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부터 [신서유기]까지

나영석PD의 에볼루셔너리 로드(Evolutionary Road)

by 김PD

오늘은 나영석PD가 만든 프로그램의 진화 과정을 한번 쫓아가보고자 한다. 요즈음 방송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인만큼 흥미로우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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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박2일>이 처음 나왔을 때 앞서 등장한 MBC<무한도전>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류라는 딱지를 붙이고 출발해야 했다. 사실 돌아보면 억울했을 수도 있다. 비슷하다는 규정은 상당히 주관적이고 결과론적인 측면이 있다. 만드는 순간에는 장르가 더 분화되고 포맷이 세분화될지, 아니면 거기서 멈출지 알지 못 한다. 2000년대부터 예능은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다. <무한도전>을 조상님으로 시작해 <1박2일>이, SBS<패밀리가떴다>가 나왔다. 이후로 MBC<우리결혼했어요>, SBS<런닝맨> 등이 화제를 모았다. 지금은 서바이벌과 결합하기도 하고 관찰 예능으로 진화하기도 했다. 소재도 다양해서 Mnet<언프리티랩스타>에서부터 SBS<자기야 백년손님>까지 리얼리티 요소가 없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그런 면에서 <1박2일>은 거대한 금광을 찾은 두 번째 정복자였을 뿐이다. MBC가 김태호 PD에게 조금만 늦게 기회를 주었어도 아마 나영석 PD의 위상은 더 높았을 수도 있다.(반면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KBS<슈퍼맨이돌아왔다>가 MBC<아빠어디가>의 아류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긴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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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최고 히트작과 비교되는 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실 방송계에서 도는 흔한 얘기 중에 ‘가장 쓸 데 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과 무도 걱정이다.’라는 말이 있다. 기획안을 낼 때 ‘<무한도전>의 ~편처럼 만들고 싶다’는 말은 금지어다. ‘그건 <무한도전>이니까 가능한 거지.’라는 대답 밖에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은 국내 보기 드믄 장수 프로그램이자 최고의 킬러 콘텐츠다. 단순히 재미있는 게 아니라 매주가 <파일럿>이라 PD들이 봐도 숨이 막힌다. 저게 가능하려면 PD의 생각은 얼마나 앞을 내다봐야 하며 제작진은 얼마나 정교하게 꾸려져야 할까? 내부 구성원들은 수많은 고비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저력을 보이고 있다. <무한도전>으로 인해 MBC 예능도 강해질 수밖에 없다. 전에 MBC 드라마PD는 ‘예전에는 PD가 <전원일기>로 입봉했다. 처음 시작을 김혜자, 고두심과 함께 했다. 연출력이 빨리 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일단 서당이 지어지면 주변의 개는 모두 서당개가 되는 법이다.


이와 비교해 <1박2일>은 ‘그저’ 아주 재미있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매회 바뀌는 것은 여행지 뿐이다. 같은 멤버들로 이야기를 쌓기만 하면 되니 <무한도전>의 위력과 견줄 수는 없다. 그래서 나영석 PD도 항상 <무한도전> 앞에서는 겸손을 보였다. 업계에서도 굳이 두 PD를 1:1로 비교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영석 PD가 tvN으로 옮기고 여러 프로그램을 성공시키면서 위상이 점점 올라갔고 최근 <신서유기>가 등장하면서 (아직도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많지만) 두 PD 동급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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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 PD가 KBS를 떠난 공식적인 이유는 ‘살인적으로 이어지는 레귤러 방송 제작이 에너지를 고갈시켰다’로 알려져 있다. 지상파 방송은 멈추면 돈줄도 멈춘다. 힘을 모아 다시 만든다고 새로 만든 프로그램에 광고를 더 비싸게 붙일 수가 없다. 흘러간 시간은 그저 흘러갔을 뿐이다. 방송을 못 하면 그 순간 광고도 끝이다. 그러니 지상파는 항상 ‘길게~ 길게~’를 주문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롯데 자이언츠 최동원 선수나 염종석 선수처럼 팔이 빠질 때가 던지다 PD 생명을 단축해야 한다는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주변 스태프의 고된 생활도 외면하기 어렵다.


