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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May 24. 2023

하나도 자연스럽지 않아

처음 만난 이야기

B는 회의에 참여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각자 다니던 회사와는 관련 없이 참여했었다. oo씨였던 B와는 서로 이름조차 부를 일 없었고 겨우 눈인사정도만 했다. 다소 경직된 회의라 마이크가 주어지면 그때서야 주제와 관련된 의견만 말했다. 회의 앞뒤로 이야기 나눌 시간은 없었다. 다들 맞춰서 오고 끝나자마자 헤어졌다. 그때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는 누가 소개팅을 주선한 것도 아니니까 자연스럽게 만난 셈이었다. 바로 그 어렵다는 자만추! 하지만 B의 생각은 달랐다. '누가 억지로 맺어준 게 아닌데 이 정도면 우연히, 자연스럽게 만난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나게 된 이유는 '밥 한번 같이 먹자'라고 말한 일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곧이어 그게 얼마나 부자연스러웠는지 듣게 되었다.


B는 자신을 축하하기 위한 회식자리 도중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래야 오늘 마지막 회의에 참석해서 얼굴 보고 말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마지막 회의에 참석 안 하려고 담당자에게 전화까지 했었다. 짧게 끝날 거라고 해서 얼굴만 비추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B를 만나고 새로운 일, 처음 가본 곳들이 많아졌다. 여러 상황을 마주할 때 나는 '자연스럽게 하자'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면 B는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라며 이유를 말해줬다. 자연스럽지 않으니까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부자연스러움을 알고 제대로 준비하자는 쪽이었다. 웃으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


그래도 깨달은 지점이 많다. 내가 생각한 자연스러움은 '저절로 이뤄지길 바라는 욕심' 같다. 문제가 풀리길 기다리기만 하면서 마치 '자연스러운 때'를 기다린다고 포장하는 셈.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도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다.


B는 요즘 나의 부실한 아침식사를 걱정하더니, 발효기를 주문했고 모닝빵을 만들어주겠다며 열심히 테스트하고 있다. 어제까지 4번째의 다른 빵을 맛보았다. 마지막 빵은 퍽퍽하다고 말했다. B는 이런 수고가 편안한 상태에서 이뤄진다. 나는 자연스럽게 하자면서도 부단히 애쓰고 있다. 쓸데없는 곳에 힘이 잔뜩 들어간 것 같다.


분명한 건 내가 원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될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설사 그런 일이 오더라도 운을 바라는 것보다, 내가 해볼 수 있는 일에 정성을 더하고 싶다. 삶은 대체로 부자연스러운 게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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