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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Sep 29. 2022

내 주변의 블랙홀

잃어버린 물건 찾기

또 블랙홀에 빠졌나 봐


세탁기가 먹어버린 양말 한 짝이나, 머리끈 같이 작고 사소한 물건은 그렇다 해도 열쇠나 옷이 없어지는 상황은 짜증을 넘어서 기묘함을 느낀다. 한참 동안 물건을 찾지 못하면 우리는 미지의 영역으로 떠넘긴다. '블랙홀에 빠졌나 보다'라고 서로에게 알려준다. 우리끼리 이 표현을 사용한지도 초등학교 때부터였다. 과학시간에 블랙홀이라는 존재를 처음 알았고 그런 우주에 매료된 이후에 여기저기 갖다 붙이다가 이런 상황에 안착시켰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30대가 넘어도 블랙홀에 빠졌다는 장난스러운 말을 왜 쓰고 있을까 문득 떠올랐는데 생각보다 좋은 효과가 있어서 정리하고 싶었다.


블랙홀은 행동을 멈출 수 있고, 위로하고 있고, 유쾌하기까지 하다.


첫 번째 '멈춤'는 더 헤매기를 중단하자는 의미다. 잃어버린 물건 찾기는 금방 찾으면 쾌감과 안도를 주지만 찾지 못했을 때에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고, 찾지 못한 것에 더 고통을 느끼게 된다. 물건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지금 곁에 있는 것들에 대한 고마움보다, 당장 없는 것, 내가 갖지 못한 것, 잃어버린 것에 대한 고통이 더 크다. 이게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겠지만 본성이 그렇기에 스트레스만 받고 있을 일도 아니다. 미지의 영역 블랙홀에 빠뜨리면 더 이상 해결할 수 없으니까 이제 집착이 되어버린 '물건 찾기'를 그만둘 수 있다. 


이는 두 번째 위로와도 연결된다. 블랙홀에 빠져서 멈추게 됐지만 결국 잃어버린 것 사실이다. 이때에 우리는 서로를 탓하지 않는다. 내 기억에 없는 물건이 사라졌다면 꼭 '누가 써서 제자리에 가져다 놓지 않았다'라고 자연스럽게 상상하고 의심하기 마련이다. 당연히 물건이 사라졌다고 하면 서로에게 물어보긴 하지만 더 추궁하거나 비난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기억 자체가 온전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의 기억도 신뢰할 수 없다. 당장 서로 기억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물어봤자 끌어낼 소득도 없을 것이다. 


블랙홀이 제멋대로 났다가 사라진 것이지 우리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블랙홀에 빠질 일은 없겠지만, 과학적으로 블랙홀에 빠지면 나올 수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서 후자에 집중하는 편이다. 우리는 다소 억지스럽더라도, 멈추는 방법을 찾아낸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물건을 잃어버려도 웃고 만다. 세 번째 이 상황을 '유머'로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블랙홀에 빠졌다고 말하는 순간 장난스러운 웃음이 나와서 오히려 상황이 유쾌하게 맺어진다. 


이제는 심지어 진심으로 가끔은 블랙홀에 물건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아직도 찾지 못한 물건이 많은데 그게 다 어디에 있긴 할 테니까. 세상에는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한 일들도 많고, 블랙홀은 더더욱 그런 존재니까. 앞으로도 블랙홀에 책임을 덮어 씌우는 짓은 계속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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