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불타오르는 두 행성
할머니는 내 엄마다. 나를 평생 금지옥엽으로 키워주었다. 나를 낳아준 사람은 아빠와 아빠를 사랑했던 여자다. 아빠를 사랑했던 여자의 이름은 ‘윤금’이다. 옛날 소설들에서 여자를 그미로 부르기도 하니, 나도 윤금이를 ‘그미’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미는 할머니의 딸이다. 그미는 아빠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다가 내가 네 살 때 집을 나가버렸다. 할머니가 나를 금자동아 은자동아 키우면서 아빠도 돌봐주었다. 나를 낳은 그미에 관한 기억은 한 조각도 없다. 그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아빠도 할머니도 입에 올리지 않는다. 가족을 버린 여자를 누가 기억하고 싶겠는가?
파편으로 주워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합하고 내 상상력을 보태면 사연은 이렇다.
그미와 아빠는 대학교에서 만났다. 그미는 도서관학과 학생이었고 아빠는 건축학과에 다녔다. 둘은 동갑이었고, 1학년 때 독서토론 동아리에서 만났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조지 오웰의『1984』같은 명작들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었다.
아빠는 동갑인 동네 여학생을 고등학교 시절부터 좋아했다. 아빠는 첫사랑 그녀를 꽃다발 같다고 생각했다. 볼 때마다 마음이 환해지고, 만났다가 헤어지고 나면 향기가 남았다. 그녀가 강원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는 바람에 아빠와 떨어지게 되었다. 아빠는 그녀를 보기 위해 주말이면 강원도 행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첫사랑이 서울 집으로 올 때는 서울에서 데이트를 즐겼다.
그미와 아빠는 동아리 친구로서 대학 캠퍼스를 함께 산책하기도 했고, 두어 번 만나서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미는 아빠를 몰래 지켜보았다. 말이 별로 없고 키가 시원스레 크고 듬직했다. 뭘 부탁하거나 맡겨도 책임감 있게 할 것 같은, 신뢰가 가는 남자였다. 대체로 무표정한 아빠가 가끔씩 빙그레 웃을 때면 그미의 심장이 덜컥, 작동을 멈추곤 했다. 그미는 아빠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인을 만나기 위해 토요일이면 시외버스터미널로 달려가는 아빠를 떠올렸으며 강원도의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는 버스에서 설레고 기대에 차서 미소를 - 그미의 심장박동을 멈춘 바로 그 미소를 - 내내 지으리라 생각했다. 그미는 자신의 심장에 치명적인 녹이 슬고 있음을 알았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한 여자를 향한 시기심은 차츰 질투로 변해갔다. 푸른 눈을 가진 괴물인 질투가 난폭하게 날뛸 때 그미가 유일하게 움켜쥔 말이 있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그미는 아빠 주변을 상큼한 햇빛처럼 얼쩡거렸다. 주말에 강원도 행 버스에 오르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꾀를 써보았지만, 매번 허사였다. 허탕을 칠수록 그미는 바짝 마른 장작처럼 세차게 타올랐다. 그미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당당하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욕심이 많고 자기표현 욕구가 강하고 언변이 좋았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아름다웠다. 그미 대학시절 사진 몇 장을 본 적이 있었다. 사치를 부리지는 않았지만 뭘 걸쳐 입어도 맵시가 났다. 그미는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영리한 여자였다. 그미는 마음을 다잡으며 세상에 쉬운 일은 없고 도전은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오후 어스름에 그미는 아빠를 불러냈다. 두 사람은 캠퍼스 구석구석을 강아지처럼 돌아다니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미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주인공 블랑시 얘기를 길게 했고, 아빠는 『크눌프』의 마지막 장면과 크눌프의 영혼에 관해서 얘기했다. 두 사람 생각의 교집합은 크지 않았지만, 즐겁고 의미 있는 수다였다. 해가 지고 배가 고파 학교 부근 밥집으로 갔다. 아웃 오브 사이트, 아웃 오브 마인드. 그미는 마음으로 주문을 외우며 입술을 짓씹었다. 식사를 하면서 그미는 아빠에게 술을 권했다. 취하게 만들고는 다시 캠퍼스로 이끌었다. 두 사람은 으슥한 벤치에 고양이처럼 앉아서 키스를 나누었다. 아빠는 야생의 절벽을 뛰어오를 정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동아리 방으로 기어들어가 서로의 몸을 그러쥐었다. 그렇게 육체를 나누는 사이가 되어갔다. 아빠는 첫사랑을 떠올리며 자제하려고 애썼지만, 그미는 호시탐탐 아빠의 육체를 노렸다. 첫사랑 그녀는 꽃다발이었고 눈앞의 그미는 과즙이 흘러넘치는 과일이었다. 이제 학교에서는 두 사람을 캠퍼스 커플로 여겼다. 아빠 마음에는 강원도에서 공부하는 첫사랑이 변함없이 향기롭고 애틋하게 피어올랐지만, 학교에서는 다들 그미를 연인으로 여겼다. 겉보기에도 꽤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그미는 당당하고 목소리가 컸고, 아빠는 과묵하면서도 듬직했다. 그 시절 아빠가 어떤 번민에 휩싸였는지는 독자들이 상상할 수 있으리라.
