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을 기대하며

전주시립합창단 기획공연 리뷰

by 김아울

어릴 적부터 합창을 좋아했다. 처음 접한 건 교회였다. 성가대에서 어른들이 합창을 하고 있으면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뭔가를 경험할 때 소름이 끼치는 건 목소리와 공포영화 두 가지 유일하다.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먼저 한 일도 성가대에 들어가는 일이었다. 종교심은 희미해져 갔지만 합창만큼은 여전히 재미있었다. 그러다 고모를 따가간 성당에서 파이프오르간과 함께 연주되는 곡을 들었는데, 그 장엄함에 곧 신을 만날 것 만 같은 기분이 오래갔다. 성가대석이 2층에 있어서 소리가 위에서 쏟아졌는데, '천상의 소리'가 과장이 아니라고 느꼈다.


교회를 그만두고 나서 꽤 오래 합창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올해 한 행사에서 초대 공연으로 시립합창단의 무대를 보게 됐다. 그전까지는 시에서 운영하는 합창단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행사가 유난히 지루했는데 공연 하나로 분위기가 사악 바뀌었다. 그날 이후로 시립합창단의 공연 일정을 찾아보여 종종 공연을 찾았다.


오늘 공연은 시립합창단뿐만 아니라 초등학생 금상팀, 시니어 합창단, 여성, 남성 합창단까지 함께하는 무대였다. 왠지 그들만의 연말 파티에 슬쩍 끼어든 기분도 들었다. 그래도 좋아하던 시립합창단 곡이 네 곡이나 포함되어 있으니, 그것만이라도 충분했다.


그런데 첫 곡이 시작되자마자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가사와 곡이 감동적이라 눈물을 애써 참았다. 이 공연은 단순히 곡을 나열한 무대가 아니라, 분명한 서사를 가진 흐름이었다. 종종 가수들이 앨범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꺼번에 들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던데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감동이 북받쳤다가,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에 웃음이 나왔다. 색소폰 독주는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환기시켰고, 덕분에 다음 합창단도 지루하지 않게 맞이할 수 있게 만들었다. 마지막 연합 합창에서는 관객에게도 브로셔와 함께 배포된 악보와 함께 허밍으로 부를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남편에게 말했다. 나중에 나도 시니어합창단에 들어가 보고 싶다고. 꽃다발도 들고 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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