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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Jul 18. 2024

비단길을 찾아서

아찔한 등산 후기

남편과 나는 연애시절에 동동 등산을 했다. 작년에는 릴스에서 본 설악산의 울산바위가 보고 싶어서 여름휴가를 쓰고 속초에 다녀왔다. 멋지긴 해도 기대했던 만큼 황홀하진 않았다. 그 이후로 여름산행도 했다는 자신감이 붙어서 인지 또 산에 오르고 싶었다.


집 근처 30분 동안 차를 타면 꽤 험하게 오를만한 산이 있다. 대부분의 다녀왔던 산은 나름의 매력이 있는데, 난 아직 이 산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했다. 집 가까우니까 가는 편이라 제일 많이 올랐던 산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가장 기억 남는 산이 바로 이 모악산이다.


남편과 나는 연애시절에 모악산의 여러 코스 중 새로운 길을 도전해 보자고 했다. 느리지만 비교적 편안하게 올라갈 수 있다고 추천받았다. 마음 편하게 오르겠다 싶어서 마음이 가벼웠다. 도착해 보니 아는 사람만 가는 곳 같았다. 주차장은 이제 정비 중이고 입구도 제대로 표시되어 있지 않아 앞선 사람들을 따라갔다. 동네도 지나고 산 어귀의 복숭아 밭을 지나니 꽤 오래된 편백숲이 우거져 있었다.

 

정상에 다다르면서는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숲이 우거져 있어서 뚝뚝 떨어지진 않았지만 천천히 축축해졌다. 앞서 오르던 사람들이 내려오기도 했었다. 정상에 올라서 잘 보이지 않은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내려갈 때에는 조금 편하고 싶었던지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여전히 사진이 더 멋있다


도무지 생각해도 우리가 올라온 길이 길긴 해도 전혀 완만하지 않았기에 기존에 다니던 곳에 비해 쉽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내려와서 등산 지도가 있길래 자세히 여러 갈래를 확인했다.


"어 우리가 올라왔던 방향에 비단길이 있네?"

"거기로 올라왔어야 했나 보다."

"어쩐지 쉽진 않았어"


우리는 비단길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사람들이 역시 더 많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깊은 산이라 이제 방향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려서 종종 앞지르는 등산객들만 마주칠 뿐이었다. 비는 더 세차게 내렸다.


"오빠 이게 비단길이 맞을까?"

"그런가 봐. 우리가 비단길을 너무 쉽게 생각할 수도 있어."

"하긴 지금 더 피곤하기도 하고, 내리막이 더 힘들더라"


40분쯤 지났을까? 방향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나는 핸드폰을 켜서 위치를 확인했다. 이쯤 되면 다 왔을 것 같았는데 지도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완전히 반대방향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빠 우리 지금 반대방향이야!!! "

"어? "

"다른 길로 내려오고 있어! 여긴 비단길이 아니었던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린 5시가 넘어 어두워지고 있을 때라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순 없었다. 앞으로 가면 2시간 뒤로 가면 3시간을 가야 했다. 그렇게 나름 합리적인 생각으로 비단길 가려다 5시간 산행을 마쳤다. 도착지엔 차가 없으니 20분을 기다려 마을버스를 40분간 타고 시내로 들어왔다. 시내에서 주차해둔 마을까지는 교통편이 없어 택시를 불렀다. 그때서야 배가 너무 고프고 헛웃음이 나왔다.


"비단길 가려다 뭔 고생이야"

"그러게? 근데 나 기분이 좋아. 5시간 산행은 10년 만에 처음이야. 나 건강한 사람이네."


결국은 기분이 좋고 하루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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