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품을 만들 때는 이름만 바꿔도 된다. 하지만 유사품을 만들 때는 신제품을 만들 때 이상으로 고민이 깊어진다. 유사한 효능을 내면서도 같은 상품이라는 비난은 피해야 한다. 요즘은 워낙 포맷의 차이가 크지 않다. 절반은 있는데서 가져오고 나머지만 다르게 만들어 내놓는 TV 프로그램이 많은 세상이다. 프로그램 수가 많으니 동시대를 사는 PD들의 아이디어가 겹치기 쉬워서일 수도 있다. 근본적으로는 방송사들의 수익률이 떨어지니 너무 위험 부담이 큰 모험을 기피하는 정서가 짙게 깔려있는 게 문제다. 의사결정이 복잡해져 실험정신이 고사되기 일쑤다. 한편으론 지금까지 적당한 느낌만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오던 관행도 반성해야 하지만 자기 목소리를 온전히 내기 어려운 건 분명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선 어찌되었건 ‘차별화’가 성패에 관건이 된다. 지난 번 이야기한 tvN<노래의탄생>(https://brunch.co.kr/@kimpd/7)은 여러 포맷과 겹쳐 보임에도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어낸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근래 tvN은 전에 보지 못한 특이한 프로그램도 불쑥불쑥 잘 내놓고 어디서 본 듯해도 자기 매력을 뽑아내는 프로그램도 잘 만든다.)
유사품을 만드는데 가장 정통(?)한 채널이라고 한다면 KBS 예능을 빼놓을 수 없다. <무한도전>에서 <1박2일>을, <나는가수다>에서 <불후의명곡>을, <아빠어디가>에서 <슈퍼맨이돌아왔다>를 만들어 원작만큼이나 때로는 원작 이상으로 천수를 누렸다. 이들 프로그램은 모두 당대 트렌드를 선도한 프로그램의 후발 주자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원작을 정확하게 이해함으로써 원작이 줄 수 없는 포인트를 잘 집어내어 자리매김에 성공했다. <1박2일>은 리얼리티 프로그램 초기 다양한 실험을 하는데 주력하는 <무한도전>과 달리 가장 안정적으로 장르적 재미를 줄 수 있는 여행이라는 영역에 집중했다. <불후의명곡>은 <나가수> 출연에 부담을 느끼는 A급 가수들에게 경연은 하되 자존심은 덜 상하는 포맷으로 <나가수>의 가장 큰 약점인 영속성을 높이는데 성공한다. <슈퍼맨이돌아왔다>는 동일 프로그램에 가깝지만 출연하는 아이들의 연령대를 차별화하고 최적화된 섭외에 주력함으로써 원작 이상의 탄탄한 기반을 만들어낸다. ‘이런 전략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자. 오히려 제 자리라도 제대로 지킬 수 있느냐가 먼저 생각해야 할 화두다.
5월 6일 첫 방송한 K2<어서옵SHOW>는 ‘각계각층 스타들의 재능을 판매하는 형식으로 이뤄지는 스타 재능 기부 홈쇼핑 프로그램’이다. 즉각적으로 연상되는 프로그램이 있다. 인터넷 사전 생방송 진행, 네티즌들의 실시간 반응 수용, 출연자들의 특장기 소개, 우승자 선발, 재편집하여 지상파 본방 송출하는 큰 틀이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비슷하다. <마리텔>은 가구 시청률은 높지 않아 종종 SBS<그것이알고싶다>에도 뒤지지만 젊은 시청층의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는, 광고 수익도 매우 높은 MBC의 효자 프로그램이다. 뉴미디어를 오남용하는 여타 프로그램과 달리 아프리카TV에서 이미 검증된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그대로 가지고 오면서 쌍방향성에 과도하게 집착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무한도전> ‘TV전쟁’에서 보여주었던 서바이벌 요소를 가미하여 극적 재미를 높였고, 더불어 다소 루즈해질 수 있는 인터넷 본방송에 예능적 편집을 십분 활용하여 몰입도를 높이는데 성공한다.(https://brunch.co.kr/@kimpd/6)
K2<어서옵SHOW>을 이해하려면 <마리텔>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를 짚어가는 게 손쉬울 것 같다. 즉각적으로 눈에 띄는 부분이 홈쇼핑인데 어차피 재능으로 우열을 가린다는 점에서 <마리텔>과 큰 차별점은 없다. 오히려 쇼호스트를 투입하여 재능이 있는 사람과 시청자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체를 두었다는 점이 큰 차이일 거다. 동시 방송이 아니라 편성에 따른 순차 방송도 포맷 상의 특이점이다. 거기에 홈쇼핑 본방송 외에 재능기부자들의 재능 검증을 하는 야외 녹화 분량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특징이 있다.(1,2부의 경우 절반이 야외 녹화물로 채워졌는데 3회부터는 홈쇼핑 비중이 높아졌다.)
이러한 포맷 변경으로 제작진은 어떤 질감의 차이를 만들고자 했을까? 쇼호스트 체제를 가동하면 1인 방송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혼자 채팅창 보고 이야기 하느니 둘이 있으면 토크를 하기 쉽다.(물론 <마리텔>이 혼자서만 방송하는 것은 아니다. 원론적으로 포맷이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둘째 편성에 따른 순차 방송은 늘어지는 생방송의 한계를 극복하여 조금 더 알차고 타이트하게 꾸밀 수가 있다. 홈쇼핑 원형에도 더 가깝다. 생방송 중에 가장 밀도 높고 흡인력 있는 게 홈쇼핑 아닐까? 살까 말까 마음 졸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말에 동의할 것 같다. 재능의 ‘기부’는 본질이 아니다. 사실 중요한 구심점이 되어야 할 부분이 장식으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출연자의 재능 그 자체는 제대로 보여주어야 한다. <어서옵SHOW> 제작진은 작고 북적이는 스튜디오를 나오면 조금 더 다양하게 그리고 충분히 재능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판단한 듯하다. 야외 분량을 강화한다면 인터넷 생방에만 의지해야 하는 <마리텔>과는 다른 질감을 얻을 수 있을 거다.
