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삼신할미
내가 등장할 때가 되었다. 이것저것 다 맛보고 다 만지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아이로 잘 커가고 있었다.
내가 일곱 살 때의 일이었다.
할머니와 내가 외출한 어느 봄날의 오후였다. 날씨가 덥지는 않았는데 햇살이 풍성하고 눈부셨다. 할머니가 양산을 펼쳐서 동그란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양산 그늘 아래서 걷다가 양산 밖으로 깡총 나왔다가 다시 폴짝 양산 그늘 밑으로 들어갔다 장난하면서 할머니를 따라 걸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급출발해서 나도 할머니도 비틀거렸다. 나는 할머니의 옷자락을 꽉 잡았다. 할머니가 내 손을 잡으려고 손을 내미는데, 버스좌석에 앉아 있던 한 아저씨가 할머니를 올려다보았다.
“아이를 내 무릎에 앉히세요.”
아저씨가 인정 많은 눈길로 할머니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할머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버스가 또 덜컹거려서 할머니와 내가 휘청거렸다.
“아이가 넘어지겠는데…….”
아저씨가 어느새 내 팔을 잡아끌고 허리를 안아서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할머니가 인사를 했다.
아저씨의 무릎은 편치 않았다. 뭐라 표현할 수 없이 이상하고 기분이 나빴다.
버스 안은 마녀의 솥처럼 끓어올랐다. 온갖 소음이 몰려들어 부글거렸다. 창문으로 바깥의 자동차소리들이 밀려들었고, 기사아저씨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요란한 유행가가 쏟아졌다. 앞자리에 앉은 남자아이 소리까지 뒤섞여 귀가 얼얼했다. 남자아이가 바깥의 간판글자를 크게 읽으면 남자아이의 엄마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감탄사를 터트렸다. 할머니도 미소를 지어주었다. 잘난 척하는 남자아이의 목소리와 아이엄마의 맞장구가 내 귀에 거슬렸다. 나도 저런 거 다 읽을 수 있어. 글을 못 읽는 아이도 있나?
아저씨 손이 내 밑을 스쳤다. 나는 놀라서 움찔거렸다. 내가 무거워서 아저씨가 자세를 다시 잡으려고 그러나? 또 아저씨 손이 내 밑을 스쳤는데 손이 치마 속 팬티에 닿아 있었다. 벌레가 꼼지락거리는 것 같았다. 거친 손가락이 내 밑을 자꾸 파헤쳤다. 몹시 불편하고 겁이 났다. 나는 고개를 돌려서 할머니를 올려다보았다. 할머니가 눈치를 채고 나를 내려주어야 하는데. 할머니는 창밖을 내다보다가 앞자리 남자아이에게 미소를 지어주다가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남자아이는 할머니의 관심과 칭찬에 의기양양해서 더 크게 외쳐댔다. 남자아이의 엄마가 구구단 외워봐, 라고 했다. 남자아이가 우렁차게 숫자들을 외웠다. 내 밑에서는 벌레가 쉬지 않고 꼼지락거렸다. 나는 점점 더 무서웠다. 벌레가 엄청 커졌다. 커다란 벌레가 내 밑을 파먹어댔다. 나는 또 고개를 위로 치켜들며 할머니를 찾았다. 할머니가 남자아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거칠고 흉측한 벌레가 내 밑을 자꾸 파고들었다. 너무 아팠다. 커다랗게 꿈틀거리는 벌레가 내 몸속으로 들어와서 내 속을 다 파먹겠다. 나는 할머니를 계속 올려다보았다.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나는 속으로만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가 눈치 채고 나를 바라보고, 나를 아저씨 무릎에서 내려주어야 하는데. 커다랗고 날카로운 벌레가 내 몸속을 다 파먹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숨 쉬기도 어려웠다. 머릿속에는 차 안의 소음으로 끓어올랐고, 내 허리를 잡고 있는 아저씨의 한쪽 손도 너무 억셌다. 내 허리뼈가 부러질 정도로 힘을 꽉 주고 있었다. 악어한테 허리가 물린 것 같았다. 아파, 아파……. 너무 아프고 무서워, 무서워……. 빨리 버스에서 내리고 싶다. 할머니, 할머니…….
