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괴물들이 사는 나라

18. 괴물들이 사는 나라

by 파랑

사력을 다해 하루하루 무사히 통과하려던 내 직장생활이 생각난다. 심장 밑바닥에서 저항감이 막 솟구친다. 정말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다.


식당 안쪽, 룸의 문을 열자 시끌벅적한 소음이 요동을 쳤다. 찝찔하고 비릿한 음식냄새가 룸 안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있었다.

“정민주 씨, 어서 와. 왜 이렇게 늦었어?”

거대한 귀가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몸통만한 커다랗고 널따란 두 귀가 움칠거렸다.

“내 옆에 앉아.”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소주를 돌리던 중이었나 보다. 식탁에는 시들어가는 상추와 깻잎이 담긴 채소바구니가 널려 있었고, 마늘조각이 이리저리 튀어 있었다. 다들 희죽거리며 대화를 나누거나 낄낄거리거나 뭐라고 열변을 뱉어내고 있었다.

“늦었군, 어서 식사하게.”

맞은편 자리의 악어 입이 큰소리쳤다. 거구의 몸집에 길쭉하고 위협적인 큰 입을 쩌억, 벌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위와 아래 송곳니 한 쌍이 오늘따라 더 돌출되어 번쩍였다. 늘 그렇듯이 전신의 피부가 불타오르는 것처럼 붉은 색이었다. 열정, 열정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떠들어댔다. 열정적으로 회사업무에 임하라는 말 때문인지, 부장 자신의 피부가 날마다 열정적으로 벌겋게 타올랐다.

“죄송합니다. 부장님.”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얼굴은 금세 뜨겁게 화끈거렸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바로 이런 거였다. 우리 부서 회식자리에 늦은 이유도 정말 참석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 핑계 저 핑계 다 생각해봤지만, 참석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오늘 실수도 있었으니까. 과장하고 통화하고 그냥 퇴근해버렸다면, 내일은 말할 수 없이 피곤할 것이다. 부장, 차장, 과장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해댈 것이다. 오늘의 찝찝함은 오늘 끝내자. 오늘의 찝찝함을 내일까지 연장하지 말자. 그렇게 마음먹고 식당으로 들어선 것이다. 내가 이 회식자리에 오지 않았다면 동료들은 좋아했을 텐데. 상대적으로 자신들이 점수 딸 기회라고 여길 테니까. 회식자리에서 점수를 따다니. 술 마시는 자리에서 실력을 인정받겠다니 한심하달 수밖에.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 회식자리에서의 태도도 인사고과에 반영된다고 직원들은 믿고 있었다. 나는 반신반의했다. 어쨌든 동료들은 호시탐탐 나를 모함하고 욕할 기회만 노리는 것 같았다.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왕따 신세가 된 거지?

“술 한 잔 받아.”

악어 입이 소리쳤다. 커다랗고 길쭉한 입을 쩌억, 벌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붉은 피부가 더 흉측하게 얼룩덜룩 변해가고 있었다. 술이 오른 것이다. 악어 입에게는 귀가 없어 남의 말을 듣지 못한다. 내가 입사했을 당시보다 입은 더 커졌다. 날마다 점점 더 커지고 있었는데, 이유는 말을 많이 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말만 줄곧 떠들어댔다.

나는 악어 입 앞으로 다가갔다. 테이블의 빈 소주잔을 집어 들고, 공손하게 소주를 받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부장님.”

술을 받는 내 손이 조금 떨렸다. 아까 ‘실수’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잘하다가 실수 한 번 하면 그것만 기억하는 게 상사들이었다. 상사만 그런가. 선배나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상사들은 입으로 떠들었고, 선배나 동료들은 눈으로 떠들었다. 괜찮아, 실수는 누구나 다 하는 거야, 라는 눈빛을 내쏘지만 그 눈빛이 너무 생기발랄했다. 지나치게 생기발랄한 눈빛이라서 진심을 다 드러내고야 말았다. 괜찮아. 실수 잘했어. 너라고 언제나 완벽한 건 아니야. 넌 그동안 너무 칭찬만 받아온 거야. 앞으로 계속 이렇게만 해.

악어 입이 술잔에 술을 따르자마자 나는 잔을 들고 물러나려고 했다.

“한잔 마셔. 이번 주에 업무가 폭주해서 고생 많았어.”

