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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Apr 09. 2021

내 글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에게

필명으로 쓰는 기분2

내 글을 자랑스럽게 여기진 않는다. 부족하고 미흡해서 꺼내놓기 쑥스럽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세상에 드러내고 피드백받으며 점점 나아지겠지 싶어서 쓴다. 실제 친구들은 브런치가 아니어도 내가 긴 글을 쓰는 걸 안다. 그러면서 내 직장생활을 미리 걱정해주고 한 마디씩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회사에서 찍히면 어떡하려고' 회사에서 찍힐 수도 있는데, 쓰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한가 보다. 이미 직장생활에 큰 애착이 없다. 글을 훨씬 더 사랑해서 글이 월급을 주지 않아도 열심히 쓴다. 회사야 나름 고민하지만 사실 쓰고 나서 별일 없길래 계속 썼다. 아마 쟤한테 잘못 걸리면 글을 쓰는 소문이 나 몰래 났을 수도 있고. 별 상상을 다 해서 종결 낸 지 오래다.


이렇게 글을 자의타의반 상대가 알게 되었을 때 두 가지 반대 상황을 경험했다.


첫째로 밝히고 싶지 않은 사람이 글을 어떻게 해서든지 읽겠다고 주장했을 때 협박처럼 느껴졌다. 싫었고, 왜 싫은 지에 대해 모든 이유를 갖다 붙히면서도 결국은 싫었다. 마지막엔 싫다고 말해도 읽을테니 좋다고 말하는 위선까지 떨었다. 아마도 현실의 나보다 좀 더 자극적으로 노출된 입장이 유쾌하지 않았다. 그래서 필명을 쓴건데..그걸 왜 이해하지 못할까 아직도 의아하다.


둘째로 적극적으로 읽어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다. 어느 날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기분 나쁠까 봐 먼저 연락한 적이 있다. 사실 상대가 기분 나빠할 문장은 아예 쓰질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용이 상대를 비판하는 건 아니었고 오로지 상황에 대한 나의 상상이었다. 어쨌든 읽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확실한 단서들이 나와서 적당히 예의를 차리면 끝날 일이라고 생각했다. 괜찮다면 나중에 읽어보겠다고 했지만 피드백이 없어서 그냥저냥 넘어갔나보다 하고 말았다. 그러던 중 바로 어젯밤에 그 사람이 각 잡고 전화하겠다고 문자를 남겼다. 늦은 저녁시간에 문자를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다. 그는 굉장히 망설이는 말투로 말했다. 결론은 일종의 선포처럼 결연했다.


' 이제     거야. 네가 자유롭게 글을 썼으면 좋겠는데, 글을 쓰고 나한테  말하고 이러면 불편할  같아. 내가 원하는  그것도 아니고 나중에  출간하면  사서  거고'


사실 이 사람한테는 글을 보여줘도 아무런 수치심이 들지 않았다. 항상 응원받았고 가끔 모진 악플에 반격하면서 장문의 댓글을 남겨주는 든든한 사람이었다. 글을 읽지 않겠다고 말해서 '그럴 것 까지 없는데'라고 생각했지만 곧 얼마나 나를 위한 배려였는지 몸서리치게 감동받았다. 그는 만약에 혹시라도 언젠가 내 글을 읽더라도 읽지 않았다고 말할 것이다. 그에게 배어있는 무한한 사려깊은 마음을 닮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 읽을지도 모르는 이 글에서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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