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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Dec 09. 2022

삶은 때때로 피아니시모

코로나 자가격리 4일 차 후기

코로나 자가격리 4일 차가 되었다. 몸이 아직도 무겁지만 겨우 샤워할 정도는 됐다. 다시 오한이 찾아올까 걱정도 했다. 그래도 하루 종일 누워있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상쾌하게 머리도 말리고, 빨래도 하고, 라면도 끓였다. 다큐멘터리도 한편 보고 요약해서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다. 이 일들은 연속적으로 2-3시간 안에 했다.


맑은 가을처럼 날씨가 좋다. 해낸 일이 많아서 기분도 좋도 배도 부르니 나른했다. 해가 내리쬐는 창가를 옆에 두고 편하게 잠들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난 지금은 오후 5시 반이다. 평소 같았으면 하루를 날려버린 기분이 들었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아픈 몸 치고 한 게 많다. 평소에는 작은 습관을 이어나가겠다고 너무 무리하게 일을 계획하기도 했었다. 맨날 다 하지 못하며 반성하기 일쑤였다. 아프고 보니 그동안 얼마나 많을 일을 해냈는지 감사할 따름이다.


오전에 넷플릭스 스터츠: 마음을 다스리는 마스터라는 다큐를 봤다. 정신과 의사가 소개한 툴 중에 진주목걸 방법이 나의 오늘 하루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의사는 삶을 진주 목걸이를 꿰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고 했다. 노력의 가치를 저울질하지 말고 자기의 삶을 계속 운용해나가야 한다고 말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도 진주는 꿰는 일이다. 책을 5분 읽고, 친구와 전화를 하는 것도 말이다. 


그러나 불안한 사람들은 작은 진주 구슬을 꿰는 것보다 스냅숏만 바라보느라 정신이 팔려있다. 하지만 스냅숏은 실제 삶과 달리 움직이지도 않고 깊이도 없고 살아있지도 않다. 과연 그곳에 도달한다고 해서 행복해질까? 스터츠는 행복은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뻔한 말이어도 자꾸 망각하고 있다.

스냅숏: 각자가 선망하는 꿈, 이상향


과정의 아름다움을 비유하는 말 중에 '우리가 클래식을 듣는 이유가 끝음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클래식을 좋아하기에 유독 마음에 와닿았다. 


대학생 때 교양 음악을 수강했었다. 시험마다 클래식 30여 곡을 듣고 작곡가와 제목을 맞춰야 했었다. 나는 예상으로 나올법한 곡을 모조리 다운로드하여서 주로 하이라이트 부분을 듣고 외웠다. 나중에 이 교양과목을 듣는 사람과 이야기 나눈 일이 있었다. 그는 첼로 전공자였다. 나는 당당히 A+를 맞았었고, 그 비결은 하이라이트만 외운 방식을 알려줬다. 그런데 첼로남은 '그 부분이 하이라이트처럼 들렸냐'라고 반문했다. 나는 그때까지 모두가 나와 똑같은 부분은 하이라이트라고 여겼으리라고 믿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절정은 반드시 다르다. 이 사실이 음악 하나에도 적용될 수 있었다. 


삶은 각자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과 닮았을 것이다. 연주 과정 안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끝이 있다는 걸 알아서 조금 더 진지해지고, 소중해질 뿐이다. 긴 음악을 연주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느리게 연주하는 부분, 여리게 연주하는 부분이 반드시 있다. 심지어 내가 사랑하는 부분은 피아니시모가 가득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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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듣는 바흐

https://www.youtube.com/watch?v=_ioc6sdgugo&t=145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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