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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May 29. 2022

사람 옆에 있는 개에 관하여

피만 뽑히는 공혈견을 아세요?

나는 동물을 귀여워할  사랑하거나 가족처럼 느끼지 못한다.  키울 생각은 한 번도 가져본  없다. 생명을 죽을 때까지 책임져야 하는데, 그게 만약 한 달에 수십만 원, 1년에 천만 원도 넘을  있다면? 나는 치료하지 않을 것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는 생명을 내가 '적당히' 책임지는 방식으로, 그때 가서야 개는 동물일 뿐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치료를 중단하고 싶지 않다. 어쨌든 개들도 사람처럼 늙고 병들고 죽는다. 나에게 와서 치료도 못 받고 어갈 수도 있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해야 한다.  


개들이 사람만큼 많이 보인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부모들만큼 이 보인다. 어떤 사람은 강아지의 모든 병을 고쳐주고 있다. 강아지를 어린아이처럼 살피는 사람들에게 묘한 이질감과 존경스러움이 느껴진다. 개에게서 사람에게 들을 법만 병명(빈혈, 방광염, 심부전 같은) 최근에 알았다. 빈혈을 치료하기 위해 수혈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럼 개들도 헌혈을 하는 거냐고 물어봤더니 피만 뽑기 위해 키워지는 개들이 있다고 한다. 공혈견.


사람의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인조인간을 만들어서 필요한 장기만 가져 다 쓰고 죽이는 영화를 많이 봤다. 그런 현실을 오면 안 되지 않나, 충격받았는데.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던 것이다. 사람이 공혈견들의 피를 뽑아서 자기가 키우는 개들에게 주는 행위를 허용했다면, 언젠가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세상이 오 겠지? 부자들은 나와 비슷한 사람을 키워서, 내가 필요할 때 쓰고 죽일  있을  같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하지만  미래(심지어 가까울 수도 있고)에는 지금 개에게 드는 감정처럼 불편한 진실 정도로 치부하고 말지도 모르겠다.


모든 개를 살릴 순 없지만, 죽기 위해서 태어나는 개가 있다면 사는 개들에게 과한 특혜가 아닌가?


모든 사람을 살릴  없지만, 사람을 리기 위해 죽어야 할 사람이 만들어진다면 어떤가? 그때에도 사람은 지성이 있고 존엄한 존재일까?


출근할 때마다 마주치는 강아지가 있다. 1미터도 안 되는 목줄을 메고 있다.  앞에서 똥을 싸야 하고  냄새를 맡으며 밥을 먹어야 하는 처참한 생이다.  개의 눈빛이 지나칠 때마다 아른거린다. 내가 살려줄 수도 없는데 거기 살아도 사는 것처럼 보이지가 않다. 아파트에서 곱게 자라는 강아지를 보면 동시에 공혈견이 떠오른다. 주인 잘 만난 강아지를 치료하기 위해 어떤 공혈견들을 죽기 전까지 고통받고 있어야 하는  세계가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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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혈견을 용납하는 사회가 아니라, 자신의 강아지도 헌혈할  있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동물은 귀여워서 외로워서 키우기엔 책임질 일이 많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5145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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