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아울 Aug 19. 2022

"너는 필요할 때만 연락하더라"

필요를 하찮게 대하는 음모들

너는 필요할 때만 연락하더라


라는 말을 연인에게 들었을 때 미안했다. 사랑받지 못하는 마음이 얼마나 속상하고 괴로운지 아니까. 단지 연락의 횟수만으로도 온갖 오해가 벌어지는 연애 초기에 더 그렇다. 그러나 저 말을 친구라고 생각했던 B에게 들었을 때 불편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이냐, 네가 나 필요할 때 내가 모른 척 한 적 있었어?'라고 대답했다. 친구는 그에 대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영영 무엇을 필요로 했는지 모를 것이다.


B에게는 주로 '밥 먹자'라고 연락했다. 고시공부를 오래 하고 있었고 집 근처에 가면 생각이 났다. 당시 나는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이라서 퇴근하면 바쁘게 학교로 갔고, 저녁 시간이 항상 비었다. 그래서 그 근처에 살고 있는 B랑 저녁밥을 자주 먹었다. 당연히 밥도 주로 내가 샀다.


B가 밥 먹는 것 이외에 다른 무언가를 나랑 더 하고 싶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밥 먹을 때만 부르는 것 같아서, 그게 기분 나쁘면 거절하면 되는 게 아닐까 하고 되려 의아했다. 함께 '밥 먹을 사람' 이면 정말 친밀한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밥 먹을 차람 취급' 당한 것이 기분 나쁘다고 했다. 커피도 마신 것 같은데.. 아무튼 진심으로 이해된 건 아니지만 친구가 공부하느라 힘들어서 나온 말이겠거니 하고 넘겼다. 그 이후로는 밥 먹자고 하는 일이 불편해졌고 점점 멀어졌다. 


지금은 누군가와 밥 한 끼 먹기도 더 어려운 시기가 된 것 같다. 친구들과는 최소한 일주일 전에는 연락을 해야 한다. 결혼하지 않고, 부양가족도 없지만 취미, 운동, 휴식을 배분해서 퇴근 이후가 일정하게 계획되어 있다. 누구를 만나려면 이중에 뭔가를 포기하고 조율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정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식사는 주로 누군가와 함께 하기보다 혼자 먹는 일이 대부분이다. 이제는 외롭다기보다 편하고 간단한 식사를 하는 삶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그러다가도 누군가와 밥 먹을 일이 생기면 며칠 전부터 설렌다. 


밥 먹자는 말은 단순히 밥을 때우겠다는 말은 아니라 그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말이다.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아무에게나 닿는 말도 아니다. 그게 심지어 '밥 먹을 때에만' 필요할지라도 말이다. 우리말 중에 '식구'의 뜻은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다. 밥을 통해 가족이 끈끈하게 연결될 수 있는 실천적인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같이 밥 먹고 있는 사람들, 밥 한번 먹자고 진심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앞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거절도 할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엉뚱한 일에 고마워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