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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May 09. 2020

필름 카메라로 찍은 시골 풍경

필름 카메라 첫 롤

20191225/후지필름200/집 근처/추운 겨울 밝은 빛/36장 중 7장



나의 첫 필름 카메라, 미놀타

첫 필름사진을 인화하고 친구에게 몽땅 전송했다.  '군청 알바할때 토지개발 전에 보던 사진 같다'고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나의 고향. 그 애는 나에게 천부적인 구도 감각이 중학교 때부터 있었다며 말도 안 되는 칭찬을 남발한다. 나는 그 말에 또 두근두근 거린다.


필름 카메라를 배울 때에 초점 이동하는 법은 디에세랄과 같다고 그렇게 배워놓고 다시 헷갈려서 반셔터가 왜 안 안 눌러지는지 혼란스러웠다. 잠시 화가 났다. 카메라 고장 난 줄 알고 중고나라를 욕하고. 손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서 반셔터 생각이나 하다니...


오늘은 필름 카메라 마지막 수업이었다. 배우는 동안 같은 질문에도 매번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했다. 덕분에 필름 카메라를 멀리하지 않을 것 같다. 2019년에 탁월한 슨생님을 만나서 좋은 취미를 시작하고 지속할 용기가 생겼고. 어쩌다 이 작업실을 선택한 행운이 있는 한해였다. 


고압 전봇대 뒤로 비치는 환한 햇빛이 어떻게 찍힐지 궁금했다. 

빛이 번져서 육각형 모양이 나타났다. 저 장소는 내가 초등학교 때 처음 UFO를 목격한 곳이라 의미가 남다르다. 그 이후로도 두 번은 다른 장소에서 보았다. 그러나 저 장소에서 본 UFO가 제일 밝고 가깝고 특이하게 생겼다. 그 이후로 종종 친구들에게 UFO 목격담을 이야기했는데 무시하거나 신기하게 들어주거나 둘 중 하나다. 그걸로 친해질 친구를 많이 판단했다. 어른들에게 말하면 무조건 무시당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내가 꽤 컸다고 생각한 대학 졸업 후로는 UFO 이야기를 접어뒀다. 그 이야기를 실감 나게 하고 있자니 순진하고 바보 같은 이미지가 덧씌워질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언제나 요런 장르의 다큐에 인터뷰할 의향이 있다.



우리 집 우편함은 여러 번 바뀌었는데, 십 년 전쯤 교체한 이후로 늘 같은 자리 같은 모습이다. 우편함이 빨간색이 아닌 게 맘에 들었다. 벽돌과 쇠기둥은 맞은편에도 있는데 낮은 대문이 있던 흔적이 남아있다. 아빠가 힘들게 용접해서 만들어 놓은 대문을 놀이기구처럼 타다가 부숴먹고, 혼나길 반복했다. 그러다가 다시 용접하기 힘들었는지 언제부턴가 대문이 없어졌다.




시골에 전깃줄만 없으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도로가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 정면에 보이는 작은 집이 가게를 겸하고 있다. 어릴 적에 종종 우리 집에 놀러 오는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그 가게를 두고 '구멍가게'라고 말하는 것이 맘에 안 들었다. 작은 가게라고 하면 되지, 그걸 굳이 더 작게 구멍이라고 해? 이 구멍가게는 세 마을의 소소한 간식과 맥주, 어른들의 담배를 담당하고 필요한 건 전부 있는 아주 넉넉한 가게였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돈 때문이라면 저 가게를 운영할 수가 없다. 마을을 위해 누구라도 해야 할 일이라면 세 마을의 중간에 위치한 저 집이 해야 한다.





강아지들의 감옥

쨍한 컨테이너 박스는 어떻게 보일까 궁금해서 찍었다. 이 집 창고에는 강아지 두 마리가 있는데 너무 앙증맞게 생겼지만 늘 묶여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시골 강아지들은 일평생을 그런 식으로 묶여있긴 하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커보니 안타까워 죽겠다. 줄이라도 길게 하던지. 



내 신발 도둑이 저기 있을까

여기는 원래 논이 었는데 밭으로 메꿨다. 그 뒤 마을엔 초등학교 친구가 사는데 나를 엄청 괴롭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 신발을 괴롭혔다. 신발을 창문 밖으로 던져 버리거나 심지어 화장실에서 발견된 적도 있다. 수업이 끝나고 내 신발이 없어지면 친구들이 다 같이 내 신발을 찾아주었다. 또 그 애가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한 번도 그 애가 가져간 것을 본 적은 없다. 그 애는 쉬는 날이면 자전거를 타고 우리 집 앞에 찾아와서 엄마에게 '아울 없어요?'라고 물어봤다. 있어도 얘랑은 안 노는데 얘는 물어보기를 참 잘했다.



나무 건너편 논바닥에서 타는 스케이트, 이제 따뜻해서 얼지도 않음



저 나무 건너에 있는 논이 꽁꽁 얼면 스케이트를 타곤 했었다. 겨울이 되면 얼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얇은 얼음인 줄 모르고 뛰어들었다가 홀짝 젖어서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언제부턴가 겨울이 춥지 않아 스케이트를 타지 못하고 언덕을 찾아 썰매를 탔다. 생각해보니 그 애랑 놀긴 했다. 그 애 누나랑 나랑 내동생이랑 넷이서 자주. 근데 엄밀히 말하면 언니랑 놀 때 꼭 걔가 따라온거다.





이 장면을 찍기 위해 몇 장을 버렸던가

마을 더 깊숙한 곳에 가고 싶었지만 이 나무를 기점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옷을 얇게 입었고 손가락이 너무 시렸다. 초점을 맞추기가 어려운데 겨울에 필름 카메라 찍는 사람들 존경스럽다. 장갑을 끼기엔 너무 뭉뚝해져서 미세하게 카메라를 조작하지 못할 텐데 수술용 장갑은 조금 나을까 생각했다. 수술용 장갑을 끼고 사진 찍을 생각을 하니 너무 간지가 안 난다. 사진만 중요한 게 아니라 사진 찍는 내 모습도 매우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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