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콘텐츠52> 2회
지금까지 교양 프로그램이 각광받는 시대는 아니었다. PD들의 역량 문제도 있었겠지만, 외부 요인 탓도 컸고 다소 무거운 장르적 특징이 환영받지 못한 분위기 때문도 있었다. 그나마 정권이 바뀌고 할 말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오니 교양 장르도 이제 회복세를 보일 거다. PD들이 분발할 때가 왔다.
교양이 어려운 시절에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만이 자리를 제대로 지켰다. <그것이알고싶다>부터 <궁금한이야기Y>, <순간포착세상에이런일이>, <동물농장>까지 화려한 라인업을 가지고 있다. 불리한 지상파 규제 속에서 교양이 속된 말로 ‘장사가 되는’ 프로그램을 만든 게 대단하다. 특유의 ‘약 빤’ 스토리텔링 능력이 이룬 성과다. 방송 암흑기에 한 SBS 교양PD를 만났다. 요즘 어떠냐 물으니 그는 ‘저희야 뭐 돈도 버는 교양인데요.’라 대답했다. 공공성을 담보하면서 회사 내 탄탄한 입지를 가졌다는 점에서 자긍심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보게 한다는 건 큰 미덕임에 틀림없다. 결코 쉽지 않은 역량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약점도 있다. 바로 저널리즘 측면에서 이렇다 할 성취가 별로 없었다는 것.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서 제보가 JTBC<뉴스룸>과 SBS<그알>에 몰렸다. 그런데 <뉴스룸>이 굵직한 특종을 터트리는 사이에 <그알>은 시청률 대박 행진을 이어는 갔지만 이렇다 할 특종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그저 세상에 나온 얘기를 재미있게 풀어가는 입담꾼의 한계를 더 노골적으로 보여준 시간이었다. 그간의 성취가 위험한 탐사저널리즘에 손대지 않아서 얻은 호황이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도 같았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는 일종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파일럿 1-2회는 탐사저널리즘부터 토크쇼, 예능적 코드가 많은 인터뷰까지 시사 프로그램이 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장르를 망라하며 의욕을 보였다. 특히 탐사저널리즘 코너에 공을 많이 들였다. 한 마디로 ‘우리도 이런 것 할 수 있다’는 선언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그 내용이 대체로 외부인의 조력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박근혜 5촌 살인 사건에 대해 주진우 기자가 집요하게 추적하는 과정에서 말석에 앉아 구경한 사람이 숟가락을 얹은 수준이었다.
역시 금주에 시작한 첫 정규방송에서 탐사저널리즘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 코너를 위해선 화력을 유지할 취재 능력이 내부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정규 때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걷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런 다음에 보니 이렇다 할 게 없다. 남은 건 오직 김어준 뿐이다. 이 프로그램은 김어준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시사쇼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코너가 기시감을 준다. <나는꼼수다>부터 <파파이스>, <뉴스공장>까지 지금까지 그가 했던 여러 프로그램에서 봤던 콘셉트들이다.
물론 김어준의 포퍼먼스는 압도적이다. 그의 섭외력과 흡인력 있는 화법, 맥을 짚는 능력들을 시청하는 즐거움이 크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아침마다 <뉴스공장>을 듣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 부족한 건 <썰전>의 유시민 작가를 통해 메우면 될 거라는 기대.
김어준까지 빼면 남는 건 강유미다. 그의 캐스팅과 활용이 돋보인다. 하지만 이것으로 사람을 모으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프로그램의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진행자를 포함해 섭외에 성공한 것 말고 SBS 시사교양이 이뤄낸 성취가 많지 않아 보여 아쉽다. 역시 앞으로도 기대할 부분은 앞서 파일럿에서 힘줘 만들었던, 정통 저널리즘이 할 수 있는 아젠다 세팅 능력이다. 격주로 또는 간헐적으로라도 세상이 주목할 특종이 나와 주길 시청자로서 기대한다. 그래야 이 프로그램이 <그알>을 만드는 방송사에서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