그미가 아빠를 독차지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아빠와 강원도의 여학생은 사소한 걸로 다투게 되었고, 강원도 여학생은 아빠에게 결별을 선언했다. 아빠는 크나큰 상심에 젖었고, 모든 잘못은 자신에게 있다고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자신은 순정과 순결을 지키지 못한 죄인이었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여자에게 적극적으로 더해볼 수도 없었다. 돌이키고 싶었지만 돌이켜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빠의 죄책감과 회한이 얼마나 컸을까.
승자인 그미는 아빠를 의기양양하게 소유하게 되었고, 아빠는 군대를 갔다. 군대시절 내내 그미는 아빠에게 부지런히 면회를 갔다. 아빠가 전역하는 날, 두 사람은 뜨거운 포옹을 했다. 그미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아빠를 모텔로 데려갔다. 매우 뜨거운 행성과 매우 뜨거운 또 다른 행성이 격렬하게 부딪쳤다. 우주가 번쩍이며 흔들렸다. 그미는 혼전에 임신을 했고, 아빠는 마지막 남은 대학 일 년을 위해 복학을 했다. 그미는 대학을 졸업하고 시립도서관의 사서로 취업해서 돈을 벌고 있었는데, 배가 불러오자 그만두었다. 내가 태어났고, 아빠는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다급하게 건설회사에 취업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아빠는 일찍 조실부모한 사람으로 큰아버지 집에서 자랐다. 큰집 형편이 크게 쪼들리지는 않았지만, 누나와 형제 둘이 있던 상황이라 아빠는 눈칫밥으로 컸다. 마음속에 싸늘한 빈터가 늘 자리 잡고 있었다. 아빠는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한 성격이었고, 무엇보다 화목하고 따뜻한 가정을 꾸리겠다고 다짐한 사람이었다.
아빠는 그미를 보면서 어쩌면 저토록 자기감정을 죄다 표현할까 생각했다. 사랑을 넘치도록 받으면서 자라면 저렇게 되는 걸까? 한편으로 그미가 부러웠다. 아빠 같은 사람들은 유년시절부터 인생의 쓴맛에 관해 고뇌하게 된다. 천성적으로 차분한 성격이었던 아빠는 청년이 되어가면서 더 과묵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 되었으며, 인생은 결국 허무를 향해 다가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허무의 완성은 가능한 걸까? 그런 모순된 언명에 때때로 빠져들었다.
빨간 덩어리로 태어난 나는 하루가 다르게 오동통하게 자랐으며 아빠는 매우 행복했다. 아기가 주는 기쁨은 다른 기쁨과 대체 불가한 특별한 것임을 알았다. 자신이 이룬 이 가정이 더없이 소중했다. 아빠는 처자식을 위해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다.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야근과 주말 근무도 성실하게 해냈다.
그미는 변덕이 심한 사람이었다. 갖고 싶어 안달했던 아빠와 나를 완전히 소유하게 되자, 전투력이 사라지면서 지루해졌다. 그미는 어스름처럼 가라앉았고 곰팡이나 이끼 같은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미는 대학동창회도 동네 주부모임도 들락거려보았다. 그 시절에는 주부들 사이에서 수영과 에어로빅을 배우러 다니는 게 유행이었다. 그미도 대수롭지 않게 수영을 배우러 다녔다. 그미는 몸매가 좋고 운동신경이 발달해 수업을 잘 따라갔다. 코치는 그미를 시범조교처럼 사람들 앞에 세웠다. 그미의 몸을 만지면서 수영 동작을 사람들에게 강의했다. 그미는 제법 시범을 잘 보였다. 그미는 코치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물결에 몸을 맡길수록 마음은 낙엽처럼 방황했다. 그미는 방황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급기야 두 사람은 수영장 밖에서 따로 만났다. 수영코치는 그미보다 일곱 살이 어린 미혼남자였다. 남들은 통속적인 불륜이라고 욕할지 몰라도, 그미는 코치와 자신의 인생관이 잘 맞는다고 믿었다. 몸이 원하는 바가 있으면 몸으로 행해야 한다는 것. 몸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
어느 날 그미는 나를 재워놓고 가방을 싸서 집을 나갔다.
여보, 미안해! 나 찾지 마. 다른 사람 생겼어. 우리 딸 잘 키워줘.
그미는 쪽지를 식탁 위에 남겼다. 얼마나 장난 같은 편지인가. 명쾌해서 좋긴 하다. 구구절절 변명하지 않아서 깨끗하긴 하다. 하지만 얼마나 가벼운가. 인생의 선택이란 아틀라스가 지고 있는 지구만큼 무거울 때가 허다한데. 쪽지 덕분에 그미의 인격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말았다. 쪽지 덕분에 아빠는 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하지 않았고 기다리지도 않았다. 집에 와본 할머니는 그미의 쪽지를 들고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얼마나 수치스럽고 절망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딸자식이 커가면서 저지른 잘못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때마다 더 호되게 혼내지 않은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모든 걸 자신 탓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주 가끔 그미를 상상할 때가 있었다. 책이 엄청나게 많은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거나 책을 읽고 있는 여자를 떠올렸다가, 수영이나 에어로빅을 한다고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고 팔다리를 우쭐대며 움직이는 여자를 떠올렸다. 두 상상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다. 다른 두 여자처럼 여겨졌다.
