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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산 일출

by 김아울

일출을 보러 5시 반에 기상을 맞췄다. 새해에 동해로 가서 떠오르는 해를 보는 사람들이 부럽지만 거리도 멀고,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서해 어느 마을에서 자고 나란 덕에 주로 지는 해를 보러 근처의 바닷가로 향했었다. 어쩌다 내륙에 정착하게 되니, 지는 해도 뜨는 해도 쉽게 마음먹어지지가 않는다.


먼저 보인 야경들


연말, 연초엔 사람도 많은데 왜 꼭 그날 가야 되나 싶었다. 할 일 없이 따분한 토요일을 보내다가 당장 내일 일출을 보러 가자고 남편을 꼬셨다. 엘리베이터가 한 달째 교체 공사 중이라 허벅지는 단련이 됐을 것이다. 우리 집은 20층이다.


최단 거리로 가면 30분 이내에 정상에 도달하는 코스를 알아봤다. 아파트 바로 뒤에도 산이 있지만 그곳에서는 사방이 도심이라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해는 미덥잖다. 첩첩산중이거나 수평선 넓은 바다여야만 한다.


남편의 가장 큰 장점을 뭔가를 하자고 할 때 자기도 하고 싶었던 것처럼 흔쾌히 좋아하면서 같이 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나는 같이 보고 싶어 하는 축구장에 한 번도 같이 가주질 않았다. 나도 참 야박하다. 이런 마음이 들면서도 고칠 요량은 없다. 두 번인가 말하더니 요즘은 동료들과 종종 다녀온다. 나도 같이 즐겨주면 좋겠지만, 가서도 뚱하게 있을 바에야 안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폭신폭신한 바닥

12월 말의 겨울 산행은 생각지 못한 함정이 있었다. 나뭇잎이 바삭하게 건조되어 바닥이 푹신했다. 심지어 바닥이 도톰해 보였다. 그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고, 신발에 이끌렸다. 얼음 바닥은 아이젠을 끼우면 그만이고, 물웅덩이는 피하거나 조금 젖을 뿐인데 낙엽길은 내리막에서는 심하게 긴장되게 만들었다. 그러더니 무릎에서 삐끗하는 이물감이 느껴졌다. 쉬다가 다시 내려오니 괜찮아졌다.


해가 보이나요?


정상에 올라, 블로그에서 봤던 장소를 상상했다. 이 길을 따라 사람들이 빽빽하게 있었는데, 우리 둘만 해를 기다리고 간혹 사람들이 지나갈 뿐이었다. 생각해 보니 7시 30분은 수평선에서 해가 보이는 시간일 테고, 산 위로 올라오려면 몇 분을 더 있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밤 야경을 보았다가, 아침 새벽빛을 보다가, 새벽노을을 보다가 해를 기다렸는데 구름이 너무 많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대낮처럼 밝아서 해가 어딘가에 떠있는 게 분명했다. 오들오들 떨면서 해만 기다리다가, 새해가 차라리 나았으려나 싶었다. 해도 볼 수 있다고 매번 보는 게 아니구나. 해를 찾다가 저게 해 같다면서 착시현상까지 왔다. 몸이 점점 추워져서 다시 산을 조금 내려갔다가 올라오기도 했다. 그렇게 30분 넘게 정상에서 할 건 다 해보다가 해를 못 보고 내려왔다. 일출은 바다로 향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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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울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회사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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