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들에게 100번 들은 질문
시골을 떠나온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나의 근본은 촌사람이다.
촌스러운 건강한 밥상이 좋고, 반짝이는 도시국가로의 여행보다 자연이 가득한 나라들로의 여행이 좋다. 지금 이 도시에서도 최대한 시골 같은 느낌으로 살고 있다. 차분하고 아늑하게. 그래서 지금 당장 시골로 내려가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영위할 것 같다.
시골에 대한 어릴 적 향수가 깊고 자랑을 많이 해서인지 여러 질문을 받아왔다. 그 질문 기저에 극단적으로 이분법적인 시골-도시의 생활이 자리 잡혀있는 것 같다. 인구의 90%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어서, 깊게 상상하기 어려울 것 같긴 하다. 사실 서울과 소도시의 간격도 엄청 크기에 시골 출신인 나는 겨우 여기에 살면서 시골과 되게 비교한다고 어이없는 마음도 들었다. 그때는 시골이 좋기도 했지만 은근한 자격지심도 있던 것 같다. 이제는 그 질문에 순수하고 솔직하게 답변할 수 있을 것 같다. 둘다 좋아도 시골이 더 멋지다는 걸 뼛속까지 알기 때문이다.
시골에 살면 무섭지 않을까.
100번은 더 들어온 지긋지긋한 질문이다. 단순한 궁금증이 었을 수 있지만 그 안에 은근한 공격이 있다고 느껴지던 시절도 있었다. 구체적으로 무엇으로부터의 무서움이냐고 물었다. 주로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 지내는 것. 밤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시골이 도시처럼 오랜 시간 밝은 빛에 휩싸여 있는 건 아니다. 인구도 적고 오가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가로등 불빛이 있는 곳만 밝긴 하다. 그러나 그 밤에 우리는 주로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집 안에서는 집 밖의 공간이 온통 어두움일지라도 무서움을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멀리 떨어진 이웃들도 모두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에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잘 지내고 있기 때문에 어두운 공간은 넓지만 함께 지낸다고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아마 도시인들이 시골에서 와서 이웃과 친하지도 않고 외딴집에 혼자 있다면 무서울 것 같다. 그건 내가 도시로 와서도 마찬가지였고, 다른 시골로 가도 똑같이 느껴질 두려움이다. 시골이라서 무서운 게 아니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외롭고 그 외로움이 두려움과 공포로 다가온다.
시골에 살면 심심하지 않을까.
이 질문은 무섭지 않냐는 질문과 이어진다. 평소에 사람을 자주 만나면서 지내는 사람이라면 친구들을 다 도시에 두고 홀로 내려오면 심심하다. 그건 시골이라서가 아니라 타지여서 그렇다. 친구를 사귀기만 한다면 시골은 천국이 된다. 대부분이 주택에 살기 때문에 뛰어놀아도 되고 비교적 시끄러워도 괜찮다. 조금 많이 한 요리는 바로바로 옆집에 가져다줄 수 있고. 못생긴 농산물은 수확철에 맞춰 서로 나누기도 한다.
이와 반대로 시골이라서 매일 필라테스를 가지 못하고, 도서관이 멀고, 영화관이 없을 수도 있다. 괜찮은 술집도 없고 카페도 한참을 가야 할 수 있다. 모든 생활방식이 바뀌더라도 익숙해지면 자신만의 삶을 찾아나갈 수 있다. 심심하게 사는 건 시골이라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조각조각 선택한 삶이다.
언젠가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
요즘은 시골 출신에 대한 은근한 비하보다는 '언젠가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같은 말이 더 자주 들린다. 그러나 장밋빛 미래도 조심해야 한다. 아까 말했듯이 결국 도시건 시골이건 사람과의 관계에 따른다. 시골의 인심, 정을 나눌만한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어야 가능한 일이다. 시골에 갔다고 모두가 후한 인심으로 사는 건 아니고 도시에 산다고 해서 모두가 인색한 건 아니듯이. 그러나 나도 도시가 인색하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데 예를 들어 목욕탕에서 등을 밀어주기를 거절당하거나, 길가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도와주려 할 때 오히려 위협을 당한 일을 겪은 후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굴 수가 없어졌다.
내 기준에는 시골은 사람이 없고, 도시는 사람이 많은 곳이다. 그곳에서 내가 무엇을 누구와 어떻게 지낼지는 각자 잘 고민해봐야 한다. 마냥 심심하고 마냥 무서운 건 대부분 망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