악어 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나는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알코올의 독한 기운이 숨을 턱 막았다.

옆자리에, 뱀처럼 혀가 두 갈래로 찢어진 차장이 나를 바라보았다. 두 눈동자는 여전히 제멋대로 휘휘 돌아가고 있었다. 가장 위협적인 상사였다.

“차장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내 말에 혀를 두 갈래로 길게 뽑아 날름거리고는 킬킬 웃었다. 두 갈래 혀는 개구리를 낚아채는 뱀의 혀처럼 언제 내 머리통을 낚아챌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부장이 했던 말을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직원들에게 반복했다. 지겹도록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혀가 두 갈래로 갈라지면서 점점 더 길어졌다. 더구나 시력이 나빠서 사물이나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처음부터 시력이 나쁘지는 않았다. 늘 삐딱하게 보고 늘 잘못 판단하니까 점차 시력을 잃은 것이다.

“오늘 고생했어.”

두 갈래 혀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눈동자가 각각 다른 방향으로 돌아갔다. 나는 고개를 정중하게 숙여 보였다. 어디선가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구미호두 갈래 혀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찰나도 놓치지 않고 나를 노려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구미호 쪽으로 일부러 시선을 주지 않았다.

악어 입이 크게 소리쳤다.

“자, 이제 우리 직원들 다 참석했으니까, 다 같이 파이팅 해야지?”

여기저기서 아 예, 예, 하면서 서로 옆자리와 앞자리의 소주잔을 채워주었다.

나는 어디에 앉을까, 주변을 살펴봐도 딱히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거대한 귀가 연신 나를 바라보며 두 귀를 펄럭였다. 자기 옆자리를 비워두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나는 거기로 가서 앉았다. 거대한 귀가 내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자아, 잔 다 채웠으면 높이 들고 외칩시다. 미래를 위하여!”

악어 입이 크게 외쳤다.

모두가 소주잔을 높이 치켜들고 똑같이 외쳤다.

“미래를 위하여!”

“원샷이야. 원샷해야 돼.”

여기저기서 소리들이 튀어나왔다. 내 귀에는 비명이나 절규처럼 들렸다. 여러 눈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오늘 실수도 있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빈속에 소주를 마셔버렸다. 속이 뜨끔하게 아려왔다. 불판 위의 삼겹살에는 손도 대기 싫었다. 콩나물무침을 집어먹고 천천히 씹었다.

거대한 귀가 내 얼굴에 커다란 귀를 바짝 들이댔다.

“민주 씨가 웬일이니? 소주를 정말로 원샷하고. 술 못 마시는 게 아니었구나. 이 원샷 제의가 벌써 다섯 번째야. 알잖아, 부장이 원샷을 열두어 번쯤 해야 자리가 마무리되는 거. 히히.”

술 냄새가 진동하는 거대한 귀는 항상 나를 챙겼다. 그런 점은 고맙게 생각한다. 그런데 달갑지 않게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 자에게는 몸통이 없다. 내가 입사했을 당시에만 해도 왜소하지만 몸집이 있었다. 날이 가면 갈수록 귀가 더 커져 펄럭거리더니 어느새 몸집이 사라져버렸다. 윗사람들의 말을 빈틈없이 다 듣고 그대로 행동에 옮기려고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였다.

배는 고프지만 뭘 먹어야 될지 모르겠다. 식탁 위의 어느 것도 내 뱃속으로 넣고 싶지가 않았다. 할머니가 끓여주는 따끈한 콩나물국밥이 생각났다.

거대한 귀가 한쪽 귀로 내 허벅지를 슬쩍 스쳤다.

“삼겹살 먹어봐. 이 집 생삼겹살 맛은 알아주잖아. 아까 다들 허겁지겁 엄청 먹어댔다구. 왜 이렇게 늦었어? 전화 한통하고 온다면서.”

펄럭거리는 귀 한쪽을 내 허벅지에 턱 올려놓았다. 뜨끈한 귀였다. 나는 손으로 귀를 슬쩍 밀쳐냈다. 귀가 어찌나 끈적거렸는지.

나는 자리를 둘러보았다. 여러 선배와 동기들도 다양한 괴물형상으로 우글대며 떠들고 먹고 마셔댔다. 그들 모두를 일일이 묘사할 수 있지만, 그만두겠다. 독자들도 여간 정신 사납지 않을 테니.

