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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Apr 05. 2022

글쓰기가 권태로워질 때

퇴근 후에 비로소 배우는 것들

무언가를 쓰는 법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다.  써야 하는 부담만 있고, 욕구와 실행력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쓸  주제에 대해서 뒤엎기를 반복한다. 변명이 구차하게 늘어간다. 지금 쓸 내용은 아닌 것 같고, 이 내용으로는 600자 이상 쓸 수 없을 것만 같다. 쓰지도 않았는데 쓰지 말아야 할 이유를 생각한다. 행동하지 않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 난데 옴짝달싹 못하고 갇힌 기분만 든다. 


미루고 두려워하는 이유


왜 이렇게 어려워졌는지 여러 가지 이유를 찾아보긴 했다. '악플 때문에 현타 왔었고, 조회수에 집착했었고, 글쓰기에 성과를 바라기 시작했더니 부담감에 가득 차 글쓰기가 무서워졌다.' 그 이유에 수긍을 하고 나서도 다음 행동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우물쭈물한 시간이 길다. 아무리 칭찬을 받고 내 글을 기다려주고 재촉하는 더 좋은 사람들이 있어도, 자꾸 좋은 것만 곱씹어봐도 오래가지 않는다. 


한참 쓰기에 몰두했을 때에는 저런 변명이 이유가 되지 않았다. 지금 쓸 내용 따위 생각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썼다. 어딜 가나 영감이었다. 누굴 만나서 재밌는 이야기를 하면, 길을 가다 시시콜콜한 사건을 떠올리고, 실수를 하다가 행복에 겨워하다가도 메모장에 기록했다. 짧게 라도 기록하면 충분했다. 한번 쓰기 시작하면 구조를 짜고 쓰는 것이 아니라서 두세 시간 안에 글을 썼고, 또 두 시간 안에 수정을 마쳤다. 쏟아내듯 키보드를 쓸 때 느끼는 쾌감을 아니까 그걸 하지 못해 더 괴롭다. 쓰지 말아야 할 이유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오로지 쓸 것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글쓰기를 저지하는 것들이 이제 외부인지 내부 인지도 헷갈린다. 어디에서나 쓸 것이 많던 그 생생함이 어디로 사라졌을까. 한번 좌절된 글쓰기에 의욕이 되찾는 건 나 스스로 해야 할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게 언제일지 기다린다. 기다리면 안 되고, 그 시기를 가늠하지 말고 그저 써나가면 된다고 말하는 작가들을 따라 하는 방법밖에 안 남았다. 


누군가가 나에게 '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다만 나를 규정하는 많은 것들 중에 '글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선명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생각보다 일상에 글쓰기의 존재감이 단단히 자리 잡았었다. 글쓰기만 생각하면 마음처럼 써 내려가지 못하는 답답한 마음에, 이런 글을 쓸 때조차 괴로우면서 기쁘게 쓰고 있으니까. 한편으로 안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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