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돌이 떨어지는 곳
교보문고에 들어서면서 거대한 귀에게 전화한다. 전화를 바로 받는다.
빈티지스타일의 낡은 긴 바바리를 치렁치렁하게 걸친 남자가, 내가 서 있는 핫트랙스 음반코너 앞으로 다가온다. 바바리 속에는 빨간색 면티를 입었다. 발목을 두어 번 접어올린 청바지를 입었고 워커부츠를 신었다. 강렬하고 촌스럽게 매치했다. 이렇게 연출하고 싶었나보다. 점잖은 양복만 입고 다니던 사람이었는데. 한쪽 어깨에 백팩을 비스듬히 걸치고 손에는 책 한 권을 들고 있다.
“반갑다, 민주 씨.”
“못 알아볼 뻔했어요. 안녕하세요?”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한다.
“진짜 반갑다. 민주 씨는 얼굴 좋아졌다. 더 어려진 것 같아.”
나는 피식 웃으며 권 선배가 쥐고 있는 책을 내려다본다.
“책 사셨어요?”
“응, 좀 일찍 나와서 책들을 둘러봤지.”
권 선배가 들고 있는 책은 요즘 유행타고 있는 경제 분야의 자기계발서다. 미래, 비밀, 습관, 조건, 독서, 혁명……, 같은 단어 앞에 ‘부자’를 붙인 책제목들.
“뭐 먹을래?”
나는 그냥 미소만 짓는다.
“아무 거나 괜찮다는 거지? 일단 나가자.”
교보문고에서 종로1가 방향으로 나가서 두 블록을 지난다. 권 선배가 어느 중국집으로 안내한다.
“내가 먹고 싶은 집으로 왔어. 여기 나름 괜찮은 중국집이야.”
메뉴판을 나에게 내민다.
“볶음밥 먹을 게요.”
“아…… 그럼, 일단 칠리새우를 먹고 그리고…… 해물누룽지탕도 먹고 싶다. 볶음밥이나 짜장은 그거 먹고 나서 먹자. 어때 괜찮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권 선배는 맥주도 덧붙여 주문한다. 삼 년쯤 만에 보는 권 선배는 늙은 것 같다. 얼굴피부가 거칠고 뺨이 야위고 눈가에 주름이 늘었다. 미래컴퍼니에 다니면 이렇게 된다 싶다. 일방적으로 영혼과 청춘을 강탈당하는……. 권 선배는 그동안 승진을 못했는지 모른다. 그런 걸 대놓고 물어보고 싶지는 않다. 미래에서 제대로 대우받았으면 그만두지 않았겠지. 아니다. 뭐 개인적인 문제로 그만둘 수 있으니까.
권 선배는 먼저 내 잔에 맥주를 채우고 자신의 잔에도 맥주를 채운다.
“민주 씨 그만둘 때……, 당분간 직장은 안 다닐 것 같더라.”
“왜요?”
“그냥 내 느낌이지. 조직생활이 진절머리 난다는 그런 표정이었거든.”
나는 술잔에 술만 받아놓고 칠리새우를 얌전하게 먹는다.
“나는 조직에 최적화된 사람이 되는 게 한때 꿈이었지.”
과연 거대한 귀다운 말이다. 내가 사람을 제대로 본 게 맞다.
“지금은 꿈이 바뀌었어.”
뭐냐고 물어보려다가, 궁금하지도 않아서 그냥 입을 다문다. 아까 샀던 책처럼 부자가 되고 싶겠지. 지구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술만 늘었어. 조직에 최적화된 사람이 되려고 했더니 술만 계속 늘었어.”
권 선배가 껄껄 웃음을 터트린다. 나도 히죽, 웃음이 난다.
“내 꿈이 뭔지 아직 알려줄 수는 없어. 하지만 지켜봐. 민주 씨가 지켜봐준다면 더 없이 좋지.”
나는 대꾸 없이 누룽지탕을 개인접시에 덜어서 떠먹는다.
“혹시 결혼한 건 아니지?”
내가 네? 라며 고개를 든다.
“결혼 안한 거 맞지?”
“선배님은요?”
“내가 결혼했으면 이렇게 회사를 그만둘 수 있었겠어? 처자식 없으니까 내 마음대로 한 거지. 다 계획이 있어. 결혼도, 일도…….”
나는 고개를 끄덕여준다.
