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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Apr 15. 2021

첫 직장은 왜 힘들까

신입사원이 3년을 버티지 못하는 이유

지난해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아르바이트 중개 앱 알바 콜이 직장인 18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75.6%가 첫 직장에서 3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했다고 한다. 신입사원 4명 중 3명이 3년 안에 회사를 떠났다는 얘기다.


필자 역시 지난 9년간의 직장인 생활을 통틀어 첫 직장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다. 입사 후 첫 고비라는 마의 3년 동안 '퇴사를 하느냐 마느냐'의 수많은 내적 갈등의 연속이었다. '버티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진 않지만 모든 경험에는 의미가 있다는 연장선에서 어렵게 견딘 첫 회사 생활을 통해 깨달은 것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 직장은 왜 힘들까


대학 시절 언론사 PD 시험에 몇 차례 낙방한 후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20여 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홍보대행사에 인턴으로 입사했다. 규모는 작았지만 업계에서는 나름 '일 잘하는 회사'로 알려져 있던 마케팅 PR 전문 회사였다.


당시 나이 만 23세로 뭐든 시켜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는 열정과 패기로 면접에 임했고, 방송국 아르바이트와 대학연합 동아리의 홍보팀 경험을 살려 '인턴' 자격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게 됐다. 첫 출근 날 대표님의 소개를 받고 씩씩하게 인사를 했는데, 직원들의 시선은 각자의 PC 모니터에 고정된 채 키보드 타이핑에 열중하던 그때 그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처음 몇 달은 지정된 사수 없이 모든 브랜드 팀의 아이디어 회의에 참여해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시선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안해야 했고, 패션쇼, 스포츠 행사, 기자 간담회 등 각종 오프라인 행사의 스태프로 참여해 RSVP(초청자를 대상으로 행사 참여 여부를 확인하는 일)를 돌리는 일, 물품 챙기는 일과 짐 나르는 일 등을 도왔다. 소비자 대상 행사의 경우 주말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주 6~7일을 출근하는 날이 다반사였다. '현장을 배워야 한다'라는 명분으로 오프라인 행사가 있는 모든 브랜드의 스태프로 참여하다 보니 체력은 바닥이 났다. 주말 출근 때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어 외부 행사장 테이블에 엎드려 20분가량 쪽잠을 잤던 기억이 난다.


매일 오전 8시 출근에 밤 9시, 10시가 평균 퇴근 시간이니 하루, 일주일, 한 달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함께 입사했던 인턴들은 두 달을 버티지 못하고 자발적, 비자발적 퇴사를 했다. 한 달 급여 50여만 원을 받고 9개월을 일했는데, 그 간 스쳐간 인턴들만 20여 명 가량이다. 그제야 선배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이해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쳐내야 하는 어마어마한 업무량과 정을 주어도 몇 달 있다가 떠나는 후배들. 반복되는 경험들로 체득했던 것이다.


내가 버텼던 이유와 방법


• 객관적인 관점으로 '나'를 보았다


들어오고 나가는 인턴들이 주로 내게 하는 말은 '이런 취급받고 고생하면서 왜 여기 있어?', '버티는 게 대단하다'였다. 그렇지만 나는 나를 알았다. 대학에서 배운 교양과 전공은 일할 때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걸. 내가 가진 것은 '젊음'이고, 할 수 있는 건 시간을 들여 배우는 일 뿐이란 걸. 이 과정을 견디지 못하면 다른 회사에 입사를 하더라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 얻을 수 있는 것에 중점을 두고 명확한 목표를 세웠다


회사는 직원들이 가진 역량의 최소 150%를 발휘하게 하는 곳이었다. 소위 말하는 힘든 업무 환경과 조직 문화는 국내외 손꼽히는 브랜드들을 클라이언트로 만들었고, 업계에 입소문이 났다. 에이전시에서는 어떤 클라이언트와 어떤 일을 했는지가 곧 경력이 된다. '좋은 고객사가 많아 여기서 3년만 일하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라는 선배들의 말에 '3년 후 이직'을 목표로 악착같이 업무에 임했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만 얻고 미련 없이 나가자!'는 각오로.


• 적극적인 태도로 기회를 만들었다


여느 작은 규모의 회사가 그렇듯 대표님이 인사와 채용을 직접 담당했다. 구두로 계약한 인턴 기간 6개월이 끝났고, 난 대표님의 눈에 들지 못했다. 두 가지 선택지를 받았다. 회사를 나갈 것이냐, 동일한 급여를 받고 남을 것이냐. 일하는 기간 동안 최선을 다했기에 억울함에 눈물이 났지만 후자를 택했다. 어린 마음에 오기가 발동했던 것 같다.


