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함을 드러날 때, 위안이 되었던 말

내가 초라할 때가 있다. 가진 게 없어서, 더 성취하지 못해서, 여유롭지 않아서, 마음이 작아서. 이런 상태가 드러날 때 말하는 버릇이 있다. '좀 특이하죠?' 라고.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듣고 싶은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멋쩍어 괜히 이런 식으로 빙 둘러대곤 한다. 아마 꽤 오래전부터 그런 식의 대화법을 구사했던 것 같다. 그 치사한 질문에 A의 답변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좀 특이하죠?' 

'아니요, 그럴 수 있죠'

별 다른 말은 아니었다. 강한 어조도 아니고 공감 가득한 의지적인 말투도 아니었다. 그냥 밥은 먹고 지내? 같은 일상적이고 안정적인 톤으로 말했다. 한번도 이런 톤으로 대답을 들어온 적이 없어서 약간의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그럴 수 있다'는 말을 하는 A가 특이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그말을 애타게 기다려 왔었고, 그 대답을 찾아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되물어왔던 것 같다. 이제 누군가에게 '특이하죠?'라는 질문은 안심하고 걷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야 드디어, 마음이 놓인다. 나도 모르는 경계가 없어졌다. A와 나사이의 경계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나의 경계였다. 타인에게 이상하게 비칠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그걸 감추기 위한 냉소적인 가면. 오래 스며든 이런 습관이 떠올랐다. 솔직히 내가 나를 초라하게 취급하는 것, 그 이상의 어떤 의미도 없는 일들 일지도 모른다.

사실 웬만해선 다 괜찮지 않을까. 억울해서 속이 부글부글하다. 간혹 타인들과 삶을 꾸려가는 게 아니라 나와 또 다른 나 자신들과 살아가는 것 같다. 나에게 갇혀버린 것 같다. 너무 많이 반성하고 있다. 이 글에서도 '나' '내가'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한동안은 글을 쓴 이후에 나를 지칭하는 말들을 다시 지우며 고쳐쓰기도 했다. 지금은 남겨둬야겠다. 나로 치우친 글쓰기면 어때, 전혀 특이하지 않고 이상할 것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