그때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의 동공이 커졌다. 내 낯빛이 백짓장이거나 아니면 흙빛이었겠지. 할머니는 순식간에 사태를 파악했다. 아저씨의 한쪽 손이 내 치마 밑에 있다는 걸 알아챘다. 할머니는 나를 번쩍 안아서 등에 업었다. 창밖을 보는 척 고개를 돌리고 있던 아저씨가 화들짝 놀라서 무슨 말을 하려던 찰나였다. 할머니는 가방에 삐죽이 넣어져 있던 양산을 뽑아들고 아저씨의 가랑이 사이에다 내리꽂았다. 양산의 나무 손잡이가 아래로 향하도록 잡은 다음이었다. 할머니의 머리 회전과 손동작은 번개처럼 빨랐다. 그 순간 버스가 용케도 덜컹거려 양산의 나무 손잡이는 아저씨 가랑이에 더할 수 없이 강력하게 내리박혔다. 아저씨 입이 떠억 벌어졌다. 두 손으로 아랫도리를 감싸쥐었다. 더러운 입을 계속 벌리고 있을 뿐 어떤 소리도 내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고개를 쳐들고는 할머니를 향해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할머니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다시 한 번 양산의 나무 손잡이로, 아랫도리를 감싸 쥔 아저씨 두 손을 공격했다. 세차게 내리찍었다. 분노는 할머니를 더없이 용맹스럽고 강하게 만들었다. 버스 안이 소란해서 우리를 쳐다보는 시선이 있었는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 남자아이는 여전히 구구단을 목청껏 외쳐대고 있었다.
그때 버스가 멈췄고 버스 문이 열렸다. 할머니는 쏜살같이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가 쌩하니 떠나가자, 할머니는 나를 등에서 내려주었다. 할머니 등은 땀으로 축축했다. 할머니가 양산의 나무 손잡이를 내려다보았다.
“무기가 필요할 때가 있지. 그놈의 고환이 터져 뭉개졌으면 좋으련만. 손가락도 바스러졌어야 하는데……. 오늘 이 양산이 한몫 했다.”
할머니는 나를 또 둘러업었다. 내가 괜찮다고 해도, 나를 업고 두 손으로 나의 엉덩이를 꼭꼭 감쌌다.
“미안하다, 미안해, 아가야……. 낯선 놈한테 애를 맡기는 게 아니었는데. 이 할미 탓이다. 미안하다, 미안해. 그놈을 죽였어야 속이 후련한데. 사지를 찢어 죽여야 마땅한 놈인데. 다른 아기들에게도 그럴 거 같은데…….”
할머니는 나를 업은 채 두 정거장을 걸어서 집으로 갔다. 분이 삭지 않아 할머니는 피곤한 줄도 몰랐다. 그날 밤은 할머니 품에서 잤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도 잊히지 않는다.
남자 아이들이 교실에서 번잡하게 떠들며 뛰어다녔다. 나는 마음껏 놀기에는 치마가 좀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뛰는 대신 얌전히 걷고 있는데, 갑자기 내 치마가 위로 심하게 펄럭거렸다. 남자아이들의 폭소가 터졌다. 나는 깜짝 놀라서 두 손으로 치마를 내리누르면서 두리번거렸다. 한 남자아이가 내 치마를 ‘아이스케키’ 한 거였다. 세상의 열기가 내 얼굴로 몰려들었다. 순식간에 목덜미까지 달아올랐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지 몇 주 되지 않았다.
오늘 할머니가 나에게 하얀색 타이츠를 신겨주었고, 노란색 바탕에 빨간 물방울무늬가 있는 원피스 치마를 입혀주었다. 새처럼 예쁘다고 할머니가 말해주었다. 나는 내 치마를 올린 녀석을 째려보았다. 녀석은 뱀처럼 혀를 날름 내보이면서 싱글거렸다. 내가 녀석을 혼낼 수 없다고 판단하고 나는 치마를 두 손으로 내리누르며 내 자리로 걸어갔다. 또 치마가 뒤에서 펄럭거리며 올라갔다. 남자아이들의 폭소가 또 터졌다. 나는 한 번 더 놀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다른 남자아이가 다가와 아이스케키를 한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번에도 그 녀석을 째려보는 것뿐이었다.
“봤지롱, 다 봤지롱, 얼레리꼴레리…….”
남자아이들이 죄다 나를 향해 목소리를 모아 놀려댔다. 뱀들이 떼를 지어 혀를 낼름거리며 위협했다. 여자아이들은 자기네들끼리 노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가시덤불이 내 두 발에 엉켜들었다. 두 다리로 칭칭 감겨 올라왔다. 나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힘을 다해 치마를 두 손으로 꽉 내리 덮는 수밖에. 또 다른 남자아이가 낄낄거리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내가 보는 앞에서 내 치마를 들추겠다고. 이제는 째려볼 수도 없었다. 수치심이 솟구치고 화가 북받쳤다. 이 모든 상황은 불가항력이었다. 나는 내 자리로 가야만 했다. 가시덤불이 내 다리를 놓아줄 리 없는데. 울고 싶지는 않았다. 저 남자아이들은 진짜 나를 해치고 싶은 걸까. 이런 악마 같은 짓거리가 처음도 아니었다. 치마를 입고 오는 날이면 꼭 몇 번씩 아이스케키를 당했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나는 이를 악물고 달려서 자리에 앉았다. 기침이 심하게 터졌다. 목구멍으로 마른 침이 넘어가고 속에서 뜨거운 숨이 쏟아져 나오면서 서로 엉켰다.
