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푸른 수염
한가하던 편의점에 내 또래 청년이 들어왔다. 처진 어깨에 무거운 발걸음. 나는 청년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맞힐 수 있었다. 청년은 카페인음료 캔을 계산대로 가져왔다. 카페인음료는 진열해놓기 바쁘게 팔려나갔다. 에너지음료라고 부르기까지 하다니. 내 주머니 속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손님계산을 마친 다음 휴대전화를 꺼냈다. 확인 중에 또 전화가 들어왔다.
용태의 한숨소리가 휴대전화를 통해 튀어나왔다.
“전화를 몇 번 해야 받는 거야?”
“한 번 했잖아.”
“세 번했어.”
“그렇다 치고, 왜?”
푸른 수염은 좀 어떠냐고 묻고 싶은데, 마음이 상할까봐 그만두었다. 그런 중대한 사건을 전화로 묻는다는 둥, 주변사람들도 있는데 뭐라고 대답하길 바라느냐는 둥, 과민하게 반응할 것 같았다.
“별 일 없으면 저녁이나 먹자. 여기 오늘 오픈한 김치찌개집이 있네. 첫날이니까 여기서 한번 먹어보자.”
용태가 일러준 대로 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내려 익선동으로 접어들었다. 색색의 풍선으로 출입구를 장식한 김치찌개집 앞에 용태가 하얀 마스크를 쓴 채 서 있었다. 아, 푸른 수염.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용태의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미간을 찡그리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양쪽 이어폰을 빼서 주머니에 넣었다. 미간을 펴며 다가왔다.
우리는 식당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용태는 메뉴판을 집어 들고 마스크를 쓴 채로 말했다.
“동태찌개도 있고 찌개류가 몇 가지 있긴 한데, 대표메뉴인 김치찌개를 먹어보자.”
나는 그러라고 했다. 정말 푸른 수염이 나는 걸까?
직원이 반찬을 날라다 주었다. 고춧가루를 넣지 않은 콩나물무침과 어묵볶음이 나오고 생 두부 몇 조각이 접시에 담겨 테이블에 놓여졌다. 나는 젓가락을 들어 콩나물무침을 집어서 먹었다.
“깔끔하고 아삭하다.”
내 말에 용태가 마스크를 쓴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묵볶음을 젓가락으로 집었다.
“오뎅볶음도 괜찮다. 기름 맛이 안 나고 간간하고 고소해.”
나는 뭐라도 해야 했다. 마스크를 쓴 용태의 얼굴만 가만히 바라볼 수는 없지 않나.
용태가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김치찌개를 기다리는 동안 용태가 휴대전화를 꺼내 이것저것 확인했다. 그의 표정이 조금 전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릴 때와 같았다. 미간에 주름이 잡혔고, 눈동자가 피곤하고 지쳐보였다. 용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식당 유리문을 열고 나갔다. 마스크를 조금 내려서 입술만 드러내고 전화기를 귀에 댔다. 한 자리에 서 있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 누군가와 통화했다. 용태가 마스크를 다시 코 밑까지 올리고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나왔다.
용태가 주위를 흘끔거리면서 자리에 앉았다.
“전화로만 상담할 수도 없고. 수염 때문에 시간약속 잡기가 여간 난처한 게 아니다.”
지금처럼 마스크를 쓴 채 말하는 것도 불편할 텐데.
김이 펄펄 나는 양푼에 김치찌개가 담겨 나왔다. 직원이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주며, 한 번 익히고 나온 거라고 일러주었다. 용태가 드디어 마스크를 벗었다. 내 목으로 마른 숨이 꼴깍 넘어갔다. 용태의 윗입술 위와 턱 주변에 짙푸른 수염이 제법 돋아나 있었다. 이삼 일 면도를 하지 않은 것처럼. 용태가 집게를 들고 양푼 안의 김치를 들어올렸다.
“포기김치를 자르지 않고 그대로 넣어줬다. 돼지고기도 썰지 않고 덩어리째네.”
용태가 집게로 돼지고기 덩어리를 들어올렸다.
양푼 안에서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었다. 내가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조금 맛보았다.
“시원하다.”
용태도 숟가락으로 국물을 떴다. 나는 그의 입을 응시했다. 푸른 수염에 눈길이 머물렀다.
“그러네. 시원하고 얼큰하다. 괜찮다.”
양푼 속에서 찌개가 막 끓어오르자 용태가 고기 덩어리를 가위질했다. 김치도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용태와 식당에 오면 다 알아서 챙겨주었다. 용태가 하는 대로 지켜보다가 나는 먹기만 하면 되었다. 이거 해줘, 저거 해줘, 요구해도 짜증내지 않고 다 해주었다. 생각해보니 용태의 훌륭한 장점이었다.
내가 찌개를 뒤져 고기 조각을 집어 먹었다.
“일단 돼지 누린내가 나지 않고, 쫄깃하면서도 고소하다.”
“끓여서 나오기 때문에 생고기를 넣지는 않았을 거야. 냉동이지.”
용태도 고기를 씹었다. 입술을 움직이자 푸른 수염이 제멋대로 움찔움찔거렸다. 푸른 수염에만 시선이 가서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고기도 이 정도면 합격점. 고소하고 씹는 맛도 있고.”
용태가 말했다. 또 푸른 수염에 시선이 가려고 해서 나는 눈길을 내렸다. 반찬으로 나온 두부를 쳐다보다 집어먹었다.
“콩을 거칠게 갈아서 만든 두부다. 식감이 거칠지만 고소하네.”
