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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Apr 19. 2023

우리는 자발적으로 세뇌당한다

한참이 지나도 사람을 향한 불신이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몇 달동안이나 그 생각만 하면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이렇게 기묘한 일이 일어날 때면 가끔 내 삶이 잔잔할 거라는 착각에 쉽게 빠져나올 수 있기도 하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누군가가 홀랑 생각을, 정신을 헤집어놓을지도 모른다.


작년에 무신론자가 되기로 결심을 했었는데 그 결심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었다. 이 일이 종교와 별 상관없어 보이는데 다만 그놈이 교회를 선택한 것은 '교회를 너무 착한 사람들의 집단'쯤으로 포장했다는 것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종교와 착함은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를 단단히 속이고 나와 더욱 친밀해지고 싶었던 동갑내기 K는 2년 넘게 교회를 다녔지만 그에 대한 모든 것이 가짜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나이도, 이름까지도 사실이 아닐 확률이 높다. 그는 나보다 이 교회를 먼저 다니고 있었는데 자신을 고위공직자라고 소개했다. 그런 말에 검증할 필요도 없으니 다들 그런가 보다 했고 점점 유학이며,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새로 산 차까지 '그들이 사는 세상'같은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당연히 사람들은 멋있다고 반응해 줬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동갑내기인 저 애는 내가 갖지 못한 온갖 것들을 다 가졌다고 비교도 많이 했다. 그런 이야기를 마냥 듣는 게 기분 좋진 않았다. 점점 말도 안 되는 에피소드를 꺼내놓자 사람들은 의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별 관심도 없는 것처럼 무미건조하게 듣고 말았는데 그 사실 유무를 굳이 따지기 귀찮았던 것 같다.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진실을 마주하기 피곤했을지도 모른다.


걱정 많은 목사님은 친절하게 나를 따로 불러 이야기해 주셨다. 사실이 아닌 것 같다는 여러 이유들을 말씀해 주셨고 나는 진짜 멍했다.  굳이 걔가 거짓말할 이유가 없다며 설마, 전부 거짓말이겠냐는 듯이 믿지 않았지만 날이 지날수록 증거들이 확실해졌다. 아니 증거가 없기에 그 말들이 신빙성이 없어졌다. 그리고 갑자기 이사 간 다면서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다.


누군가를 작정하고 속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거짓말을 철석같이 믿게 될 수 있다. 사이비에 빠지는 일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냥 나도 모르게, 믿는다는 어떠한 의지도 없던 것 같은데 그게 믿게 된다. 왜 거짓말을 했는지, 그 거짓말을 믿으면서 자신도 착각하는 건지는 앞으로도 알 수 없다. (사이비 교주의 심리가 궁금한 것도 이 포인트이기도 하다.)


나는 한때 친구였던 이 애를 생각하면 속았다는 억울함보다 내가 얼마나 멍청하게 의심 없이 사람을 대하고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직접적인 피해를 준 건 없지만 그런 거짓말에 속았고 그걸 인지하는 것 자체가 괴롭긴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부러워하는 것들의 실체가 존재하긴 할까? 나는 이 일로 사람을 볼 때 말보다 행동을 더 보게 된 것 같다. 따뜻한 말, 번지르르한 말은 기분 좋게도 하지만 기분 좋게 쉽게 속이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정직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 하루 중 그것의 실체가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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