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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PD Sep 23. 2016

어디 간첩 좀 없소? 간첩 좀 구해 주이소...

영화<자백> 리뷰

영화<변호인>에서 차동영(곽도원) 경감은 비가 주적주적 내리는 날 공안검사인 강영철(조민기)과 간첩조작사건을 진행하기 위해 만난다. 그는 고등계 형사6.25 때 학살을 당한 부친이 살았을 적 했던 말을 전한다.     

“고등계 형사가 범인 잡겠다고 뛰어다니면 나라는 망하는 거다. 고등계 형사는 범인을 잡는 자리가 아니라 범인을 예방하는 자린겨...”    


범법자가 늘어나는 걸 ‘예방’하기 위해선 공포가 필요하다. 잘못을 했을 땐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사람들이 일을 꾸밀 엄두도 못 내게 된다. 그 예방이라는 명목으로 강권적 통치를 합리화한다. 그런데 문제는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꾸준히 나와 줘야 하는데 ‘수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그러면 범인을 만들어서라도 본보기를 보여줘야 한다. 결국 그게 고등계 형사의 일이다. 그러면 멀쩡한 사람을 범인으로 모는 일이 벌어지고 그 평범한 사람은 계도를 해야 하는 시민들 속에서 구해야 한다. 시민들은 생사람이 잡혀가는 것을 보며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오해를 살만한 일은 절대 만들지 말자...’ 예방 효과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국민을 위협하는 일들, 민주국가를 지키기 위해 인권을 유린하는, 국가 폭력의 악순환 구조는 이렇게 만들어지고 점점 통제가 불능한 괴물로 커간다. 괴물은 점점 대담해져 정적을 살해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불쾌하다는 이유만으로도 손쉽게 쓰이기 시작한다. 한계점을 넘긴 어느 순간이 되면 제 살을 뜯어 먹기 시작하여 결국 자멸한다. 권위주의 정권은 그렇게 종말을 고했었다.

영화<자백>은 한 동안 대가 끊겼던 간첩 조작 사건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고발하고 있다. 조선족 유가려는 한국에 미리 들어와 사는 오빠 유우성과 함께 지내기 위해 입국한다. 그녀는 탈북자 지원 혜택을 받기 위해 조선족이 아닌 탈북자라 신고하는데 그 거짓말의 대가는 참으로 가혹했다. 탈북자 합동조사 센터에 끌려간 그녀는 6개월간 감금, 폭행을 당하면서 오빠가 간첩이고 북한 보위부와 접선하여 탈북자 명단을 넘겼다는 것을 허위 진술하라는 국정원의 압박을 받는다. 그러면 오빠에게도 좋고 말을 잘 들으면 오빠와 함께 살게 해주겠다는 회유도 받는다. 그녀는 오랜 감금 생활과 폭력에 지쳐 재판장에 나와 허위 자백을 하고 오빠는 그녀의 희망과 달리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다.     

유우성은 법정에서 유가려에게 사실을 말할 것을 처절하게 부르짖는다. 유가려는 사태를 파악하고 민변의 도움을 받아 거짓 진술을 했다는 것을 사실대로 말하기 시작한다. 쓸모가 없어진 유가려는 다시 중국으로 추방된다. 국정원은 유우성을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조작도 서슴지 않는다. 중국에서 찍은 핸드폰 사진을 북한에 입국하여 찍었다고 주장하며 같은 날 중국에서 찍은 게 확실한 사진들은 숨긴다. 나아가 북한-중국 간 출입국 기록을 위조하여 재판에 제출했다 허위로 밝혀져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이렇게 유우성을 잡아넣으려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래서 영화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전직 국정원 요원들은 유우성을 시청 직원으로 채용한 박원순 시장을 겨냥했다는 증언을 쏟아냈다.(시사인 기사 참조)

