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거대한 귀

17. 거대한 귀

by 파랑

편의점에 손님이 뜸해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는데, 낯선 번호가 뜬다. 나는 갸우뚱하면서 전화를 받는다.

“정민주 씨, 잘 지냈지?”

어리둥절해서 뜸을 뜰이다가 나는 깜짝 놀란다. 거대한 귀. 나의 전 직장, 미래컴퍼니의 권 선배다. 나를 잘 챙겨주던 사람이다. 몸통이 없는 사람. 내가 입사했을 당시에만 해도 왜소하지만 몸집이 있었다. 날이 갈수록 귀만 더 커지더니 어느 순간 몸이 사라져버렸다. 윗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그대로 행동에 옮기려고 이 악물고 노력한 결과였다.

회사 사람들의 겉모습은 인간 형상이었으나, 성격은 인간의 영역을 초월했다. 어떤 식으로든 휘어지고 뻗어나가고 굽혀질 수 있는, 나긋나긋한 정신력을 소유한 인간들과 한때 한 케이지 안에서 아득바득 살았다. 이천오백여 년 전, 『이솝우화』를 썼던 그리스의 이솝을 떠올리던 시절이었다.

“어머? 권 선배님. 어쩐 일이세요?”

“민주 씨 소식이 궁금해서 연락해봤지. 요즘 어디 다녀?”

“선배님은 미래에 계속 다니세요?”

여전히 거대한 귀를 펄럭거리며 살고 있나? 귀가 더 거대해졌는지, 귀는 줄어들고 입이 생겨났는지? 외부인은 전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축사에서, 흉측한 괴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어떤 괴물들과 살고 있을까? 궁금증이 살짝 스쳐지나간다.

“잘 다녔지. 지난주에 그만뒀어. 민주 씨한테 밥이라도 사려고 연락해야지, 해야지, 했는데…… 결국은 그만두고 나서야 시간을 내게 되네. 거참……, 회사 다니면 하루하루 정신없는 거 잘 알잖아. 그래서 이렇게 됐네.”

나는 아, 네, 라고 나지막하게 대답한다.

“밥 사줄게. 오랜 만에 얼굴이나 보자.”

회사 사람들에게 관심을 끊은 지가 오래되어서 굳이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냉정하게 거절할 구실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예전 전화번호로 연락 왔으면 받지 않았을 텐데. 거대한 귀가 그동안 전화번호를 바꾸었구나. 회사 사람들의 전화를 받지 않으려고 번호를 지우지 않고 그대로 저장해 두었는데. 나는 아르바이트가 바쁘다는 핑계를 앞세우면서, 그렇지만 잠깐 짬을 내겠다고 한다. 광화문의 교보문고에서 만나기로 한다.

IMG_17.JPG



이전 16화16. 할머니의 팬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