인턴 8개월째 클라이언트는 점점 늘어났고 공공재(도로) PR 경쟁 비딩이 들어왔다. 도로 개통을 알리는 이벤트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8천만 원 규모의 작은 프로젝트 PR이었다. 대표님은 '누가 할래?'라고 물었지만 평균 2~3개의 고객사를 맡고 있는 선배들은 거부 의사를 표했고, 결국 대표님과 내가 함께 제안서를 만드는 것으로 결정이 됐다. 당시 외부 일로 바빴던 대표님은 기존의 다른 브랜드 PT 양식을 수정해 제안서를 만들라고 지시했고, 몇 차례 수정을 거쳐 내부 컨펌 후 고객사에 제출했다. 며칠 후 고객사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이 회사 평판이 좋아서 소개받고 연락한 건데 제안서가 엉망이네요. 대표님은 전화도 받지 않고."


메모를 받아 적고 대표님께 전달드려야 하나 순간 고민했지만 용기를 내어 물었다.


"네 담당자님, 죄송하지만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 드시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담당자는 내가 인턴인 줄 모르고 제안서에서 부족한 점을 피드백하며 다음 날 오전에 다시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통화를 마치고 대표님께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시간이 부족해 그간 어깨너머로 배운 제안서와 자료 서치를 통해 리포트를 밤늦은 시간까지 보완했고, 다시 한번 용기를 내 작성한 내용에 대해 고객사 담당자와 최종 커뮤니케이션한 후 제안서를 보냈다. 이후 담당자는 수정 제안서 승인 소식과 함께 내 적극적인 태도를 대표님께 칭찬했고 그다음 달 나는 인턴에서 정직원이 된 사내 첫 사례가 됐다.


• 먼저 주고 더 크게 받았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마이웨이로 자신의 업무만 보는 직원들이 있다. 특히, 개인주의가 자연스러운 시대에는 나보다 타인을 더 생각할 때 종종 어리석은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조직 내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결코 자신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다른 동료를 위해, 회사를 위해 더 내어 놓는다.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는 선의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조직에서의 생존을 위해 '먼저 내어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 인정받으려면 동료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다. 선배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사소하게는 초콜릿, 쿠키 같은 간식을 책상 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잔심부름을 비롯해 업무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면 즉시 자원했다. 인턴이나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먼저 입사한 사람으로서 회사 생활 팁을 알려 주고, 내 코가 석자임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요청하면 상담자가 되어 주었다.


그러자 선배들도 조금씩 일을 가르쳐 주기 시작했고, 조직 내외의 알짜 정보들도 공유해 주었다. 이후 냉랭했던 사무실 분위기도 조금씩 바뀌어갔다. 동료들을 위한 작은 행동들은 점점 쌓여 신뢰가 됐고, 신뢰는 '믿고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이 됐다. 이는 회사와 고객의 인정으로 이어졌다. 만일 혼자의 힘으로 해 내려고 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버티고 나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


'자신이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기대와 신념'을 자기 효능감이라고 한다. 입사 후 다양한 경험과 실패를 통해 쌓인 일의 역량은 '나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확신으로 보답했다. 신입사원일 때 자기 효능감을 경험하면 이후 어떤 일이든 자신감을 갖고 임할 수 원동력이 된다.


필자는 앞서 전한 길고 긴 인턴 생활을 거쳐 글로벌 음료와 슈즈 브랜드를 비롯해 국내 유명 식품, 건강기능식품, 주류 PR을 담당하는 AE로 성장했다. 운이 좋게 한국 PR협회를 비롯해 슈즈 브랜드의 홍콩 아시아 PR SUMMIT에서 마케팅 PR 우수 사례로 수상하기도 했다.


3년 후 퇴사를 결심했을 때는 당시 맡고 있던 음료 브랜드에서 타브랜드의 홍보 담당자 자리를 소개해 주었고, 신발 브랜드에서는 본사 마케팅 담당자로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 최종적으로 헤드헌터를 통해 가고 싶었던 IT 스타트업으로 이직했지만 고객사로부터 채용 제안을 받았을 때는 만감이 교차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입사 후 낯선 환경, 업무, 인간관계 때문에 긴장하고 두렵고 포기하고 싶은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어떤 길을 가든 자신을 진정 위하고 성장케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기준에 놓고 선택하고 행동한다면 어느새 그때의 나를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다고. 또, 필자는 오랜 기간을 혼자 해결하려 끙끙 앓았지만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동료와 상사에게 물어도 된다고,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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