수업 종이 울렸고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선생님이 칠판을 똑똑 두드리며 조용히 하라고 말했다. 나는 칠판을 바라보았다. 왜 유독 나한테만 남자아이들이 장난을 치는 걸까? 그것도 한두 번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계속……. 내가 그렇게 만만하단 말인가? 다른 여자아이들은 치마를 입고 와서도 신나게 뛰어놀고 그러는데. 키가 작아서 그런가? 내가 키도 크고 몸집도 크고 살도 쪘다면 남자아이들이 만만하게 보지는 않겠지. 나는 언제 키가 훌쩍 클까? 앞으로 치마는 입고 다니지 못하는 건가? 할머니한테 뭐라고 말해야 할까? 치마 입기 싫다고 말하면 이유를 물을 텐데.
할머니가 나를 엄격하고 무섭게 키운 것도 아닌데, 할머니에게 어떻게 말할까 왜 걱정했을까? 어른이 된 지금, 어린아이 시절의 그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다.
몇 년 전에 『운하의 소녀』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얄팍한 책을 읽는 게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아이들은 왜 말을 하지 않을까? 자신에게 일어난 나쁜 일을 왜 부모나 주변 어른에게 얘기하는 걸 주저할까? 『운하의 소녀』의 주인공 사라는 부모가 냉정하고 신경질적이어서 더더욱 입을 다물었다. 사라는 깊은 침묵 속에서 혼자 울었다. 자신에게 일어난 나쁜 일을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어른인 나는 사라의 마음을 전부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오래 전 나의 이 사건도 떠올랐다. 할머니에게 비밀로 하려는 건 아니었지만,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망설였던 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다시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귀가 먹었는지 선생님 말이 내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눈이 멀었는지 칠판의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치마가 들쳐져 속이 다 보였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수치심에 어지러워지면서 머리가 아파왔다.
쉬는 시간 종이 울렸다. 오줌이 마려웠다.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남자아이들이 또 따라오면서 아이스케키를 할 게 뻔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치마를 내 다리에 딱 달라붙게 할 방법은 없나? 온몸이 오돌오돌 떨렸다. 온몸이 떨리니까 오줌이 막 나올 것만 같았다. 오줌을 쌀 것만 같았고 눈물까지 나오려고 했다. 속도 울렁거리고 머리도 깨질 것 같았다.
그날 수업을 어떻게 끝내고 집까지 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집에 들어서자 할머니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는데, 바로 오줌이 줄줄 흘러나왔다. 하얀색 타이츠와 빨간색 운동화까지 젖어들었다. 할머니가 순간 놀라긴 했지만 나를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오줌이 많이 마려웠구나. 그래, 계속 편하게 눠.”
내가 오줌을 다 누고 나자, 할머니는 나를 안아서 욕실로 데려갔다. 원피스와 타이츠를 벗기고 운동화를 벗겼다. 따끈한 물에 나를 씻겨주었다. 아기 때 사용했던 커다란 타월을 꺼내서 내 몸을 감싸주었다. 따뜻한 보리차에 밥을 말아서 나에게 떠먹여주었다. 그제야 나의 온몸과 온 마음이 스르르 풀어졌다. 나는 아기가 된 것처럼 입을 벌려서 밥을 받아먹었다.
“민주야,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할머니한테 말해봐.”
“치마 입고 학교 가기 싫어.”
내 입에서 말이 터져나왔다.
“그래……, 왜 치마가 싫어?”
“남자애들이 자꾸 아이스케키 해. 치마를 자꾸 들쳐서 엉덩이가…….”
말이 편하게 술술 나왔다.
“치마 입고 학교 안 갈 거야. 나한테만 그래. 저번에도 그랬어.”
“그래그래. 이제 치마 입지 말자. 그 놈들 이름을 대봐.”
“용식이, 민우, 우주, 서준이.”
“할머니가 그놈들 혼내줄게. 밥 좀 더 먹자.”
