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당금애기
“다녀왔습니다.”
집 현관에 들어서면서 나는 인사했다. 할머니가 거실로 나오지 않았다. 욕실에 불이 켜져 있었고 물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는 샤워 중이었다.
달콤한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나는 식탁 쪽으로 스르르 끌려갔다. 식탁 중앙에 카스텔라가 놓여 있었다. 하얗고 커다란 접시 위에 넓적하게 누워 있는 카스텔라.
나는 면가방을 내려놓고 싱크대로 갔다. 주방세제로 손을 닦았다. 주방수건에 손을 대충 닦고 카스텔라로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몹시 보들보들해 보이는 갈색의 카스텔라. 만든 지 얼마 안 되었다. 아직 칼질도 하지 않았다.
나는 맨손으로 돌진했다. 칼질이고 뭐고,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엄지와 검지로 카스텔라의 한 귀퉁이를 떼어냈다. 내 지문이 찍힐 정도로 부드럽고 촉촉한데, 손자국이 바로 사라질 정도로 탄력이 있었다. 카스텔라 조각이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눈처럼 스르르 녹았다. 와……, 말을 못하겠다. 이번에는 꿀을 듬뿍 넣은 모양이었다. 평소의 카스텔라보다 더 달콤했다. 이렇게 달고, 이렇게 촉촉하고, 이렇게 부드러운 카스텔라. 우리 집엔 전동식 거품기도 없었다. 다 늙은 할머니가 수동식 거품기로 거품을 내어 이렇게 부드러운 빵을 만들었다고는 믿기 어렵다. 새하얀 깃털의 두루미가 카스텔라를 만들었을지도 몰라. 침이 샘물처럼 솟아올랐다.
또 엄지와 검지를 바짝 치켜세우고 카스텔라로 돌진하려는 찰라, 욕실 문이 열렸다. 목욕가운을 걸친 할머니가 등장했다.
“또 손으로 먹냐? 칼로 잘라서 먹으라고 그렇게 얘기해도. 너는 아이 때나 지금이나 어떻게 똑같냐?”
나는 혀를 살짝 내밀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할머니가 빵칼을 가져와 넓적한 카스텔라를 두 덩어리로 길게 자른 후, 김밥 자르듯이 한 쪽씩 싹둑싹둑 잘랐다. 작은 접시에 달랑 두 조각을 올려주었다. 나는 엄지와 검지로 카스텔라 조각을 집어서 마음 편하게 먹었다. 사랑의 맛, 정말 달콤 포근한 사랑의 맛. 순식간에 먹고 나서 세 조각을 더 먹어버렸다.
초등학교 시절, 새 학년이 되는 초봄마다 나는 앓았다. 낯선 선생님, 낯선 친구들, 낯선 교실, 낯선 책상과 낯선 의자가 싸늘한 입김을 은밀하고 집요하게 쏟아냈다. 내 몸은 굳어버린 가래떡이 되어, 자유롭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긴장해서 며칠을 보내면 어김없이 병이 났다. 성장통이었을까?
5학년 초봄에는 심하게 독감을 앓았다. 하루 종일 몸이 불덩이였다. 몸 안에서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데 텁텁하고 끈적거리는 공기가 나에게 달라붙어 전신을 짓눌렀다. 이쪽으로 누워도 저쪽으로 돌아누워도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약을 먹고 무거운 잠에 까무룩 빠졌다간 다시 화들짝 깨어나길 반복했다. 입 안에 쓰디쓴 검댕이가 가득 차 숨을 막고 있었다. 할머니가 내 방을 들락거리며 나를 보살폈다. 시간 맞춰 죽과 약을 떠먹였고 사이사이에 과일즙과 계란탕도 정성스럽게 먹여주었다.
밤이 깊어 창밖은 완전히 먹빛이었다. 할머니가 찬 물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열이 내리질 않네. 안되겠다, 내가 옆에 붙어 있어야겠다.”
할머니가 내 옆에 눕자, 촉촉한 할머니의 숨결이 내 뺨에 닿았다. 할머니가 서늘한 손바닥으로 내 이마를 연신 훑었다. 옛날 옛적에 말이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어린 꼬맹이시절에 숱하게 들었다. 열이 끓어오르는 혼란 속에서도 내 귀는 기대감으로 쫑긋거렸다.
