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덤으로 받은 삶

거절해야할 이유

by 김아울

넷플릭스를 헤매다 남편이 도깨비를 안봤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아저씨는 안봤다고 했을 때 보이는 사람들의 반응이 떠올랐다. 비슷한 충격으로 남편에게 작품을 설명했다. 그는 "그 장면은 릴스로 봤다"고 했다. 이걸 안다고 해야할지, 모르는 걸 전제로 다시 설명해야할지 애매했다. 최근 이런 일이 잦은 것 같다. 릴스로 봤다는 건 예고편을 본 것과 다르다.


도깨비가 나온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간다. 작품은 그대로 인데, 나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서른 즈음 겪었던 사춘기가 있었는데, 그 흔들리는 감각은 여전하다. 그래서 다시 보는 1화부터 전혀 다른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극 중 은탁이는 '덤으로 사는 인생'을 산다. 신은 그저 감사하며 살라하고 은탁이는 자신이 무엇인지 규정받고 싶어한다. 귀신도 도깨비도 평범한 사람도 아니므로. 평범한 나도 나도 자꾸 그걸 묻는다. 신도 안 믿으면서, 대답해줄 사람도 없으면서 말이다.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믿으면 뭐가 달라질까?


조선시대 평균수명이 50세 남짓이었다. 환갑이면 잔치를 했을 정도니. 고조할아버지 정도면 조선사람이다. 할아버지는 마흔에 일을 놓고도 40년을 더 사셨다. 그러면 지금 이 나이는 예전 시대 기준으로 이미 '덤'에 가까워 지고 있다. 어차피 반을 지나온 인생이라면 지금부터 덤으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솟구친다.


지금부터가 덤이다!


어떤 해는 '유지'하는 게 목표였다. 어떤 해는 '목표'가 많았다. 이제는 그 반대로 해보려 한다. 계획하지도, 억지로 이어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해야 할 건 '거절'이다. 그간 내가 주렁주렁 달고온 것들을 하나씩 떼어내야겠다. 그래야 덤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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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울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회사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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