“자, 받아.”

내 손목을 누가 들어올렸다. 깜짝 놀라 시선을 돌렸다. 거대한 귀가 맥주잔을 나에게 내밀고 있었다.

“이게 뭔데, 또 받아요?”

“부장님이 돌리는 술잔이야. 어서 받아.”

언제부터 술잔이 돌고 있었던 거지? 그것도 폭탄주였다. 맥주잔 안에 소주잔이 들어 있고 기포가 연신 올라오고 있었다. 나한테는 이런 거 진짜 시한폭탄이다. 나는 거절하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모두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내 술잔과 나에게 시선을 쏘아대고 있었다.

“저, 저는…….”

내가 말을 더듬거리자, 거대한 귀가 뜨겁고 역겨운 냄새를 내 귀에 쏟아냈다.

“오늘은 그냥 받아. 오늘은 너무 팍팍하게 굴지 마.”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무척 난감했다.

“선배 말 들어. 오늘 부장이 돌리는 술잔은 눈 딱 감고 받아.”

거대한 귀가 다시 뜨겁고 역겨운 냄새를 내 귓속으로 불어넣었다.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술잔을 받아들었다. 거대한 귀가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 원샷해. 저기 미미 씨의 술잔이 또 오고 있잖아.”

거대한 귀가 크게 외쳤다.

주변을 둘러보니까 과장인 외눈박이가 헤벌쭉 웃으며 폭탄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외눈박이는 정말 술을 좋아했다. 술자리는 단 한 번도 마다하지 않고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참석했다. 나는 눈을 딱 감고 폭탄주를 들이켰다. 속에서 뜨거운 불이 화하고 붙어 올랐다. 구미호인 미미 씨도 폭탄주를 돌린다고?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도 뛴다고? 참, 한심한 여자다. 이런 회식자리가 좋다니. 굉장한 미인인 구미호는 회사에서의 태도가 아홉 가지였다. 직책에 따라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누구한테는 살랑거리고 누구한테는 질척거리게 달라붙고 누구한테는 쌀쌀맞게 대하고 누구한테는 경멸의 시선을 쏘아대고 누구한테는 말도 건네지 않고 누구는 아예 인간 취급도 하지 않고……. 요즘 두 갈래 혀와 육체와 정신이 서로 절친 관계라는 소문이 사내에 파다했다. 그들이 친하게 지내건 말건 상관없다. 구미호가 나한테만 신경을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매사에 나를 걸고넘어졌다. 이를테면 내가 자기의 라이벌인가 보다. 구미호는 대단한 술꾼이었다. 벌써 엄청 마셨을 텐데도 폭탄주 순서가 되면 희색이 만면하여 단숨에 들이켜고는 기괴한 교성을 질러댔다.

내 눈앞의 광경이 만화경처럼 핑핑 돌았다. 얼굴이 화끈거리며 달아오르고 온몸에 맥이 풀렸다. 빈속에 소주 두 잔에다 폭탄주까지 마셨다. 나는 정말로 술을 못 마신다. 아버지도 할머니도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회식 자리가 가장 싫다. 회식에 오면 재주껏 밥과 안주로 속을 채우고 눈치껏 술을 요리조리 피했다. 오늘은 그러질 못했다. 기분도 상한 상태고 긴장도 풀리지 않아 컨디션이 상당히 나빴다. 술이 급속도로 오르면서 온몸이 화끈거렸다. 추운 건지 더운 건지 알 수 없었고 주변 모든 게 불쾌했다.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하고 회식자리에서 이렇게 시달려야 하다니. 윗사람들은 말하겠지. 열심히 일했으니까 회식자리에서 풀어야지. 맛있는 술과 밥을 사준대도 싫다는 거야?

거대한 귀가 자꾸 내 대퇴부에 귀를 갖다대며 비벼댔다. 뜨겁게 달아오른 귀를 내칠 기운조차 없고, 무엇보다도 속이 쓰린 건지 울렁거리는 건지 잘 모르겠다. 눈앞의 식탁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뒤틀렸다. 회식자리의 모든 괴물들이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가 너무나 어지러워 테이블에서 떨어져서 벽에 몸과 머리를 기댔다. 잠깐 눈을 감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누군가가 나를 감싸 안고 있었다. 거대한 귀였다. 한쪽 귀로 나를 둘둘 감싸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혼자서 직립을 못할 정도였다.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속은 점점 더 답답하고 울렁 울렁거렸다.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터져나왔다. 온갖 컬러의 점박이 조명이 룸 전체에 날뛰고 있었다. 언제 노래방에 왔지?

