는 강요와 나르시시즘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구해줘..)


나와 비슷한 사람을 멋있다고 평가하는 건 나를 자랑하기 위함. 이건 피해 갈 구멍이 없다. 실제로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랑 비슷하거나 부러워할 건덕지가 있는 매력적인 사람, 둘 중 하나다. 난 장점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서 잘 샘낸다. 특히 글을 잘 쓰는 여성들을 볼 때면 질투가 활활 탄다. 아니 왜 이렇게 잘하는 건지 비결을 알고 싶은데 비결이 없는 게 비결이라서 낙담도 해보고.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빅 매직이라는 책에서 누구나 꾸준히 하면 열정과 동기부여 없이 영감이 요정처럼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 영감이란 게 하고 있는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건데, 그렇다면 나는 이런 끝없는 꾸준함을 언제까지 지속해야 특별한 영감이 찾아오는 건가. 더 군다가 가식적이라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필명이 소용없어진 것 같지만, 다시 실명으로 바꿀 생각은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가식적으로 글쓰기를 지속해볼까 한다. 다시 언제 솔직해질지는 모르겠다. 가식적이고 싶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 모두 쓰고 싶으니 그냥 이렇게 쓰기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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