첫사랑에게도 버림받았고, 아내에게도 버림받은 아빠는 다시는 여자를 가까이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여자는 불꽃이다. 아름다워 다가가면 바로 데이고 만다. 아빠의 상처는 예상 외로 컸다. 오쟁이 진 남자라는 사실이 생의 모든 순간에 끼어들어 의욕을 잃게 했다. 사람의 수치심 중에 그만한 수치심이 어디 있겠는가.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빠는 수백 번 수천 번 되물었다. 강원도의 여학생이 떠나가도록 두지 말아야 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첫사랑은 붙잡아야 했다. 그미와 육체를 나누지 말아야 했다. 독서 동아리에 들지 말아야 했다…… 등등. 돌이킬 수 없는 일들만 미치도록 돌이켜 생각했다. 아빠는 만사에 의심으로 가득 찬 스켑틱. 자신이 원하는 쾌락은 다 누려야 한다는 신념으로 가득 찬 그미. 두 사람이 정신적으로 찰떡궁합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아빠는 깊디깊은 우울에 빠져 폐선처럼 삭아갔지만, 귀가해서 나를 보면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아기는 꼭 지켜야지. 장모님도 얼마나 좋은 분인가. 장모님이야말로 안쓰럽다. 아빠는 가정의 구성원에 변동은 있지만 가정은 그대로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가정을 잘 꾸려야 한다는 아빠의 생각은 확고부동했다.
아빠는 여자를 절대 가까이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지극 정성으로 나를 키우면서 집안 살림을 살뜰하게 살았다. 집안은 평화롭고 곳곳에 광택이 흘렀다. 할머니가 아빠 심사를 잘 살펴 불편하거나 거북한 일은 만들지 않았다. 음식솜씨도 좋아서 아빠 입맛에 맞는 밥을 매일 따뜻하게 차려놓았다.
그미가 바람나지 않고 가정을 잘 지켰으면, 할머니는 인생을 옹골차게 즐겼을 것이다. 할머니는 딸을 결혼시키고 나서, 바깥활동에 재미를 붙였다. 봉사활동도 다니고 데생이나 기타도 배우러 다녔다. 그러다 할머니에게 딱 맞는 강좌를 만나게 되었다. 논어와 맹자를 강독하고 한문서예를 배우는 수업이었다. 그야말로 인격도야와 마음수련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묵향을 맡으며 천천히 한 획, 또 한 획을 그어나가면 마음이 고요하고 맑아졌다. 어떤 종교생활보다 만족스러웠으나 일 년을 채우지 못하고 끝이 났다. 사위집에 들어가서 손녀를 키워야 했다. 또다시 가사노동과 육아의 굴레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그게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딸이 책임지지 못한 걸 자신이라도 책임질 수 있어 다행이라고 여겼다. 딸이 말할 수 없이 한심하고 밉기도 했지만, 누구든 자기 마음대로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는 대명제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렸다. 딸이 임신사실을 알려왔을 때, 고추장을 담그려고 엿기름에 찹쌀가루를 넣어 저어대던 커다란 주걱으로 딸의 등짝을 후려치려다가 그만둔 순간이 종종 떠올랐다. 결혼 전이라 놀랍고 속이 상했으나, 생명을 잉태했으니 기특한 마음도 들었다. 귀하디귀한 생명이 딸아이 뱃속에 들어앉았다고 생각하자 기쁨이 북받치기도 했다. 그년이 지금 눈앞에 있다면 당장 고추장 주걱으로 등짝을 열 대, 스무 대 후려치고 또 후려칠 것이다. 그년이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책임’이라는 걸 떠올릴 테지. 책임을 다하는 삶이 쉽지 않다는 것과 책임을 저버렸을 때는 반드시 죄의식이라는 게 따라다니며 평생 괴롭힌다는 것도 알게 되겠지. 할머니는 그렇게 생각했다.
할머니는 아빠에게 재혼을 여러 번 권했다. 아빠는 할머니의 눈길을 피해 고개를 숙이면서 무슨 말씀을요? 아닙니다, 그 말이 전부였다. 아빠는 할머니가 지켜주는 이 가정이 만족스러웠다. 집안은 깔끔하고 밥맛은 정말로 비할 데 없이 좋았다. 항상 훈훈한 공기가 맴도는 집. 딸도 할머니의 사랑 속에 잘 커가고 있지 않나. 이런 가정에 또 다른 변수가 끼어들거나, 가족 구성원에 변동이 생기는 건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아빠는 가정을 위해서 열심히 돈을 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