유우성은 대법원까지 가서 무죄 판결을 받는다. 영화<자백>은 이 긴 과정을 함께 하며 집요하게 간첩 조작 시도를 무력화시킨다. 그래서 영화는 이 사건의 관찰자이자 동시에 참여자이기도 하다. 탐사저널리즘의 특성상 영상은 거칠 수밖에 없다. 신원을 노출할 수 없어서, 또 취재를 허락하지 않은 시점부터 영상을 담아야하기 때문에 정식으로 촬영한 부분은 적을 수밖에 없고 추적 씬과 거친 몸싸움으로 영상은 어지럽다. 사운드 역시 현장소음과 불가피한 음소거 등으로 자막에 의존해야 할 때도 있다. 사실 영화이기 때문에 TV시사 프로그램의 거친 그림들이 어느 정도 세련되게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접어야 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건의 핵심에 접근하려는 집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집념으로 인해 영화 중간 중간 떠오르는 반론의 가능성들이 제거되면서 거친 영상과 대조적으로 매끈한 논리적 완결성을 뽐내고 있다. 집념을 관념이 아니라 실체로 관객 앞에 드러내고 있는 모양새다.   

 북한이 아닌 중국 노래방에서 찍었다는 사진을 확인하기 위해 중국에 가서 해당 노래방을 찾은 뒤 동일한 방이 있음을 입증하는 순간이나, 국정원이 제출한 유우성의 북한 출입 기록이 허위임을 입증하기 위해 중국의 관련 부서들을 찾아가 수차례 확인하는 과정을 보다 보면 개운한 기분까지 든다. 발품을 대단히 많이 팔지 않으면 얻기 힘든 통쾌함이다. 최승호 PD가 지닌 베테랑 저널리스트의 면모도 흡인력을 주기 충분하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우연히 공항에서 만나 인터뷰하는 장면이 백미다. 최승호 PD는 종이 한 장 차이인 무례함과 근성 사이에서 훌륭하게 줄다리기에 성공한다. 발언을 이끌어내기 위해 웃으면서 몸을 낮추지만 질문은 분명히 놓아야할 자리에 놓고 있다. 흥분하지 않으면서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된다.      

유우성의 대법원 무죄 판결까지 가면 건너편 사람들의 마지막 반론이 머릿속에 남는다. 괴물과 싸우려면 스스로도 괴물이 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북한이라는 전대미문의 악성 국가와 대결을 하기 위해선 희생도 필요한 게 아닌가? 라는 질문 말이다. 영화<자백>은 그 마지막 몸부림도 제압하기 위해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우선 제작진은 최근 40여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과거 안기부 재직 시절 이끌었던)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들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들이 몸으로 말하고 있는 고문의 후유증을 통해 과연 그 희생이 한 사람에게 부과되어도 될 만한 것인가 되묻는다. 그리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김기춘 실장의 모습과 대조를 이루면서 상대의 정당성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과거사 진상규명과 재판을 통해 무죄로 입증된 수많은 간첩조작 사건의 리스트를 숨 막힐 정도로 끊임없이 올림으로서 사건들이 우발적으로 또 충동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조직화된 국가 범죄라는 것을 강변하고 있다.   

간첩을 조작하는 사람들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그들은 간첩일지 아니면 순수한 탈북자일지 구별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에서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확실하지 않아 간첩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풀어줘야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 일을 저지른 게 아니다. 적어도 그렇다면 지나친 직업의식의 부작용으로서 일말의 연민은 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사건들은 너무나 명백하게 허위임을 인지한 상태에서 벌인 짓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너그럽긴 어려울 듯싶다.     

영화<변호인>에서 차동영은 고문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라고 한다. 진우(임시완)가 ‘얘기를 잘 꾸미면 안 때릴거죠?“라고 묻자 꾸민 게 아니라 정말 있었던 일을 말하라며 고문의 강도를 높인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그 일을 저질렀을까? 그게 자백이라는 내적 완결성을 취하는 절차였기 때문에 그랬을까? 아니다. 그는 누명을 쓴 사람이 진실로 그 범법 행위를 저질렀다는 착각이 들만큼 스스로도 속이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조작이 재판 과정에서도 드러나지 않고 진행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진우가 빨갱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영화<자백>을 보고 나오니 차동영이 영화 초반에 한 말이 다시 떠오른다.     


“얘네들 다 빨갱이면 대한민국 이미 다 망했습니다!!!”    


말하자면 국정원의 간첩조작사건은 과실치사가 아닌 살인이며 우발적 범행이 아닌 계획범죄다. 이건 정치적 해석의 문제가 아니다. 죄에는 합당한 벌이 남았을 뿐이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146534&mid=3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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