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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Aug 24. 2022

나의 차가운 당근 온도

왜 나는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한동안 물건 팔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정리하고 잘 버리는 편인데 당근에 제법 발을 붙인 후 괜히 똑똑하게 살림하는 기분이 든다. 쓸만한 물건이 나왔을 때면 돈을 번 것 같은데, 무심결에 당근 어플을 켜서 살 것도 없는데 내려다보고 있으면 SNS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좋은 소비 습관이라면 사고 싶은 물건을 중고로 사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면 당장 사지 않고 알람을 설정해둔 뒤에 그 물건이 뜨면 고려해보고 있다. 이렇게 되니 시간이 벌어졌고, 그 사이에 안 사고 싶어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자전거를 내놓았다. 보통은 회사나 집 근처에서 거래를 하고, 장소를 확정해두고 글을 쓴다. 가격이 많이 내려가도 팔리는 데 의의를 둔다. 자전거 판매글을 보고 한 사람이 연락이 왔다. 자신의 집 쪽으로 와줄 수 있냐고 그랬다. 거리를 보니 회사와 멀지 않았지만 거래장소가 조금 외진 곳이라 찝찝하고 귀찮았다. 그래도 빨리 해치우고 싶은 마음에 알았다고 말했다. 운동도 할 겸 점심을 가볍게 때우고 갔다 오면 되겠지.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는데도 구매자는 몇 분이나 보지 않았다. 사겠다는 사람이 핸드폰을 가까이 둬야 하는 게 아닌가? 거래를 하자는 거야 말하는 거야. 덥고, 습하고, 배고프고 짜증이 났다. 그러다 10분 정도가 지났다. 멀리서 어떤 분이 걸어오시는데, 80대 거동이 불편하신 할아버지였다. 천천히 불편한 걸음으로 다가오셨다. '와주셔서 고맙다, 좋은 물건 잘 쓰겠다'라고 나에게 꾸벅 인사하셨다. 딱딱하게 느껴졌던 문자 대화와 느린 연락의 이유를 한순간에 이해할 수 있었다. 당근에서 당연한 매너와 속도 같은 것도 결국 내가 정한 기준인 것 같다. 작은 일에 분개한 그날이 여전히 씁쓸하고 부끄럽다.


왜 나는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

김수영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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