<어서옵SHOW>는 마치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처럼 기존 프로그램인 <마리텔>의 결함이나 약점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포맷을 재조합한 모양새다. 그럼 성공했을까?
우선 쇼호스트의 존재가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다. <마리텔>은 인터넷 강의나 토크쇼를 진행할 수 있는 수준의 능력을 지닌 사람이면 누구나 방송이 가능하다. 그래서 연예인부터 일반인까지 콘텐츠만 있으면 출연할 수 있다. 내용 면에서도 본인이 직접 자신의 재능을 가르쳐주는 모습(학습 과정)이 충실히 담길 수 있다. 반면 <어서옵SHOW>는 압축적으로 설득력 있게 ‘재품’을 홍보해야 하는 진행능력을 지닌 쇼호스트가 따로 필요하다. 이를 맡은 이서진, 노홍철, 김종국은 각자의 본래 캐릭터가 매력적일지는 몰라도 쇼호스트 본연의 역할을 적절하게 수행하지는 못 하고 있다. <마리텔>에서도 김구라는 능력자와 시청자 사이를 매개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같이 배워보며 이야기를 풀어가면 되는 수준이라 상품을 설득하는 전문성을 갖출 필요성은 없다. 하지만 <어서옵SHOW>는 포맷 상 진짜 홈쇼핑 쇼호스트가 필요하다. 문제는 그럴 능력을 지닌 연예인이 없다는 거다. 그래서 지금 MC 셋을 대체할 인물을 찾는 것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어서옵SHOW>처럼 쇼호스트가 타인(재능기부자)의 능력을 설명해주는 형식에선 스타 본인이 자신의 재능을 직접 어필하기도 어려운 구조가 되어, 결국 <마리텔>과 차별점인 홈쇼핑 쇼호스트의 존재가 전달력을 오히려 더 떨어뜨리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프로그램의 치명적인 결함이다. 본 내용의 힘이 떨어지니 자꾸 이야기가 주변부를 맴돈다. 돌발 상황이나 상황 설정이 부각되곤 한다.
팀들이 동시에 방송을 진행하지 않고 편성표에 따라 돌아가면서 방송하는 건 어떨까? 시간을 짧게 쪼개면 쇼호스트들과 재능 기부자들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쉽다. 짜잔~ 하고 나와 알차게 보여주고 다른 팀이 방송할 때 다음 순서를 준비할 수 있다. 송소희가 홈쇼핑 방송 중간에 가구 만드는 공간을 꾸밀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 역시 홈쇼핌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하지만 그만큼 분절된다. 재미없는 부분도 순서상 모두 드러낼 수 없다. 장단점이 명확한데 여기선 단점이 더 크게 부각된다. 역시 쇼호스트의 역량 부족 때문이다. 제한된 시간 내에서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 하기 때문에 호흡만 짧아진다. 전체를 봐도 기억에 남는 게 없다.
만약 <마리텔>처럼 개별 팀들이 동시에 90분씩 이어 방송하는 체제(90분 소요, 전체 180분 분량)는 어떨까?(지금은 20분씩 9번 돌아가는 식으로 시간과 분량 모두 180분인 체제) 그러면 그건 홈쇼핑이 아니다. 더 느슨해진다. 만담이 될테고 편집으로 살릴 수는 있지만 <마리텔>과의 기시감은 더 커진다. 그래서 원조 상품이 좋을수록 유사품의 설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쯤이면 반문하게 된다. 왜 재능기부를 홈쇼핑 형식으로 해야하는가?
재능 기부를 검증하는 부분을 살펴보자. 야외에서 다양한 검증을 한다는 것은 장점일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을 할 것인가는 의문이다. 안정환이 축구공으로 60미터 멀리 있는 풍선을 맞추는 것으로 축구 교습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얼마나 황당한가. 그 과정에서 이서진에게 킥 스킬을 가르쳐주기도 하지만 핵심이 아니니 겉돌고 만다. 또 송소희가 폭포 안에서 부른 노래 소리가 밖으로까지 들리는 것이 행사 만족도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처음부터 기부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생긴 악수(惡手)다. 어렵지만 재능 기부 능력에 초점을 맞췄어야 프로그램의 진정성이 생겼을텐데 재미를 뽑는 데만 경도되었다. 재능을 소개하는 구성도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나열식이다. 옛날 교양 프로그램을 보는 기분이 든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짚자면 홈쇼핑은 그 자체로선 쌍방향성이 크지 않다. 홈쇼핑이 등장하던 초창기에는 TV를 보고 전화 걸어 주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쌍방향적 특성으로 불렸지만 옛날이야기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으로 시청자와 소통하는 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댓글들이 평면적으로 제시되고 출연자들이 이에 반응하는 과정도 없다보니 쌍방향적 특성도 죽어버렸다.
<어서옵SHOW>는 호기롭게 <마리텔>의 아성에 도전했지만 <유토피아>처럼 내적 완결성을 결여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하나의 세계가 지닌 약점에 대응하는 개선책을 모으는 것만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 수는 없다. 새로운 세계도 스스로의 완전함을 입증해야 한다. 그건 유사품에게도 적용되는 문제다. <어서옵SHOW>가 워낙 초반이라 개선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과연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