그래서 tvN으로 이적한 나영석 PD의 첫 번째 카드는 ‘시즌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었다. 할아버지들의 해외여행이라는 독특한 콘셉트가 먼저 눈에 들어오겠지만 이 프로그램의 성공 포인트는 시즌제에 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출연자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다. 보통 프로그램은 고정 출연자(멤버)를 두고 이들에게 다양한 경험 거리를 제공한다. 캐릭터가 형성되고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면서 드라마와 같은 내러티브가 만들어진다. 일반적으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매주 한번 촬영이 진행되며, 따라서 출연자는 이를 고려해 주 단위의 예능 시계를 수용해야 한다. 그래서 잘 나가는 연예인들은 주 단위로 반복되는 촬영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패턴을 받아들일 수 없는 출연자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배우들이다. 드라마건 영화건 한 작품에 들어가면 나름 ‘올인’을 해야 하는 배우들에게 주 단위 스케줄은 부담스럽다. 당연히 이미지를 생각해 예능에 출연하고 싶지 않은 배우들도 있다. 결국 이들을 포함해 배우는 예능에 잘 안 나온다는 등식이 성립되었다. 그런데 시즌제가 되면 성격이 달라진다. 단기간 출연으로 한 시즌 방송 분량을 뽑아내면 그 다음은 배우로서 본업에 충실할 수 있다. 나영석 PD는 단지 시즌제를 선택함으로써 새로운 출연진을 대거 섭외할 수 있게 된다. 이순재부터 이서진, 차승원, 유해진, 최지우, 박신혜로 이어지는 화려한 배우 라인업은 기존과는 다른 질감을 선사한다. 그들이 TV에 안 나왔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관심은 높을 수밖에 없다. 케이블이 시즌제를 선택하는데 더 유리한 환경이기도 하다. 광고 단가가 탄력적인 비지상파 시장에서 잘 나가는 시즌제는 레귤러 이상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짧은 방송 회차 동안 광고 단가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비교해볼만한 게 있다. 관찰 예능이다. 기존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보통 주 단위로 돌기 때문에 길어야 1박2일 찍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적 제약으로 조금 더 리얼하고 깊이 있는 스토리가 나오기 어려웠다. 그래서 주로 명확한 미션을 제공하면서 그 수행 과정을 통해 캐릭터 플레이를 유도했다. 관찰 예능은 촬영 기간을 더 늘리면서 조금 더 심도 있는 이야기를 꾸려 나간다. MBC<진짜사나이>가 대표적인데 멤버들이 약 10일 간 군대에서 실제 훈련을 받는다. 굳이 미션을 인위적으로 줄 필요 없이 다양한 상황이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것을 주워 담는다. 이런 구조가 가능하려면 연예인이 한번 촬영을 위해 10일 가량 스케줄을 빼야 한다. 그래서 A급 연예인들은 참여하기가 어려워졌다. 대신 프로그램에 더 헌신할 수 있는, 조금 더 ‘여유 있는’ 출연자가 대거 등장한다. 그들은 인지도가 낮고 인기는 떨어져도 자연스러운 생활을 통해 재미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완급을 조절하고 재미를 확실하게 만들어내는 A급 연예인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왜 지상파는 비슷한 시즌제를 만드는데 나영석PD처럼 A급 배우들을 섭외하는 방향으로 가지 못 했을까? 그 이유는 발상의 전환에 있어 나영석PD가 더 도전적인 답을 찾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편 구조적으로 보면 지상파 PD들은 시즌제를 하더라도 같은 멤버가 반복해서 롱 텀 촬영에 투입되는 것을 선호했으리라 본다. 시즌이 길어야 7~8부작이라면 지상파 입장에선 짧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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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 PD는 짧은 기간을 집중적해서 활용하기 위해 지금까지 가보지 못한 해외로 떠난다. 그리고 <꽃보다> 시리즈는 기존 여행 프로그램의 틀을 완전히 깨버린다. 방송사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그리고 해외여행이 흔해지면서 외국 여행을 담는 것은 한 동안 장사가 안 되었다. KBS<걸어서 세계속으로>처럼 확실한 교양 프로그램 몇 개를 남기고 TV에서 해외여행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A급 배우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면 어떨까? 이야기가 달라진다. 거기에 충분한 물량을 투입해서 국내에서 <1박2일> 찍던 방식을 해외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소규모로 영세하게 찍던 기존 프로그램과 차별점이 분명해진다. 그리고 여행이라는 코드 활용은 나영석 PD의 주특기 아닌가. 그렇게 <꽃보다> 시리즈는 금요일 밤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첫 시즌이 <꽃보다 할배>였다는 것은 묘수였다. 아무리 배우라고 해도 자신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여행을 촬영팀과 가고 싶을까? 망설일 수 있다. 그런데 전국민이 너무 잘 아는 노년의 베테랑 배우들이 모여 여행을 갔다. 근엄한 어른에서 각자 개성 가진 친근한 할배로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배우들도 이 프로그램을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마법 같은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후 <꽃보다 누나>가 등장했고 <꽃보다 청춘>으로 이어진다.