내가 괜히 중얼거렸다. 가만히 있지를 못하겠다.
용태가 개인그릇에 찌개국물을 담고 김치와 고기를 적당히 넣어 내 앞에 놓아주었다.
“포기김치를 그대로 사용하니까 반찬 재활용한 건 아니야. 그 점이 제일 맘에 든다.”
“찌개용 김치를 얼마간 숙성시킨 거라고 저기 씌어 있어.”
내가 식당 벽면을 바라보았다. 용태도 벽면의 홍보포스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구나.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젓갈을 넣지 않은 김치 같더라. 국물 맛이 깔끔하고 시원하려면 젓갈 넣지 않은 김치를 써야 하거든.”
용태는 입맛이 까다롭고, 요리정보에도 밝은 친구다.
용태가 양푼에서 고기와 김치를 떠서 내 그릇에 또 얹어주었다. 자신의 그릇에도 퍼 담았다. 공기밥과 두부 사리가 나왔다. 내 입속에서는 뜨겁고 짜고 매운 회오리가 몰아쳤다. 수저질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수저질을 멈추면 용태의 푸른 수염을 자꾸 흘깃거리게 될 테니까. 나는 전투를 벌이는 것처럼 먹어댔다. 집에서처럼 맛을 음미하며 착한 낙타처럼 먹을 수가 없었다. 김치찌개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처럼 공격적으로 먹어댔다.
관자노리에 땀이 흐르고 입안도 몹시 화끈거려서, 나는 수저질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용태의 푸른 수염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몇 분 사이에 푸른 수염이 더 수북해진 것도 같았다.
“뭐해? 밥 먹다 딴 생각하냐?”
푸른 수염이 움찔거리더니 버럭 소리쳤다.
“아니. 너무 맵고 뜨거워서 천천히 먹으려고.”
용태가 내 표정을 살폈다.
나는 밥공기의 밥을 떠서 찌개그릇에 말았다. 용태가 국자로 김치찌개를 휘저어 두부를 골라 내 밥 위에 올려주었다.
“국물이 텁텁하지 않고 돼지냄새가 나지 않으니까, 이 집에 합격점 준다.”
푸른 수염이 움찔거리면서 고기를 씹었다. 푸른 수염이 움찔거리면서 김치를 씹어댔다. 푸른 수염이 내 시선을 자꾸만 끌어당겼다. 나는 눈길을 애써 찌개양푼으로 내렸다. 다시 용태를 바라보았다. 용태는 남은 찌개를 열심히 먹어댔다. 용태의 양쪽 관자노리로 땀이 흘렀다. 내가 티슈를 뽑아주자, 용태가 건네받고 땀을 스윽, 스윽, 닦았다.
“더 안 먹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내가 다 먹어주지.”
푸른 수염이 움찔거리더니 히죽대며 열심히 먹어댔다. 푸른 수염이 수저를 내려놓고 물잔을 들어 물을 마셨다. 곧바로 마스크를 썼다.
식당을 나오자 땅거미가 짙어지고 있었다. 용태가 마스크를 입까지만 올린 채 자신의 점퍼 팔뚝에 코를 묻고 킁킁거렸다.
“으, 냄새가 온통 대 뱄다.”
용태가 마스크를 코까지 올리면서 소리쳤다. 가방에서 스프레이 탈취제를 꺼내 온몸에 칙칙, 칙칙, 뿌려댔다.
“어디로 갈 거냐? 난 일이 있어 가봐야 해. 너도 뿌려줄까?”
용태가 내 재킷에도 탈취제를 뿌려댔다. 이 상태로 누굴 만나러 가는 걸까? 또 어느 빌딩의 화장실에서 면도하고 갈 건가?
“가! 빨리 가봐.”
나는 명랑한 목소리로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마스크를 쓴 용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뒤돌아섰다.
나는 종로3가역을 향해 걸었다. 푸른 수염이 조만간 용태를 다 뒤덮을까? 섬뜩한 이미지에 내 등짝이 오싹했다. 원인불명의 병을 앓고 있는 용태. 용태는 암흑 속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자신을 향한 조롱만이 주변에서 몰려들 뿐. 아무도 자신을 돕지도 않고, 도울 수도 없다고 생각하겠지. 용태는 몹시, 외롭겠다.
별일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어설픈 희망 쪽으로 생각을 돌렸다. 용태가 과민해진 탓이고, 나도 용태를 따라 과민해진 것뿐이다.
은행나무 가로수가 높이 치솟아 있었다. 어두워진 하늘에는 구름이 켜켜이 흘러갔다. 달도 별도 보이지 않았다. 건물들의 네온사인이 더없이 찬란했다. 가로등도 환하게 불빛을 뿌려댔다. 달이든 별이든 떠오른다고 해도, 얼마나 희미한 빛인가. 바람이 몰아쳤다. 바람 따라 구름이 빠르게 흘러갔다. 저 멀리 작디작은 반 토막의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달은 뭔가를 비춘다기보다 자신의 존재를 간신히 알리듯이 가물가물하게 빛을 발했다. 여리게 숨을 내뱉는 반 토막의 달이 내 가슴을 아릿하게 했다. 나와 반달은 서로 마주보았다. 뭔가 뭉클한 게 전해졌다. 복잡한 지구, 휘황찬란한 도시, 어수선한 거리에서 먼지만한 내가 숨을 쉬고 있었다. 먼지인 내가 무한한 공간과 시간을 뚫고 반달과 마음을 교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