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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Jan 28. 2022

유독 사로잡힌 책, 5권

2021년에 읽은 70권 중에 5권

2021년에는 책을 정해두고 읽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한꺼번에 와르르 빌려놓고 끝까지 눈이 가는 책만 완독했다. 그 중에서도 사야할 책만 구입했다. 완독한 70권 쯤이다. 다시 훑어보다가 아직도 이 책이라면 할말이 쏟아지는 것에 대해 기록해본다. 책이 재밌는 것만큼 글로 표현이 안된다. 부족한 어휘력이 이럴때 참 아쉽다. 


리추얼의 종말, 한병철

"일용할 양식은 매력이 없다. 매력은 순식간에 빛바랜다. 반복은 매력 없는 것에서, 눈에 띄지 않는 것에서 실낱에서 집약성을 발견해낸다. 


반면에 늘 새로운 것, 흥분을 일으키는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이미 있는 것을 간과한다. 뜻, 곧 길은 반복 가능하다. 길은 싫증을 유발하지 않는다. 


나는 사건이 전혀 없는 것만 반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에서도 시야에 들어오는 무언가가 나를 기쁘게 해왔다(한낮의 빛이나 어스름). 일몰만 해도 사건의 성격을 띠었으며 반복 불가능하다. 나는 특정한 빛이나 어스름조차 반복할 수 없으며 오로지 길만 반복할 수 있다. 리추얼의 종말, 한병철 p. 19


책을 읽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정도다. 기존에 의문을 품었던 생각에 확신을 주는 것과 그 의문이 편견과 오해였다는 사실을 밝히는 책. 그런데 한병철은 늘 생각도 못한 범주 안에서 밝혀내고 진단한다. 그리 평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극히 평범한 내 자신이 어이가 없다. 유독 단언하는 말투가 거만하게 느껴지기는데 자기만의 철학이 견고해서 그런 것 같다. 골수분자와 현명한 사람은 한 끗 차이겠지만. 늘 삶에서 '이유'를 생각하는 사람 같다.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 신박진영

'남자들끼리 비교하며 기죽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 

"40년간 성 구매를 했다는 자부심에 차있는 남성을 인터뷰하면서 얘기를 들었다. 그는 성 구매를 할수록 '본전'이 아까워서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다. 약물도 삽입하고, 인테리어도 하고, 결국 성기 확대술까지 받았다. 성기를 키우면 성매매 여성들은 싫어하며, 아무리 돈을 더 준다고 해도 거절당하기 십상이다. 알면서도 그는 성기의 크기에 연연했다. 


대규모 성 산업을 보유한 일본과 한국의 커플 간 섹스는 거의 바닥권이다. 남성들에게 '돈만 있으면 너도 주인님이 될 수 있다'는 망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대체 누구의 주인인가? 성 구매자는 섹스에서 소외된 시장의 노예일 뿐이다. "


상식적으로 성매매가 얼마나 활개를 치는지 활동가의 눈으로 본 책이다. 아무도 이렇게까지 자세히 말해준 적 없었다. '그럴 수도 있다' '한 번은 해봤다' 등등 조종 남자들은 무식하고, 소름 끼치는 말을 알고나 하는 건지 서스름이 없다. 성매매는 산업이다. 유희나 오락이 아니다. 반대편에서 누군가 명확하게 피해를 보고 생명을 잃어가는 일이다. 공감 능력은 지성이다. 지성 없는 사람, 지성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과 말도 섞기 싫다. 막연히 안 좋지~ 안됐지~ 이런 입장이었다가 추악한 세계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끔 소름 끼친다. 오늘 출근하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업소를 지나쳤을지.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정현주 (김환기 화백과 그 아내 김향안의 이야기)

'사랑은 지성이다.'

전에도 이런 사랑을 본 적이 있다. 제주도에서 우연히 이중섭미술관에 갔다. 거기서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를 전부 읽었다. 전시된 하나를 읽고 눈을 뗄 수 없어서 끝까지 읽었는데, 혼자 갔더라면 아마 눈물이 났을 것 같다. 


불안정하고 녹록지 않은 생계에도 화가로서의 자신의 꿈을 끝까지 지지하며, 영감을 주는 일은 화가만큼 대단한 업적이다. 그 옆을 지키는 것만으로 화가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 같다. 지금은 쪽지에 남긴 그림조차 유명해졌다. 자신의 사랑을 의심 없이 만끽했다. 함께 나이 들어가며 달라지는 건 없었다. 


김환기 화가는 알았을까. 김향안의 사랑이 어디까지 왔는지. 보통 로맨스 영화 보면 연애하고픈 욕구가 솟다가, 금방 사그라지는데 이 책을 읽고서는 둘의 사랑이 종교처럼 느껴졌다. 감히 나는 사랑을 할 만한 사람인지 되돌아보게 됐다. 

달까지 가자

"이런 식의 박음질이 더는 지겨웠다. 나는 그냥 부스터 같은 걸 달아서 한 번에 치솟고 싶었다. 점프하고 싶었다. 뛰어오르고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면 머릿속에 들어와서 그 생각을 끄집어내는 것 같았다. 다른 책 보다 진지한 마음으로 읽었던 건 아니었는데도, 장류진은 두 번째 소설까지 완벽했다. 동시대를 사는 비슷한 또래의 작가가 정말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우리가 각자 다른 인생을 사는 것 같으면서도 어떤 면에서 너무 비슷하다. 그래서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위안이 되기도 한다.






가난의 문법, 소준섭

 “누군가의 가난을 보며 사회의 불안정함을 깨닫는 것으로 보이지만.. 상대적 안정감을 확인하고 두려움을 상기하는 것으로 이어질 따름이다”


우리의 가난은 개인의 노력 때문이 아니다. 사회구조 탓으로 돌리며 핑계 대는 말은 그만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완전히 이 이슈를 뒤로 젖혀주고 노력만 하다간 아마 우울증에 걸릴 것이다.


성공이 멀고, 돈 때문에 짜증 나면 이런 책이 좋다. 화낼 곳이 있다. 그리고 다시 어떤 면에서 노력해야 할지 떠오른다. 이걸 국가에게 기대하긴 틀렸구나, 이런 식으로 살다가 다 나락으로 가겠구나 하는 판단이 선다. 그리고 교묘하게 가난과 복지를 이용한 정책들을 판단할 수 있게 된다. 누구에게 투표하지 않을지 않다. 어떤 정당에 후원할지 알 수 있다.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 안과 밖으로 어제보다 그래도 달라지기 위해서 노력하고 싶어 진다.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저자가 체념한 것으로 보이는 말투가 아른 거린다. '두려움을 상기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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