나영석 PD가 단순한 디렉터가 아닌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발휘한 것은 시즌제를 여럿 제작하면서 방송 슬롯 하나를 레귤러처럼 보이게 만들면서다. 시즌제를 선택하는데 가장 큰 두려움은 방송이 멈추면 시청자들에게 잊힌다는 점이다. 그는 <꽃보다 할배>를 시작으로 시즌제와 동시에 스핀 오프 버전을 여럿 만들어 <꽃보다> 시리즈가 중단되지 않게 운영했다. 기존 시리즈의 장점은 살리면서 새로운 버전을 만들어 유사하면서도 다른 질감을 가진 프로그램을 ‘대량’ 생산해낸 것이다. 내부 사정을 정확히 알지는 못 하지만 제작진이 시리즈마다 나뉠 수 있어 업무 로드도 조절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름 자신의 사단을 만들어 관리해온 덕에 이런 방법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정규물을 채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1년에 50회 이상을 만들어야 한다. 어느 정도 지나면 <꽃보다> 시리즈도 강행군을 할 수밖에 없다. 이때 만들어진 게 <삼시세끼> 시리즈다. 비교적 쿡방 초기에 만들어진 이 프로그램은 여행과 요리의 조화를 통해 국내 여행에 새로운 질감을 선사한다.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먹는 음식’은 비교적 단순한 콘셉트임에도 시청자들의 마음에 파고들었다. 지금이야 쿡방이 대세지만 그 당시만 해도 직접 음식을 만드는 걸 지켜볼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냐는 의견도 많았다. 그러나 슬로우 템포로 반복되는 요리 과정은 사람들에게 숨 쉴 구멍을 주고 힐링을 준다.

이서진과 차승원의 인간적 매력도 프로그램의 흡인력을 높인다. 멀게만 느껴진 특급 배우들의 진솔한 모습은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사실 엄밀히 말해 이 프로그램들은 진정한 ‘귀농’ ‘귀촌’ 프로그램은 아니다. 이곳에는 일상의 고단함이 요리 외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씨를 뿌리면 야채는 알아서 크고 닭, 염소, 강아지에게 매일 밥을 꼬박꼬박 주지 않아도, 한 동안 떠나있다 돌아와도 잘 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삼시세끼>는 일상의 고단함과 귀촌의 판타지를 적절하게 배합하고 있다.



<꽃보다>가 거의 막을 내렸고 <삼시세끼> 어촌편 시즌2가 끝나면 이 프로그램도 내리막일 거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럼 그 다음은 무엇일까? 그는 인터넷 방송이라는 특별한 선택을 한다. <신서유기>는 네이버TV 캐스트에서 방송을 시작했다. 어떤 새로움을 줄 수 있을까? 첫 번째는 심의로부터의 자유다. 심의를 받지 않으면 첫째 ‘위험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둘째 ‘돈 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사실 그런 점은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문제는 인터넷 플랫폼으로는 사람들을 TV처럼 모으기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그런데 최근 인터넷의 짧은 클립을 모아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네이버, 다음에 이를 구현할 플랫폼이 마련되었고 클립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콘텐츠 이용에 주된 스크린이 TV, PC에서 모바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출퇴근길에, 자기 전에 누워서 콘텐츠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긴 영상이 아닌 짧은 호흡의 콘텐츠 수요가 늘어났다. 웹 드라마의 탄생도 이런 맥락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영석 PD는 이 시장이 고비용 고수익이 가능해졌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강호동 같은 연예인의 투입으로도 수익을 낼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 결과 <신서유기>는 현재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캐릭터 구성이 ‘죄인’들의 방송 복귀로 짜인 것도 백미다. 인터넷 방송의 관용성이 지상파에서는 선택할 수 없는 ‘새로운’ 섭외를 가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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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보면 나영석 PD의 가장 큰 경쟁력은 시장이 달라지면서 가능해진 것이 무엇인지를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하는 능력에 있지 않나 싶다.


최초 작성일 2015년 9월 24일 (blog.naver.com/shinwan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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