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의 주어진 삶에서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가? 사람이 수용할 수 있는 변화의 정도는 의외로 크지 않을지 모른다. 새 학년으로 올라가면 바뀐 친구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게 스트레스다. 부모님을 따라 이사 간 새 동네는 익숙해지기 힘들다. 오래 동안 사귀었던 연인과 헤어지면 상실감에 밤을 지새운다. 혼자가 되는 과정은 더디다. 또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는 조건에서 떠난 유학 생활에서도 향수병으로 몸부림친다. 사회생활의 시작은 고되다. 내가 2~30년 넘게 살았던 공간이 상상 이상으로 살벌한 곳이었다는 걸 금새 깨닫지만 마음은 여전히 어리숙하다. 나이가 들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부담이고 무엇을 시작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우리는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산다. 설령 변화가 더 좋은 것을 가져다 줄 거라 해도 우리는 선뜻 그 길을 택하지 못 할 때가 많다.
한 인간이 왕으로 태어나 평민이 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드라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마지막 황제>는 거센 변화의 시대에 가장 큰 낙폭으로 떨어진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내가 그 사람이라면 나는 얼마나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더 잘 살 수 있었을까? 영화는 사람은 누구나 시대정신을 구현해야 한다고 쉽게들 말하지만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하기 위해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푸이는 서태후에 의해 4살에 자금성에 들어와 청의 14대 황제가 된다. 영화의 초반은 하루 만에 왕이 된 어린 아이의 변신을 다급하고 분주하게 담아낸다. 왕이라는 지위도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지만 한번 입으면 벗기 어려운 게 환경이라는 것을 넌지시 말해준다. 궁의 생활은 화려했고 푸이는 총명하고 유쾌했다. 어쩌면 좋은 황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912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는 멸망하고 중국의 주인은 만주족에서 한족으로 바뀐다. 푸이가 10살도 되기 전에 일이다.
자금성의 성벽을 넘는 순간 권력은 사라진다는 걸 알게 된 푸이는 권력의 불균형에 분노한다. 아직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모든 것이 정해진 것이 화나고 원통하다. 하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자금성을 개혁하려 했고 서양 문물을 적극 받아들여 머리를 자르고 안경을 쓰고 테니스를 배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뜻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환관들의 저항으로 내부 개혁은 물거품이 되고 새로운 세상을 열망했지만 새로운 세계는 그를 원하지 않았다.
결국 군벌이 자금성에 진입한 후 푸이는 궁에서 쫓겨나서 그를 유일하게 환영해주는 일본에 의탁한다. 1932년 일본은 만주를 점령하여 만주국을 세우는데 푸이에게 왕이 될 것을 권한다. 푸이는 중국 민족의 단결보다는 스스로 왕이 되는 재기(再起)의 길을 선택한다. 자신을 버린 한족에게 애정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나름 진정한 왕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일본의 허수아비 왕노릇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 자금성의 높은 벽처럼 그에게는 넘을 수 없는 수많은 벽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푸이는 1945년 일본이 패전함에 따라 중국으로 압송되어 전범이 된다. 다시 감옥의 높은 담장 안에 갇힌 그는 그곳에서 누구라도 그였다면 택할 수밖에 없었을 선택들에 대해 고백하고 반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그리고 1960년 그는 마오쩌둥의 특별사면을 받아 세상에 다시 나오고 정원사로 일하다 1967년 사망한다.
관광객에 섞여 들어가 자신이 살았던 자금성을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은 한 인간이 평생에 걸쳐 변화한 간극을 한 번에 느끼게 해준다. 푸이는 젊고 총명했지만 구체제의 상징이었고 자신의 신발 끈을 다른 사람이 묶어 주어야 할 만큼 한심했다. 새로운 세상을 적극 받아들이려 했지만 여러 부인을 둔 전근대적인 관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중국 황제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노력했지만 평생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는 그의 모든 것을 평생 부정하고 벗어나야 했다.
