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매드랜드 영화 리뷰
1 어릴 적 영어를 배우며 home과 house의 차이를 궁금해했다. 앞으로 어떤 걸 주로 쓸지 고민하다가 나는 home을 선택했다. 아마도 나에게는 언제나 'home'이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서 비롯된 결정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는 나의 믿음을 와장창 흔들어 놓았다.
2 gpt에게 물어보니 house는 물리적인 건물, 부동산으로서의 집이라고 말하고 home은 정서적인 공간으로서 안식처, 마음이 머무는 곳이라고 했다. 영화에서도 이런 대사가 나온다. 조카가 '이모, 집이 없다는 게 사실이야?'라고 묻자 'house는 없지만 home은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고 말한다. 일종의 선언처럼 들렸다. 스스로를 '홈리스'가 아닌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방식이랄까.
3 프란시스 맥도맨드의 연기는 펀을 강인하고 능동적인 인물로 만든다. 그는 머무르지 않고 계속 나아가며 자유를 좇는다. 실제로 맥도맨드는 밴 라이프를 꿈꾸던 사람이었고, 원작 책을 읽고 직접 감독에게 영화화를 제안했다고 한다.
4 영화에 나오지 않지만 몇 년 전에 실리콘밸리의 개발자들 일부가 캠핑카에서 생활한다고 들었다. 비싼 집값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지역에서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house를 포기한 삶이기도 하다. 나는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무엇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5 미국 영화의 자주 보여도 좋은 장점은 광활한 대자연이다. 넓은 땅에서만 볼 수 있는 황량하고도 자유로운 풍경. 인간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그 적막함을 영화를 봐야 하는 확실한 이유이자, 미국을 여행하고 싶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영화로도 이런 마음이 드는데 거기 살며 지내는 사람들은 죽기 전에 한 번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늘 들썩이게 만들 것 같다.
6 극 중 펀은 일하고 싶어 한다. 일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막상 일이 구해지지 않을 때 '사회보장제도'로 일정금액을 받을 수 있다는 제안을 듣자, 그 정도로는 삶을 유지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젓는다. 그러곤 다시 일을 찾아 나선다. 원하는 삶을 살려면 그에 걸맞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차가운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의외이면서도 몹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7 이런 영화를 자주 보고 싶은 이유가 있다. 뻔한 일상이라고 자꾸 믿게 되는 현실에 다양한 색을 칠해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다. (이 영화가 더 와닿았던 건 극 중 전문 연기자는 딱 두 명뿐이었고 나머지는 진짜 유목민이었다.) 그 안에서 다양한 감정이 일으켜진다. 연민, 공감, 부러움, 질투, 우정, 사랑이 솟아난다. 감정이 피어나면 세상이 심심할 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