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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색 다이어리의 시간

어른의 시간을 빠르게 흐른다

by 김아울

핑크색 다이어리를 샀습니다. 이맘때쯤 내년을 준비하는 다이어리를 사죠. 얼리버드 할인, 신상 출시-이런 시기만큼은 기꺼이 마케팅에 당해줍니다. 일 년 내내 들고 다닐 물건이니깐요. 그런 게 뭐 한둘이겠냐마는 소유욕은 지겨운 회사를 다니는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핫핑크는 절대 못해


이 다이어리를 산 이유는 조금 다릅니다. '핑크색'을 골랐거든요. 평생 안 해본 짓입니다. 분홍은 제 세계에 없었거든요. 누가 줘도 오래 못 쓰고, 금세 중고 앱에 내가 팔 색입니다. 유치하고 과하게 귀여운 색. 저랑 안어울린다고 믿습니다.


다이어리가 담긴 택배 상자를 열어보니 핑크색 형광펜이 사은품으로 들어있네요. 다이어리 안에서는 핑크색을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이참에 쓸 때에도 핑크 범벅을 해볼까 싶습니다. 노트 안팎의 비주얼에 익숙해질지 기대가 됩니다.


요즘 어른의 시간은 빨리 흐른다는 말에 꽂혀있었어요. 서른 중반이나 먹어놓고 어른이라는 생각은 안 들지만 벌써 10월이라는 건 믿기지 않잖아요. 2025년이 아직도 낯선 기분이거든요. 이럴 때 귀신같은 유튜브 알고리즘에 어떤 쇼츠가 뜹니다. 어른들의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건 "새로운 게 없어서 그렇다"라고요. 이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습니다.


괜히 매번 사는 똑같은 사이즈의 까만색 다이어리에 눈길이 갑니다. 매번 같은 사이즈의 이 노트를 언제까지 쓸 거냐고 말을 거네요. 소심하게 색만 바꿔서 주문을 넣었습니다. 사이즈는 포기 못해요. 이게 제 시간을 어떻게 바꿔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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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울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회사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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