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도 돼

점심시간에 커피 안 마셔도 돼

by 김아울

우리 회사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동생이 일하고 있다. 점심시간은 내가 훨씬 여유로워서 가끔씩 동생 회사 근처에서 밥을 먹고 있다.


동생은 점심시간이 칼같이 정해져 있어 밥집과 카페를 미리 정해두는 편이다. 내가 일찍 도착하면 먼저 주문을 해놓고 있다. 오늘은 이 녀석이 유난히 분주했다. 밥도 후다닥 먹고 카페로 향하며,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나오면서도 산책길을 향해 경보하듯 걸었다.


나는 서두르지 말자고 했다. "조금 천천히 걸을까? 다 안 해도 돼" 우리가 만나서 이야기하는 건 밥을 먹으면서도 충분하고, 커피를 못 사거나 산책을 못 해도 점심시간은 똑같이 흘러가니가 괜찮다고 했다.


점심시간에 퀘스트 다 깨지 않아도 된다. 기분전환이나 하면 그만이다.


이제야 발걸음이 느려졌다. 동생은 요즘 점심뿐 아니라 하루의 대부분을 이렇게 보냈다고 씁쓸해한다. '그래 천천히 보내다가 시간 되면 들어가면 되지'라고 말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동생은 지금 결혼준비와 직장생활, 이사 준비까지 몰려 있다. 그저 점심시간만이라도 숨을 돌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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