“금강산의 스님이 어느 날 쌀을 얻으러 길을 나섰어. 스님이 당금애기 집에 도착해서 시주 왔다고 소리를 쳤지. 당금애기가 몰래 숨어서 스님을 엿보다가 스님에게 들켰어. 당금애기는 스님에게 시주를 할 수 없다고 했어. 아버지와 어머니와 오빠들이 외출해서 곳간 문이 잠겨 있다고. 그러자 스님이 주문을 외어 곳간 문을 열었단다. 쌀독에도 도술을 부렸지. 아버지 어머니 쌀독에는 청룡과 황룡이 굽이치고, 오빠들 쌀독에는 학이 알을 품고, 당금애기 쌀독에는 거미줄이 처져 있었지. 스님이 당금애기에게 거미줄을 걷어내고 쌀 한 바가지만 시주하라고 하는 거야. 당금애기가 스님 자루에 쌀을 붓자 쌀이 바닥으로 다 흘러나왔어. 스님이 동냥자루를 뚫어놓았거든…….”1)
할머니가 이야기를 풀어내면, 내 눈앞에 주인공들이 나타나고 마을이 생겨나고 내가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당금애기는 삼신할미가 되었고, 마을마다 집집마다 아이를 점지해주고 돌봐주게 되었단다. 우리 아기도 삼신할미가 점지해줘서 태어났지. 지금도 돌봐주고 있으니 금방 나을 거야. 자, 이제 이야기가 날아갈 수 있게 창문을 열자.”
할머니는 몸을 일으켜서 창문을 열어 건조하고 탁한 공기를 내보냈다.
다음날 아침, 열이 다 내렸고 몸은 가벼웠다.
나는 평소처럼 등교할 수 있었다. 등굣길에 간밤의 할머니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허공을 바라보며 걸었다. 간밤에 창문을 통해 빠져나간 이야기가 어디선가 날아다니고 있을 것 같았다.
스님의 아이를 임신해서 산속에 버려진 당금애기와, 당금애기가 낳은 세쌍둥이를 보살펴주는 학 세 마리. 박 넝쿨을 따라 스님아빠를 찾아가는 삼형제와 꽃가마를 타고 함께 가는 당금애기. 마침내 영원히 살게 된 당금애기는 삼신할미가 되어 집집마다 아이를 점지해주고 돌봐준다.
할머니의 당금애기 이야기는 결코 잊히지 않았다.
입안에 남아 있는 카스텔라 맛을 음미하며 욕실로 들어섰다. 할머니의 카스텔라는 나의 모든 근심을 날려버렸다.
샤워까지 시원하게 마친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밤은 명징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밤의 몸속으로 들어섰다. 밤은 길게 길게 펼쳐졌고 나는 기운차게 집을 짓고 사람을 낳고 동네 길을 닦았다.
“나갔다오겠습니다.”
나는 할머니에게 생기발랄한 목소리로 인사하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현관을 나오며 아침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어느 봄밤, 창문을 통해 빠져나간 이야기가 지금도 어디선가 날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쏟아진 쌀알을 젓가락으로 함께 주워 담는 당금애기와 스님, 스님이 당금애기 집에 하룻밤 머물면서 둘은 동침하게 된다. 임신한 죄로 돌함에 갇혀 산속에 버려진 당금애기, 아기를 낳자 산 위에 무지개가 뻗치고 하늘에서 백학 세 마리가 내려와 세쌍둥이를 돌보고, 성장한 삼형제는 아빠를 찾아가고, 삼형제를 만난 스님이 진짜 아들인지 시험을 내고, 당금애기는 영원히 사는 삼신할미가 되어 세상의 갓난아기들을 돌보고…….
나는 보도블록 위를 타박타박 걸었다. 아카시아 향기가 풍겨왔다. 아파트 뒤편의 산을 돌아보니 하룻밤 사이에 아카시아 꽃들이 피어 있었다. 봄날의 정수가 담긴 향기가 코끝을 톡 쏘았다. 아파트 단지를 나와 버스정거장을 향해 걸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행인들, 솔솔 불어오는 소음들, 서늘한 가로수 그늘과 열기를 담고 떠다니는 어휘들……. 펼쳐진 이야기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세상에 떠도는 질료로 탱글탱글한 책을 만들어내는 데미우르고스가 될 거야. 수많은 페이지를 써낼 준비가 되어 있어. 아니, 이미 시작했어.
공원을 지나치려다가 나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시간까지는 한 시간가량 남아 있었다. 공원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푸르른 나무들과 야트막한 바위들, 벤치들이 있었다. 배꼽, 괘종시계, 무덤, 설탕, 앵무조개……, 벤치에 낱말들이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나는 낱말들 사이에 끼어 앉았다. 가방에서 노트와 펜을 꺼냈다. 바람이 살짝 불어왔다. 아카시아 향기와 신록의 냄새가 종이 속으로 파고들었다. 내 노트에 걸려든 낱말들이 심호흡을 해댔다. 문장들이 속닥거렸다. 매끈둥한 어휘들이 햇살의 미끄럼을 타면서 반짝거렸다. 문장이 와사사 흔들렸다. 문장이 휘청휘청 흔들렸다. 바람에 숨어 있던 문장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종이 위의 세계는 번식력이 왕성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 그만 몸을 일으켰다.
공원을 나와 버스를 탔다. 편의점 입구에서 내렸다. 편의점 통유리 문을 밀치며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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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살아있는 한국 신화』 신동흔, 한겨레출판 - 이 책에 나온 당금애기 신화를 바탕으로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