다음날 나는 바지를 입고 학교에 갔고, 여기저기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았다. 어제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할머니가 학교에 다녀갔다는 건 아주 나중에 다 커서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교무실에 가서 남자아이들 이름을 대며, 학교에서 혼내지 않으면 직접 혼내겠다고 말했다. 애들끼리 장난한 걸 가지고 뭘 그러느냐는 어느 남자선생한테 할머니가 거세게 항의했다. 교무실에 할머니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여자 담임선생한테는 철저하게 다짐을 받았다.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남자아이들의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리고 말겠다고.
교무실을 뒤집어놓은 다음, 할머니는 교실로 와서 몰래 들여다보았다. 뛰어다니며 놀고 있는 나를 보고 할머니는 안심했다. 남자아이 한 명을 불렀다. 용식이, 민우, 우주, 서준이가 누군지 물었다. 할머니는 학교에서 얼마간 더 머무르며 남자아이 네 명의 얼굴을 익혔다.
학교는 보나마나 별다른 처리를 하지 않는다. 여자 담임선생도 아이들에게 여자 친구들 치마는 들치면 안 돼요, 혼내줄 거예요, 라고만 하고 말 것이다. 제대로 된 교육은 내가 시키마. 할머니는 그렇게 현명하게 판단했다.
다음날 할머니는 나를 학교에 보내놓고, 검정색 바바리를 걸치고 검정색 스카프를 머리에 둘렀다. 반짇고리 속의 가위를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마지막으로 선글라스를 꼈다. 아버지가 현장에서 쓰던 선글라스였다.
할머니는 학교주변을 맴돌면서 네 명의 남자아이들을 하나하나 만났다. 남자아이를 친절하게 부른 다음, 학교 옆 골목으로 이끌었다. 할머니는 다리를 굽혀 남자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주머니에서 가위를 꺼냈다. 가위를 남자아이 배쯤에 갖다댔다.
“용식아, 너 여자 친구들 치마 아이스케키하면 이 가위가 너의 짬지를 잘라버릴 거야.”
할머니는 가위를 용식이의 잠지에 바짝 갖다대었다. 용식이는 무서워 기겁을 하며 달아나려 했다. 할머니는 용식이의 팔뚝을 놓아주지 않으며 다시 말했다.
“여자 친구들 치마 들치면 이 가위가 너 짬지를 싹툭싹툭 잘라 먹어버린단다. 남자아이 짬지를 먹어치우는 가위야.”
용식이는 울음을 터트릴 지경이 되어 잡힌 팔뚝을 뿌리치며 달아났다.
네 명의 아이들에게 모두 그렇게 경고를 주었다.
일주일 후에 할머니는 다시 똑같은 복장과 똑같은 가위를 들고 네 명의 아이들을 만났다. 한 번 더 똑같이 경고했다.
“서준아, 반갑다. 그동안 너 여자 친구들 치마에 또 장난쳤지?”
할머니는 한 손으로는 서준이의 팔뚝을 꽉 잡고, 한 손으로는 가위를 들이대면서 물었다. 서준이는 사색이 되어 벌벌 떨면서 고개를 저었다.
“안, 안했어요. 저, 정말 안 그랬어요.”
“니가 거짓말하는지 안하는지 이 가위는 다 알고 있어.”
“저, 정말 안 그랬어요.”
“좋아, 그럼 가봐. 이 가위가 널 따라다니며 지켜보고 있다.”
서준이는 죽을힘을 다해 달아났다. 그렇게 네 명의 남자아이들을 다 만났다.
가위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학교에 나돌았다. 나는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여자아이들은 남자애들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히죽히죽 웃어주었다.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가위귀신 소문은 일파만파 퍼졌고, 선생들 귀에까지 들어갔다. 선생들 귀에 들어갔다고 해서 선생들이 소문에 대해 어떻게 했다는 건 아니다. 사실 선생이란 아이들에게 관심이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이다.
가위귀신 소문은 남자아이들을 공포에 몰아넣기에 충분했고,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 땐 아랫도리부터 감싸 쥐고는 두리번거리기 일쑤였다. 남자아이들은 서로에게 욕을 해댈 때 가위귀신을 이용했다. 가위귀신한테 자지 짤릴 새끼!
고등학생 시절 어느 날, 예전 앨범을 들쳐보다가 할머니와 수다를 떨게 되었다. 이런 저런 얘기 중에 할머니가 어린 남자아이 네 명을 혼내주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이야기가 바로 가위귀신 이야기였다. 나는 남자애들이 가위귀신을 얼마나 무서워했는지를 할머니에게 들려주었다. 할머니와 나는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할머니는 나를 돌봐주고 지켜주는 삼신할미. 나의 구원자, 나의 영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