“회사생활하면서 책 한 권 못 읽다가, 올해 초에 『달과 6펜스』를 읽었어. 읽으면서 생각이 너무 복잡해지더라고……. 다 읽고는 심장이 텅 빈 것 같은 느낌. 뜨겁게 타버려서 텅 빈 느낌……. 하여튼 좋은 책이야.”
잘 나가던 증권 중개인이 처자식을 버리고 그림을 그리려고 타히티로 간 이야기에 감명 받았다는 말이다. 선배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회사를 그만둔 걸까? 부자가 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걸까? ‘달’을 좇아가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걸까, 6펜스를 좇아가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걸까?
“꿈이 휘발하듯이 이 지긋지긋한 현실이 금방 스르르 사라지지는 않지. 그래도 다 생각이 있지…….”
권 선배가 맥주를 들이키면서 중얼거린다.
심보르스카의 시 구절이 생각난다. 현실은 꿈이 사라지듯 느닷없이 푸드덕 날아가 버리지는 않는다……. 2)
권 선배가 다시 보인다. 조직에 최적화되려고 자존심이란 자존심은 죄다 버렸던 사람이 저런 깨달음을 갖고 있다니.
“민주 씨는 고고하고 깨끗한 사람이었지.”
권 선배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히죽거린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 민주 씨 비꼰 거 아냐. 오해하지 마. 민주 씨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있어야 돼. 고고하고 깨끗한 걸 소중하게 지키려고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엔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야.”
권 선배가 맥주를 들이킨다.
“매일매일 출근하고 싶지 않은 이 현실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지. 그러니까 민주 씨는 대차게 회사를 그만두었지. 그러니까 나는 끈질기게 회사에 남아 있었고.”
나는 맥주병을 들고 권 선배의 잔을 채워준다. 나도 목이 마른 듯해서 내 잔의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킨다. 예전의 거대한 귀와는 다른 사람인 것만 같다.
“생각해보면 말야, 직장생활하면서 다른 동료들한테 못할 짓도 많이 한 것 같애. 살면서 타인에게 참 많은 돌을 던진 것 같아. 타인이 알게도 던지고, 타인이 모르게도 던지고. 민주 씨가 그만두고 나서, 나 자신이 참 비루하게 느껴지더라고. 내가 좀 더 신경 썼으면 민주 씨 직장생활이 좀 편했을까……, 그런 생각을 여러 번 했지.”
권 선배가 씁쓸하게 킥킥 웃는다.
거대한 귀가 더 챙겨줬다고 내가 더 버티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대한 귀의 배려나 친절이 더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누구 한 사람 개인의 문제가 아니니까. 과도한 경쟁에 불붙어서 서로 시기 모함하는 그 분위기가 넌덜머리났다.
권 선배가 맥주를 벌컥벌컥 마셔댄다.
우리의 모든 행위들이 바로 우리 자신의 내면의 바닥으로 떨어진다.3) 이 시구절도 생각난다.
자신이 던진 돌이 자신에게로 떨어진다는 그 진실. 나도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신다. 권 선배는 예전의 그 작자가 아닌 것 같다. 그때는 이런 대화를 나눌 기회조차도 없었지만. 산전수전 겪으면서 괴물에서 스스로 벗어난 건가?
“저는 지금 글 쓰고 있어요.”
“무슨 글 써?”
“뭐, 여러 종류의 글을 써보려고 해요. 한 가지 장르만 쓰는 게 아니고. 에세이도 쓰고, 소설도 쓰고, 뭐 영화감상도 써보고 싶고……. 그 중에서 제일 쓰고 싶은 게 소설이죠.”
“그럴 것 같더라.”
나는 네? 왜요? 라고 묻는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보이니까. 자유로운 영혼이 자유롭게 쓰는 글이 소설이잖아. 그런 거 아냐? 맞지?”
나는 히히 웃고 만다.
“글 쓰는 데 내가 도움이 된다면 뭐든 도와줄게. 민주 씨 도와줄 시간은 항상 있어.”
내가 글 쓰는 데에 권 선배가 무슨 도움이 되겠나 싶지만, 나는 그냥 고개를 까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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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끝과 시작』 비스와봐 심보르스카, 문학과 지성사. 심보르스카의 시 <현실>의 첫 구절.
3)『기억이 나를 본다』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들녘. 트란스트뢰메르의 시 <돌>의 마지막 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