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아울 Feb 17. 2023

가격표를 볼 때마다 흔들린다면

1년 동안 사고 싶은 걸 다 사본 후기

가격표를 볼 때마다 머릿속에 경보가 울려선 안 된다. 충분한 돈이 있을 때조차 무언가를 살 만한 여력이 되는지 스스로 따져본 적이 있다면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관한 생각의 프레임을 되돌아봐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우려나 불안 없이 스스로 재정적인 결정을 하는 것이다

- 닉 메기울리, JUST KEEP BUYING


투자에 욕심이 생기니 쓸 때마다 죄책감이 생겼다. '커피 먹지 않더라면, 택시 타지 않더라면'같이 자잘한 생각이 계속 스트레스였다. 그런 시절로 인해 돈을 모을 수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을 덜 하더라도 충분히 저축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때와 용돈이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풍족하다고 느낀다. 심지어 사고 싶은 걸 전부 다 샀다. 어차피 용돈으로 쓰기로 한 돈이라면 최대한 누리면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돈을 쓰면서도 여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생각만 바꿨을 뿐이다. 한정된 시간 내에서 우선순위를 두면서 일을 하는 것처럼, 정해진 돈 안에서 가장 원하는 것부터 샀다. 중요한 건 현금흐름이지 절약 그 자체가 아니다. 


마음껏 쓸 수 있었던 이유


위시리스트를 만들고 나서 사고 싶은 것들을 전부 샀다. 돈이 많아서도 아니고, 원하는 게 적지도 않았다. 가지고 싶은 물건을 기록하면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값이 꽤 나가는 것들은 몇 달 동안 모을지 계획하고, 중고로 사도 되는 제품은 당근마켓에서 찾아보면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것으로 사는 것이다. 애매하게 이도저도 아닌 물건을 충동적으로 구매해서 얼마 안 쓰고 버릴 바에야, 오래 쓰고 아껴줄 만한 물건으로 사야 한다. 이렇게 하면 사랑할 물건만 살 수 있게 된다. 


이런 마음으로 소비하다 보니 삶의 의욕이 생기기도 했다. 갖고 싶은 게 많으니 기분 좋게 일하게 된다. 일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필요도 없으니 기회가 주어지면 별다른 거부감이 생기지 않았다. 올해 아이맥을 살 수 있다면 하찮은 일이 무슨 대수냐. 직장인이라  소비하는 시간보다 일하는 시간이 월등히 긴데 이때에 딱히 의미를 운운하지 않게 되니 삶이 단순해졌다. 


소비하고 난 이후 달라진 생각들


자본주의 시대에 소비는 안목을 높인다. 살면서 소비하지 않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은 별로 없다. 구매하는 행위는  '저축, 투자'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구매력을 통해 안목을 높이는 과정이다. 우리는 여행을 책이 아니라 직접 다녀와야 이야기할 거리가 풍부해진다. 그 경험은 고스란히 안목이 된다. 간접 경험보다 직접 경험이 비싼 이유다. 전화 영어보다 화상영어가 비싼 이유, 책보다 영화, 영화보다 공연이 더 비싼 이유다.  


40대 직장동료는 열렬한 아미인데, 코로나 시국에 공연 보러 미국에도 갔다. 얼마 전 회식에서 하이브 주식에 대해서 말하곤 했는데 다음날 SM 인수 이슈로 폭등하기도 했다. 나는 방탄 이야기를 매번 들어도 아직도 곡 하나도 모른다. K-POP, 방탄에 대해 아무것도 소비하지 않으니 그 분야에 대해 안목도 전혀 없다.


두 번째로, 무언가를 애쓰며 지속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사고 싶은 것마다 죄책감을 느끼면서 구매하는 건 오히려 정신건강까지 해친다. 무슨 일이든 '인내'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지만 가장 고난도의 경지이기도 하다.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가 가장 중요한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은 반지의 유혹을 인내했기 때문이 아니겠나! 그러나 현실에서 인내도 쉽게 하는 법이 있다. 뇌를 속이면 된다. 마치 인내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소비 습관을 설계하면 된다. 나는 위시리스트를 만든 이후에 더 이상 사고 싶은걸 못 산다고 징징거리지 않게 됐다. 


같은 돈이라도 절약하는 기분으로 살면 삶이 초라하고, 정신승리에 예민해지는데 안목을 높이는 방향으로 우선순위를 골라 소비한다고 생각하니 나를 대우해주고 있다는 느낌으로 가득 차 있다. 아마 돈이 더 많아져도 이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마 위시리스트에 있는 것들을 더 빨리 사거나, 높아진 안목으로 좋은 물건을 알아볼 수 있겠지. 올해에도 내가 구매할 것들이 기대된다.



- 저자의 안목에 관한 글


매거진의 이전글 30년 만에 재취업한 엄마의 자소서를 읽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