구미호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홉 개의 꼬리를 격하게 흔들고 허리를 비틀며 춤까지 추었다. 악어 입의 벌어진 입에서 점액질이 질질 흘렀다. 피부가 붉게 타오르고, 침을 연신 꿀떡꿀떡 삼켜도 계속 질질 흐르는데, 송곳니 두 쌍은 어딘가로 감췄는지 보이지 않았다. 귀가 없어서 음악소리를 듣지 못할 텐데 구미호의 교태를 보고 반했나. 구미호는 새까만 눈동자를 촉촉하게 반짝이면서 악어 입을 착, 째려보았다. 순간 악어 입의 머리통에서 검디검은 뿔이 불쑥 솟아올랐다. 악어 입이 큰 입을 쩌억 벌려서 구미호의 허리를 덥석 물고 말았다. 구미호는 마이크를 내던지고 놀라는 척하면서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 광경을 모든 직원이 지켜보았지만, 아무도 뭐라고 제지하지 못했다. 차장인 두 갈래 혀가 박수를 쳐댔다. 그를 따라 모두들 악어 입구미호의 추태에 박수를 보냈다. 악어 입구미호는 서로 물고 빨아댔다.

영육의 커플인 구미호를 상사에게 빼앗긴 두 갈래 혀가 나한테 눈길을 쏘아댔다. 발 빠른, 아닌 행동이 빠른, 거대한 귀가 두 귀로 나를 둘둘 말아 안고 춤추기 시작했다. 끈적거리고 화끈한 두 귀에 감싸여 내 몸뚱이를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두 갈래 혀는 침울하게 소파에 앉아서 노래책을 뒤적거렸다.

악어 입구미호는 소파 한 구석에서 한 덩이가 되어 이리저리 뒹굴더니 진흙반죽이 되어버렸다. 하도 요동을 쳐서 주변에 진흙덩이가 툭툭 튀었다.

누군가가 테이블의 음료수 잔을 떨어뜨려 유리가 깨졌다. 빈 캔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고 서로 신음을 토하는 소리가 진동했다.

이곳은 너무 시끄럽고 너무 후텁지근하고 너무 끈적거렸다. 토할 것만 같았다. 나는 화장실에 가야 한다고 거대한 귀에게 말했다. 거대한 귀가 알아듣지 못했다. 너무 시끄러운 탓이었다. 내 정수리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속에서 뭔가가 막 치밀어 올랐다.

“제발 이거 풀어줘. 토할 것 같아.”

나는 안간힘을 다해서 소리쳤다. 그제야 거대한 귀가 알아듣고 풀어주었다. 나는 화장실로 나가려다가 바로 토하고 말았다. 속에서 올라오고 올라왔다. 나는 생각했다. 오늘 두 번째 실수구나. 사무실에서 한 번, 회식자리에서 또 한 번. 두 번이면 너무 많다. 나는 계속해서 속을 게워냈다. 다들 불쾌하겠지만, 내가 의도했던 건 아니다. 이거야말로 실수다. 실수에 가혹한 조직. 서로가 서로에게 괴물인 조직. 나는 또 생각했다. 나는 어떤 괴물일까? 내 머리엔 날카로운 뿔이 솟아 있고, 엉덩이에 뱀 꼬리가 붙어 있고, 온몸에 검은 털이 뒤덮인 괴물은 아닐까?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어렵게 들어온 직장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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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에서 실수한 날, 회식자리에서 토까지 해서 기분이 잡쳤지만, 그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 건 아니다. 내가 그 정도로 배짱이 허약한 사람은 아니다. 정상적인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고, 기괴한 진화와 퇴화를 거듭해가는 괴물들과 날마다 부대꼈다. 나도 괴물이 되어가는 게 아닌지 자기검열을 하다보니 업무에도 점차 흥미를 잃어갔다. 나는 어떤 괴물이 되고 싶어서, 순간순간의 치욕과 번민을 인내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점이 가장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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