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용태의 사생활
편의점의 문이 열리면서 종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며 어서 오세요, 라고 응대했다. 용태가 카운터로 다가왔다.
“웬일이야? 여기까지?”
“심란해서……. 음료 마시면서 잠깐 쉬려고.”
나는 잘 왔어, 라면서 음료 냉장고 앞으로 갔다.
“뭐 마실래? 배는 안 고파? 내가 사줄게.”
용태가 고개를 힘없이 저었다. 세상 입맛 없다는 표정.
다행히 편의점이 한가했다. 나는 커피음료 두 개를 들고 편의점 유리벽의 테이블로 향했다. 용태가 검정색 가죽가방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나지막하게 쿵, 소리를 내는 용태의 가방. 가방의 깊디깊은 곳에서 새어나오는 한숨. 오늘도 무척 고단했다고, 할 말이 아주 많다고 가방이 투덜대려다가 참는 것 같았다. 용태가 가방을 한쪽 옆으로 쭉 밀고, 커피음료의 뚜껑을 돌려 따서 나에게 주고 또 하나를 따서 입으로 가져갔다.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있어.”
“뭐?”
나는 용태를 바라보았다.
“열흘 전쯤에 배 주변이 조금 울긋불긋했거든. 다음날 아침에 샤워하면서 보니까 가슴팍 전체로 번졌어.”
용태가 기운 없이 씁쓸하게 히죽거렸다.
“두드러기? 뭘 잘못 먹었어?”
“아니. 특별한 거 먹은 거 없어. 수염이 좀 주춤하나…… 싶었는데, 이젠 피부병이……. 정말 돌겠다.”
“병원은? 피부과는 가봤어?”
“갔지. 약 먹고 있는데, 별 소용이 없어. 내일 한 번 더 가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 중이야…….”
편의점 바깥의 사람과 거리와 가로수가 꿈결처럼 가물거리며 아득하게 멀어지더니 하얗게 지워졌다.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용태와 나는 말없이 바깥풍경을 바라다보았다. 하늘로 시선을 올렸다. 한 덩어리의 구름이 흘러갔다. 왕복 이차선 차도에는 자동차들이 달려갔다. 마을버스가 달려갔다. 인도에는 자전거를 탄 여자가 지나갔다. 가방을 멘 고등학생 두 명이 뛰어갔다. 개를 산책시키는 노인이 지나갔다. 푸른 담배연기를 날리는 중년남자가 지나갔다. 전동킥보드를 타는 청년이 지나갔다. 백발의 할머니가 실버카트를 밀면서 지나갔다. 낮술에 취했는지 비틀거리는 초로의 남자가 지나갔다.
용태에게 좀 합리적인 말을 해주고 싶었으나, 그런 말이……, 어떤 말인지,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납득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왜 이렇게 자꾸 생겨? 라고 남의 말 하듯이 할 수는 없었다. 용태 자신이 그런 생각과 싸우고 있을 테니.
“나는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 가짜나무 팔러 다니는 일도 지겨워 미칠 것 같은데……. 전혀 신경 안 쓰셔도 되고요, 한쪽 구석에 세워두시면 늘 싱싱한 모습으로 어쩌구 떠드는 것도…… 역겨워. 나중에는 한쪽 구석에 나무가 있는지도 몰라. 사람이란 그렇게 되거든. 어휴……, 모든 게 다 지겹고 한심해.”
“일단은 몸을 무리하게 쓰면 안 될 것 같아. 피곤하면 피부가 더 말썽을 부리고 약도 잘 안 받겠지. 복잡한 생각은 당분간 접어두고, 하루하루 덜 피곤하게 보내려고 애써야 할 것 같아.”
도대체 용태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용태의 면역체계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일까? 그는 깨진 달걀처럼 퍼져서 완전히 절망하고 싶을 것이다. 실컷 실컷 울고 싶을 것이다. 기운 내는 것도 고통일 것이다. 매일 기운을 내도, 매일 더 기운내야 할 일만 생기니 말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서, 밥 먹는다고 바로 기운이 솟지는 않으니. 마음이 따라줘야 힘이 나니 말이다. 용태는 어떻게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내야 하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