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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Jul 19. 2023

중심만 잡으면 돼

흙 만지는 회사원의 도예 일지

물레성형법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시작 단계, 중심 잡기가 있다. 흙덩이를 가운데 붙이고 단단하게 고정시킨 다음 중심을 잡히게 하는 과정이다. 초보자인 나는 이게 중심이 잡힌 건지도 가늠이 안 선다. '손바닥 안에서 흙이 돌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불확실한 판단은 흙을 올리기 시작하면 신랄하게 드러난다. 조금이라도 틀어져 있을 경우 원심력 때문에 한쪽으로 기울어서 순식간에 주저앉게 된다. 그러다 보니 물레 성형법에서 중심잡기는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다.


중심을 잡을 때에는 의심할 여지없이 확신이 서야 했다. '이 정도면 됐지'하는 어물쩍이 통하질 않는다. 그리고 그건 스스로 체득해야만 한다. 중심을 잡지 못하면 더 이상의 진도를 밟아나갈 수 없다. 간혹 딴 생각을 하다가 중심이 잡힌 줄 알고 올렸던 적도 있는데 옆에 보던 선생님께서 알려주시기도 했다. 꼭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아니라 외부에서 보는 시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kg이나 되는 흙을 가지고 중심 잡기 할 때부터 내가 생각한 도자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 본 로맨틱한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어떤 분은 옆에서 '흙이랑 싸우는 것 같지 않나요?'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정말 꼭 들어맞는 말이다. 안간힘으로 흙의 움직임을 버텨내서 중심에서만 놀 수 있게 해야 한다. 하지만 숙련되면 과도한 힘이 아니라 적당하게 사용할 수 있다. 난 아직도 손목과 어깨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그나마 중심 잡는 속도가 빨라지는 건 나만의 자세를 알아냈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허벅지 사이에 팔꿈치를 껴서 몸의 힘으로 누르라고 했지만 사람마다 신체구조가 달라서, 다르게 해도 된다고 했다. 나는 그 자세로는 절대로 팔을 지지할 수 없었고 골반에 지지하는 것이 안정적이었다. 이 자세를 찾기까지 발판도 놓아보고, 두꺼운 방석도 깔아보고, 발의 위치, 손의 위치를 수없이 바꿔보았다. 골반에 잘 지지해서 몸의 힘을 잘 전달하게 되면 손목을 조금 조정해 보려고 한다. 손목을 너무 꺾으면 무리가 간다고 했는데 지금이 이 동작 말고 다른 최적의 위치를 찾질 못했다.


나는 그동안 중심만 잡으면 뭐든 술술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중심이 잘 잡아지는 날, 이제 어느 정도 할 줄 안다고 느꼈던 날에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제 흙을 끌어올리는 법을 배울 차례였기 때문이다. 또다시 눈만 끔뻑이는 초보가 됐다. 덩어리째 있는 흙에 구멍을 파서 끌어올려야 하는데 잡아둔 중심이 어디로 도망을 간 건지 휘청인다. 막막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흙을 만지면 오늘은 모르겠는데, 내일은 분명하게 느껴지는 마음이 있다. '아 어제보다 달라졌구나' 한다. 그래서 일단 작업실로 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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