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준비물
딱 100일만 뛰어보자고 했던 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내 달리기에도 소소한 변화가 있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음악 없이 달리기'다. 내가 이런 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 평소에는 러닝벨트라고 스마트폰을 허리춤에 달고 다녔다. 손이 자유로우니 혁명적인 아이템이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딱 그 부위에 땀띠가 나버렸다. 점점 가려움이 심해서 옷도 골라가며 입어야 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달리기는 너무 짐스러울 것 같아 그냥 빈손으로 나가버렸다.
난 항상 뭔가를 들었다. 운전하는 차에서는 라디오가 흘러나오고 화장하고 도시락을 준비할 때에는 유튜브를 틀어놓았다. 남편과 나는 설거지를 할 때면 유튜브를 틀어놓는데, 우리는 그걸 설거지 아이템이라 불렀다. 스무 살 이후로는 집에 TV가 있던 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미디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줄어든 건 아니다. 오히려 스마트폰과 친해졌기에 중독에 가까운 생활을 해왔던 것 같다. 게다가 업무도 미디어 분야라 하루 종일 이 바닥에 전전하고 와야 했다.
스마트폰 없이, 음악 없이, 이어폰에 뭔가를 듣지 않은 생활을 어색하게 느끼고 있다. 이게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집안일이며, 독서며, 일을 할 때에도 뭔가를 듣고 싶었다. 어디에도 몰두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고쳐지지 않으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조용히 달려 본 하루 만에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아니지, 어릴 적 그 시공간을 다시 찾아낸 것이다. 스마트폰 없는 세상.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나에게 집중하는 순간. 고요한데 지루하지 않았다. 내면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계속됐다. 그 생각들이 트랙을 돌며 이 운동장 안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달리기를 끝내며 음악 없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걸 알았다.
이제 핸드폰을 들고나가지 않는다. 워치에서 울리는 영역, 목표량을 알려주는 알림도 껐다. 유튜브에 나중에 볼 영상을 쌓아 놓아야 한다는 강박도 없어졌다. 재생 중인 노래가 마음에 안 들면 달리면서 핸드폰을 조작하는 어정쩡한 자세도 할 필요 없었다. 아는 분과 가까워지면 이어폰을 뺄 일도. 땀띠는 일주일 만에 사라졌다. 누군가가 뒤에서 말을 건 것 같은데 팟캐스트가 더 재밌으니 굳이 뒤돌아보지 않던 무심함도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