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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Mar 28. 2022

관계를 추측하지 말 것

퇴근 후에 비로소 배우는 것들

40대처럼 보이는 성인 남녀와 초등학생이 공방에 왔다. 즐거운 산책을 마쳤는지 밝고 오래가는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자리를 안내하기도 전에 아이를 가운데 두고 세명이 나란히 앉는다. 빨리 만들고 싶어 하는 아이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클래스 시작 전에는 적어야  문항들이 있어서 앞에 보이는 종이를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 당연히 종이를 향할 때에, 남자가 이서더니 나를 향해 얼굴을  가까이에 댔다.


"선생님, 잠시만요. 제 아들 아니에요.

결혼한 사이 아니고, 그냥 만나는 사이예요"


당황해서 제대로 듣지 못했고 한번 더 물어봤다. 알아듣지 못했다기보다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한 순간 앞으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를 판단해야 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에 시작부터 긴장이 됐다. 아이의 엄마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신경 쓰지 않았다.


수업하는 동안  언행으로 이상한 분위기를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보통은 해야  것들만 많았는데, 이번 수업은 그런   제쳐두고 금지어만 떠올랐다.


 '아빠라고 부르지 .. 아빠 아님. 아빠 아님. 아들과 엄마는 맞아. , 남편 분이라고 불러도 안되지. 이름 적어둔  어디 있지? 이름을 부르자 이름. 경훈님 경훈님 경훈님'


엄마라고 했다가, 남자분을 부를 때에는 또 멈칫해서 나중에는 '여자분, 남자분'이라고 말했다. 사람을 성별로 부르는 나 자신이 어이가 없었는데 다른 말들이 익숙하지 않아서, 익숙한 말로 불렀다.


다행히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멋쩍은 상황은 없었다. 수업 시간이 길게 느껴져서 그런지 피곤이 밀려온다. 같이 일하는 선생님께서 남자분이 무슨 말한 거냐고 물어보았다. 그제야 이 상황에 대해서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엄마와 아들은 맞는데 아빠는 아니라서 먼저 알려주시더라고요."

"아 그런 사이가 종종 있어요. 연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친구이기도 하고 그래서 사진 찍히길 거부하기도 해요. 어른들이랑 같이 오는 아이의 경우에는 부모님이 아니라 삼촌, 이모인 경우도 있고."


이혼한 가정, 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은 아이들에 대해서 정말 많이 들었고 읽었다. 그뿐 아니라 친척, 친구들에게도 흔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난 아직도 나의 직계가족의 상황이 당연하고 보편적이라고 생각했었나? 나에게 이런 단순무식한 추측이 얼마나 더 있을지 무섭다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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