중국사 관점에서 보면 그는 친일 전범자였고 봉건 왕조의 잔재였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역사적 평가에 앞서 과연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가 묻는다. 그리고 각자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출 만큼 준비되어있는가 묻는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거센 물결이 아니어도 작은 파도에도 휩쓸릴 나약한 인간일지 모른다. 관념적으로 용감하기에 앞서 사람이 그런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좋은 교훈이다.
근래 개봉한 허진호 감독의 <덕혜옹주>는 조선의 마지막 옹주인 이덕혜의 일생을 담고 있다. 덕혜옹주는 일본에 간 뒤 조선의 독립과 귀향을 위해 애쓰지만 일본의 억압 앞에서 무너져 병들었다 말년에 어렵게 귀국한다.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데 탁월한 감독의 연출이 영화적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손예진의 열연도 높이 평가할만하다. 김을한(박해일)이 정신병원을 찾아가 한국으로 돌아가게 해주겠다고 하자 혹시나 누가 방해할까봐 주변을 살피는 이덕혜의 예민하고 절박한 눈빛은 그녀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런데 이 영화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많다. 이덕혜가 항일 운동을 하지 않았으며 일본에 잡힌 왕족들 역시 일제의 유혹에 넘어가 안일하게 살았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일제 시대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아 광복 후 어떤 자리도 얻지 못 한 왕족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전근대적이며 반민족적인 행위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 이 땅에서 친일을 하고도 훈장을 받고 과거를 세탁하여 명예롭게 사는 사람들이 많으니 이런 꼴을 보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려는 사람이 많았던 건 이 영화가 관객들의 욕망에 호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조선 왕실과 사대부의 무능을 부각할수록 일제에게는 면죄부가 주어지는 모양새가 된다. 무지한 백성 중에는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면 왕이 누구냐가 무슨 상관이냐 생각했을 수도 있다. 탐관오리의 이름이 조선의 것이건 일본의 것이건 악랄한 게 마찬가지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었을지 모른다. 그런 말이 이어지면 조선에 철도가 놓이고 비행기가 뜨니 일본에 감사할 일이라는 논리까지 나아간다. 그게 불편하면 조선의 왕실이 피해자로 여겨지는 것이 속 편하다.
그래도 제 나라 백성인데 남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일제는 입으론 내선일체를 말했지만 착취는 교묘했고 탄압은 거셌다. 하루아침에 몰락한 왕족이 되는 건 딱한 일이다. 기세등등했던 사람도 쇠락하면 안쓰러운 법이다. 팔이 안으로 굽으니 저 일본놈보다는 그래도 자기 백성을 조금이라도 위했던 조선의 왕이 그리울 수 있다. 그런데 그러자니 나라를 이 꼴로 만든 지배층에 면죄부를 준다. 제 잘못으로 백성들은 강제 노역으로, 종군위안부로 참담한 삶을 살아야 했는데 일제의 도움으로 안락하게 살아남은 왕조를 용서하긴 쉽지 않다. 이 이분법을 해결하기 위해선 우리 왕족이 나름 노력을 했다는 논리가 생기면 마음이 개운해진다. 그런 판타지는 달콤하고 한편으로는 적의를 분명히 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영화는 매력적인 게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참담하다. 영화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신파 외에는 거의 없다. 그저 민족주의적 도취만 남을 뿐 어떤 성찰도 기대할 수 없다. 역사란 복잡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는 해답이 올바를 수 없다. <마지막황제>처럼 덕혜옹주를 원래 자리에 두었다면 우리는 적어도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통감했을지 모른다. 어려움 속에서도 작은 처신 하나하나가 적절하지 않으면 마땅히 돌려받을 거라 생각하는 자신의 자리도 찾기 어렵다는 비정함을 이해했을 수 있다.
<덕혜옹주>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불쾌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민족주의적 강박이 이 영화의 성공을 추동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사실이 왜곡되어 엉뚱한 사람이 영웅이 되는 것을 원치 않지만 한편으로는 은폐하거나 위장해서라도 민족적 자긍심을 찾고 싶은 관객들의 욕심이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낳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덕혜옹주>의 성공은 현재 우리가 지닌 역사 인식의 수준을 말해주는 좋은 역사적 사료가 될 것 같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