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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Jul 20. 2020

피아노 치는 할머니

#04 독서에세이 /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타샤튜터 나의 정

이번 주 마기슬(글쓰기 모임)의 공통 주제는 <내가 가지고 싶은 나의 모습>이다. 모호한 주제에 다들 당황했나보다. 아무도 마감일을 지키지 못해 3일이나 연장하자는 제안에 만장일치 합의했다. 주제가 어려운 탓이라는 귀여운 합리화도 제법 늘었다.

노트북에 붙인 우야다 할매 스티커를 보면서 내가 되고 싶은 할머니를 상상했다. 이 그림을 그린 작가는 제주에서 열린 독립출판물 페어에서 만났다. 자기가 되고 싶은 할머니를 그림으로 그린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목표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우야다 할매는 자유롭고 열정적이고 매력이 흘러넘친다. 우야다스튜디오에 가면 할머니가 요가도 하고 우쿨렐레도 연주하고 겨드랑이 털도 말리고 있다.
비키니를 벗어던지고 바닷가에서 썬텐하는 우야다할매

내가 할머니가 된다면 감성 가득했으면 좋겠고 그런 마음으로 피아노를 아름답게 연주하는 모습을 갖고 싶다. 그런 모습을 꿈꾸기까지 여러 할머니들이 롤모델이 되었다. 작가의 상상  우야다 할머니만큼 멋진 실존인물  명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76살부터 동네를 그리기 시작한 모지스

친구에게서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이 담긴 책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을 추천받았다. 그림은 할머니가 살고 있는 시골 풍경을 담고 있다. 할머니는 평생을 농장을 가꾸며 살며 소일거리로 자수를 했었다. 그러다 관절염이 생긴 후로부터는 그림을 그렸다. 76세부터 101세까지. 할머니의 작품 속엔 결코 사람과 동물, 건물들이 자연을 압도하는 일이 없다. 인공적인 건 아주 작게 묘사하며 자연이 주는 분위기로 가득하다. 마을 사람들의 생활은 자연의 일부분이다. 할머니가 살아온 삶에 대한 태도가 엿보인다.

좌. 썰매를 꺼내자       우.무지개            


간혹 주위에서 시골에서 자란 나에게 고향에 가면 심심하지 않냐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 질문에 늘 여기가 더 답답하다고 대답했다. 이 도시에 오고 나서는 하굣길에 보던 노을도 못 보고, 맑은 날 밤에 마당에 나와 별똥별을 기다릴 수도 없다. 우리나라는 특히 어느 도시나 큰 특징이 없다. 번화가 한복판은 어느 곳이나 똑같다. 비슷한 프랜차이즈 음식점들과 어딜 가도 있는 브랜드 매장. 애매한 중소도시라서 문화생활도 제한적이다.


정원을 가꾸는 타샤 튜터

타샤튜터 나의 정원

타샤 튜터는 자신이 원하는 집을 직접 만들었다. 그녀는 이 집을 지상낙원이라고 부르며 만족해한다. 그동안 여자, 특히 할머니 혼자서 정원을 가꾼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꿈을 꾸는 일도 그것을 알아야만 가능하다.


그녀는 56세에 <코기빌 마을축제>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세를 받아 버몬트의 대지를 구입해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모지스 할머니 책의 제목이 타샤 할머니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언제라도 늦지 않은 나이에 자신의 삶을 만끽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눈 부시다.


나의 정원은  '지상 낙원'이에요.
정원에 대해서만큼은 결코 겸손해지지가 않는답니다.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내가 꿈꾸는 장면은 할머니가 되어서도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이다.


행복한 순간들은 종종 있었지만 격정적인 마음은 쉽게 오지 않는다. 그런데 피아노를 연주하면 늘 그런 순간이 왔다. 연주할 때마다 느끼는 건 아니고,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연주를 완성했을 때 온다. 만족이나 성취라는 단어는 약하고 쾌감, 희열에 가깝다. 피아노가 그런 감정으로 나를 끌고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언제라도 피아노를 보면 건반 하나라도 누르고 싶다.


초등학교 1학년 때에 누구나 그렇듯 부모님의 강요로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처음에는 우리 반에서 다섯 명이 다녔었는데 6학년쯤엔 두 명으로 줄었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부모님은 국영수 학원에 다녀야 하니 피아노 학원을 중단하겠다고 하셨다. 그날 피아노 학원에 가서 선생님께 내 사정을 말하고 펑펑 울었더니 피아노 학원 열쇠를 주셨다. 학원에 등록하지 않아도 되니까 등교하기 전에 피아노 학원에 와서 연주해도 된다고 하셨다. 나는 아침이나 주말에 학원에서 혼자 피아노를 쳤다. 어떤 날에는 너무 적막해서 무서웠는데 건반을 누르기만 하면 다른 세계에 와있는 듯했다.


피아노의 실력이 어떻든 연주하는 사람만이 연주자가 된다

간혹 실내 인테리어로 카페나 호텔 로비에 아무도 치지 않는 피아노가 있다. 대학 캠퍼스에도 나무가 꽤 우거진 쪽에 피아노가 놓여 있는데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피아노에 눈이 간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20년이나 지났는데도 피아노에 대한 마음이 여전한 거 보니 앞으로도 여전할 것 같다.


멍석을 깔아주는 곳 아니면 공공장소에서 자발적으로 연주해본 적은 없다. 피아노를 쳐도 괜찮은 곳일지라도 내 실력은 늘 수줍다. 그런데 나 혼자 치고 만족하기에 이 연주를 하기까지의 노력이 아깝다는 생각도 있다. 얼마 전에 피아노 교습소에서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작은 연주회가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연주회에 나가 보는 게 어떠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그럴만한 실력이 아니라고 말했다.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는데 내가 준비가 덜 됐다니.. 건방지다. 애초에 준비가 되는 정도도 없었다. 그저 앞에 나설 용기가 없었다.


노력하는 과정은 즐기면서 그 결과를 드러낼 때는 왜 두려울까. 그건 순전히 타인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유독 나에게 엄격한 잣대가 있다. 사실 연주회에 나온 수강생 누구라도 조금 틀렸을 때 절대 비난하거나 얕보지 않는다. 캠퍼스 한편에 있는 피아노에 누가 이제 막 배운 것 같은 곡을 연주하고 있을 때에도 웃게 되지 실력을 조롱하지 않는다. 어렸을 적에 교회 피아노 반주하면서 틀린 부분에서 웃음으로 가볍게 넘어간 일이 떠올랐다. 어릴 때가 더 용감했던 것 같다. 건반 하나를 잘못 누른 게 문제가 아니라 그 피아노를 지금 여기서 내가 연주하고 있다는 자체가 중요하다. 계속 이런 식으로 혼자 연주하는 건 싫다.


내가 가지고 싶은 나의 모습은 할머니가 되어서도 자신 있게 건반을 누르는 모습이다.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자리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연주를 들려주고 그곳에 온기를 더하고 싶다. 지금은 교회에 피아노가 없어서 기타 반주 하나에 찬송가를 부르지만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매주 반주를 하며 오래오래 연주하고 싶다. 그리고 그날이 더디게 오는 것 같으면 타샤 튜더 할머니가 자신이 번 돈으로 땅을 사고 집을 지었던 것처럼 교회에 어울릴만한 피아노를 선물하고 싶다. 찬송가는 느린 곡이 많으니까 손가락 움직임이 조금 둔해져도 괜찮을 거다.



*참고한 콘텐츠

우야다스튜디오 @uyada.studio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애나 메리 로버스튼 모지스/수오서재

타샤튜터의 나의 정원/ 타샤튜터 / 윌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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