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29일 차
거의 한 달을 빠짐없이 달리는 동안 절대 빠지지 않는 할머니 한분이 계신다. 장대비가 쏟아졌을 때, 딱 하루만 안보이셨다. 어르신 유모차를 끌고 느린 발걸음으로 한 시간이나 운동장을 걷는다. 그리곤 10분 정도 하늘을 바라보신다. 그 덕에 나도 하늘에 뭐가 걸렸는지 따라 보게 됐다.
할머니는 아침이 아니면 한 번도 밖에 나가지 않은 사람처럼 새하얀 피부를 가지고 계신다. 그보다 더 하얀 건 늘 입고 나오시는 삼베옷이다. 매일 입고 계시는 게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똑같다.
할머니가 오늘은 유난히 밝았다. 나에게 '더운데 왜 뛰냐고 물었다' 나는 '더워지려고 뛴다'라고 이상한 대답을 했다. 옆에 보니 중학생 정도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큰 바위에 걸터앉아 있다. 할머니에게 인사하는 나에게도 인사를 했다. 손자인가보다. 가끔 운동장 한 바퀴를 가볍게 뛰다가 다시 돌아와 대화를 나누고, 사진도 찍곤 했다.
한 바퀴를 더 돌고 오니 운동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유모차를 미는 동작만 하니 잡아당기는 운동도 해줘야 한다고. 멀리서만 봐도 다 알 수 있을 만큼 친절한 설명이었다. 가끔 할머니들의 뒷모습이 외롭게 느껴졌는데, 귀여운 손자와 이렇게 정다울 정도면 바랄 게 없는 삶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할아버지 집에 놀러 갈 때면 항상 다음날 아침에 손을 잡고 산책을 했다. 매일 아침에 뒷산 공원에 산책하는 루틴을 가지고 계셨는데, 친척들이 놀러 와도 일찍 일어나는 손자는 나 혼자였다. 그렇게 할아버지를 독차지할 수 있었다. 그때 뒷산에서 도토리 몽땅 주운 기억이 있다.
할머니에게 가져다 드리며 도토리묵을 만들어달라고 했지만 그만한 양은 안 됐을 거다. 그래도 할머니는 진짜 도토리묵을 만들어 주셨다. 나 때문에 먹게 된 반찬이라 신이 났다. 아마 매일매일 할아버지가 주워온 도토리를 가지고 하필 그날 할머니가 묵을 쒔던 것 같다. 그 진한 도토리묵향이 아직도 향기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